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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어른이 되어 잃어버린 능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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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어른이 되어 잃어버린 능력들

입력
2016.10.21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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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ㆍ레지스탕스 외치지만

실제로는 권위적인 어른들

감탄하는 법도 잊어버린 그들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어른들이

귀 담아 들어야 할 이야기

10명의 그림책 작가가 답하다

조엘 졸리베, 안 에르보, 클로드 퐁티 등 유럽을 대표하는 그림책 작가 10인이 상상력과 창조성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밝혔다. 은행나무 제공
조엘 졸리베, 안 에르보, 클로드 퐁티 등 유럽을 대표하는 그림책 작가 10인이 상상력과 창조성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밝혔다. 은행나무 제공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최혜진 글ㆍ신창용 사진

은행나무 발행ㆍ312쪽ㆍ1만7,000원

망각은 생의 가장 큰 난관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를 기억하지 못한다. 아이는 미지의 대상이 된다. 어른들은 아이가 빨리 어른의 언어를 습득하길 바란다. 이마 위에 박힌 세 번째 눈이 감기길 기다린다. 그렇게 망각의 수치를 은폐하고 싶어한다.

유럽의 그림책 작가 10명을 인터뷰한 책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가 나왔다. 한국에서 잡지사 기자로 일했던 최혜진씨가 프랑스, 벨기에를 중심으로 총 6,708㎞를 이동하며 그림책 작가들을 만난 결과물이다. 조엘 졸리베, 키티 크라우더, 올리비아 탈레크, 클로드 퐁티, 세르주 블로크, 벵자맹 쇼, 에르베 튈레, 안 에르보, 이치카와 사토미,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한국에 책이 번역돼 나온 작가도 있지만 대부분은 생소한 이름이다. 그럼에도 중간중간 숨을 멈추고 집중하게 하는 말들로 가득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어른과 아이의 세계도 넘나드는 그들에게 국경쯤이랴.

프랑스 국민 작가로 불리는 클로드 퐁티의 어린 시절은 불행한 편이었다. 폭력적인 성향의 아버지는 퐁티가 7살 때 사망했고, 교사인 어머니는 가혹하리만큼 엄격했다. 부모님과의 갈등은 퐁티의 현실감각에 일련의 균열을 냈다. “저에게 현실 세계의 논리와 권위가 전혀 설득력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현실 인식이 상상처럼 느껴지기도 했죠. 말로는 민주주의, 저항(레지스탕스)을 외치면서 실제 삶은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모순을 보면서 ‘어른들의 저 번지르르한 말이 실은 상상일지도 몰라’라고 생각했습니다.”

퐁티는 ‘현실’이라는 단어의 엄중함에 눌려 지나치고 마는 일상의 괴이함들을 작품 안에 포착해냈다. 대표작 중 하나인 ‘부모님 카탈로그’는 부모를 바꾸고 싶은 아이들을 위한 상품 목록이다. 모험가 부모, 고함쟁이 부모, 엄마만 다섯 등 여러 선택지 중에 하나를 고를 수 있다. 불경한 상상력 속에서 아이들은 당연하게 여겼던 현실을 뒤집는다. 사실 전복이 필요한 건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거예요. 어른들은 이 세상을 이미 파악했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믿는 대로 세상을 정리정돈 해서 봅니다. 그렇게 자기만의 규칙에 갇혀버린 어른들은 제 책을 읽으면 길을 잃어요.”

프랑스 그림책 작가 클로드 퐁티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은행나무 제공
프랑스 그림책 작가 클로드 퐁티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은행나무 제공

물론 모범생 타입도 훌륭한 그림책 작가가 될 수 있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조엘 졸리베는 책을 좋아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밑에서 착실한 학생으로 자랐다. 그러나 그의 상상력이 피어난 곳도 학교나 서가를 메운 어린이용 전집은 아니었다. 졸리베의 대표작인 ‘똑똑한 동물원’(바람의 아이들)에는 400여종의 동물이 작가 고유의 판화기법으로 섬세하게 묘사돼 있는데, 그 묘사를 가능케한 관찰력을 최초로 발동시킨 것은 할머니 집 다락방에 있던 오래된 백과사전이다. 각양각색의 동식물들, 왕과 귀족들이 입었던 화려한 의복. 자신이 “만난 모든 세계를 어떻게든 붙들려고 노력했다”는 졸리베가 전하는 관찰력 기르기의 비결은 다음과 같다.

“관찰력은 보는 대상에 감정이입을 하거나 감탄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감탄하는 마음이 관찰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관찰이라는 행위 안에는 사랑의 성분이 분명 들어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 잃어버린 것은 슈퍼맨의 망토뿐이 아니다. 우리는 현실을 얻는 대신 진실을 잃고, 지식을 얻는 대신 감탄을 잃는다. 그림책은 우리가 나왔던 곳으로 돌아 들어가는 문이다. 다시 돌아갈 마음이 있다면.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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