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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범탕ㆍ총명주사... 약물 찾는 학부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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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범탕ㆍ총명주사... 약물 찾는 학부모들

입력
2016.09.2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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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병원 “성적 향상에 도움” 홍보

물범탕 가격 ‘月 50만원’이지만

지푸라기 잡는 심정에 지갑 열어

2. 전문가들 “입증된 사례 없어”

효능 검증되지 않아 후유증 우려

잘못 복용할 땐 컨디션에 악영향

고3 수험생 아들을 둔 박모(48ㆍ여)씨는 지난 주말 자녀를 데리고 서울 청담동의 한 피부과를 찾아 이른바 ‘수능주사’를 맞게 했다. 그간 주위에서 ‘효험이 있다’는 말을 수 차례 들었지만 반신반의하던 그였다. 하지만 아들이 이달 초 치른 모의고사 가채점 이후 예상보다 낮은 점수에 낙담하자 결단을 내렸다. 수액 주사 한 병 가격은 10만원. 상담 간호사는 “은행잎 추출물로 만든 주사로 뇌 혈류를 풍부하게 해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실제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부모로서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놓인다”며 “아들이 좋다고 하면 수능 전에 한 번 더 주사를 맞게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28일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50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수험생을 둔 가정에도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입시철이면 매년 반복되는 현상이지만 요즘 학부모들은 자녀의 고득점을 기원하며 불공을 드리거나 부적을 사기만 하지 않는다. 눈에 불을 켜고 보약과 주사를 수소문한다. 약물의 힘을 빌려 성적을 단 1점이라도 더 올리려는 절박한 마음에서다. 그러나 효능이 검증되지 않아 수험생의 컨디션 조절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머리를 맑게 한다는 수능주사는 수험생 부모 사이에서 필수 코스다. ‘두뇌활성주사’ ‘브레인주사’ ‘총명주사’ 등 명칭은 다양하지만 결국 “맞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게 핵심이다. 집중력이 좋아져 성적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홍보하는 병원들도 있다. 수능주사로 유명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 A피부과에 문의하자 병원 관계자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인증 받은 성분만 사용해 부작용이 전혀 없다. 직접 방문해 효능을 검증해 보라”며 설명에 열을 올렸다.

체력과 기억력 향상에 특효라는 ‘물범탕’도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보약 중 하나다. 대서양이나 북극해 인접 지역에 서식하는 하프물범을 미꾸라지 홍삼 철갑상어와 함께 수일간 달여 만든 약재로 강남 학부모 커뮤니티에서는 ‘안 먹이는 사람이 바보’라는 말이 돌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오메가3 성분이 많다고 소문이 나 건강원을 찾는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이날 오후 방문한 서울 대치동의 B건강원에서는 물범탕 제조가 한창이었다. 건강원 사장은 “언론에서 자꾸 사실을 왜곡해 식약처 조사까지 받았다”고 투덜대면서도 “100% 예약제로, 아는 엄마들은 단기간이 아니라 꾸준히 먹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용도 월 50만원 정도로 비싼 편이나 예약은 두 달치나 밀려 있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여러 약재를 혼합해 만든 한약에 대한 수요도 여전하다. 서초구 C한의원은 기억력을 높여준다는 수능환(丸)을 일반환 프리미엄환 SKY(서울대ㆍ고려대ㆍ연세대)환 세 종류로 나눠 판매한다. 최고급형인 SKY환은 한 알에 무려 5만원이나 하지만 “명문대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못 먹일 게 없다”는 생각에 학부모들은 쉽게 지갑을 연다. 한의원 관계자는 “뇌 기능을 돕는 공진단과 총명제가 포함돼 금세 성적향상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학부모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서 약을 찾는다고 입을 모은다. 재수생 자녀를 둔 윤모(50ㆍ여)씨는 “조선시대에도 머리를 좋게 하는 ‘총명탕’이 있지 않았느냐”며 “지금도 나름의 방식으로 자녀 뒷바라지를 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딸에게 각종 수험생용 한약을 먹이고 있다는 서모(46ㆍ여)씨는 “아이 아빠는 괜한 짓을 한다며 타박하지만 엄마들끼리는 어떤 보약을 먹이는지 정보를 캐내는 것도 능력으로 여긴다”고 귀띔했다.

학부모들의 간절한 바람과 달리 전문가들은 수능 보약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한다. 동재준 강남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아직까지 기억력과 체력을 높이는 주사 및 치료제가 개발됐거나 객관적으로 입증된 사례는 없다”며 “오히려 몸에 안 맞는 성분을 복용할 경우 후유증이 오래 갈 수 있는 만큼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심리적 긴장을 조절하는 등 신체리듬 관리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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