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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차별을 정당한 의견처럼 수용하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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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차별을 정당한 의견처럼 수용하면 안돼"

입력
2015.11.1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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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연 변호사는 "보수 개신교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진보 진영 정치인들마저 성소수자 인권 보호에 관해 자신이 했던 말을 번복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장서연 변호사는 "보수 개신교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진보 진영 정치인들마저 성소수자 인권 보호에 관해 자신이 했던 말을 번복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며칠 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성소수자 전문 잡지의 표지를 장식해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미 연방 대법원은 지난 6월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하지만 한국은 정반대로 정부가 앞장 서서 성소수자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대전광역시의 성평등 기본조례 성소수자 인권보장 및 지원 조항이 양성 평등기본법 입법 취지를 벗어난다며 개정을 요청해 대전시가 조례 시행 두 달여 만인 9월에 이 조항을 삭제한 것이 대표적이다. 김조광수 영화감독과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가 동성혼을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여전히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일하고 있는 장서연(37)씨는 성소수자ㆍ이주노동자ㆍ난민ㆍ도시빈민 등 사회적 약자ㆍ소수자를 위해 일하는 공익변호사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검사로 임관했으나 1년 만에 공익변호사로 직업을 바꿨다. “사회 변화를 위해 적극적인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소수자인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 변호사는 최근 서울 원서동 공감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양성평등기본법에서 성소수자 보호 조항을 삭제하는 건 국제적으로 보면 굉장히 어이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성소수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여전히 지지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정부와 국회가 보수 개신교 단체의 압박에 굴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변호사는 “이런 흐름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며 “당시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안을 국회에 상정했을 때도 보수 개신교 단체의 반대로 결국 폐기됐다”고 말했다.

시대에 역행하는 이런 성소수자 인권 차별 움직임은 최근 1년 사이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금지 조항을 담으려 한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을 포기했다. 지난 8월 교육부는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언급조차 하지 못하게 한 ‘국가수준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발표했다.

서울 성북구청은 9월에 청소년 소수자 보호 및 지원 사업인 ‘청소년 무지개와 함께 지원센터’ 건립을 포기했다. 앞서 4월에는 성적 소수자 단체인 비온뒤무지개재단이 법무부로부터 비영리법인 설립 불허가 처분을 받았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여론의 눈치만 보는 우리 정부 대표단을 질타하며 이달 초 인종과 성적 지향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을 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성소수자 인권 보호를 가로막는 집단은 위법과 편법까지 동원한다. 장 변호사는 “그들이 하는 행동과 발언이 점점 과격해지고 있고 불법성도 강해지고 있지만 공공기관에선 오히려 보수 단체들의 의견을 반영해주면서 불법 행위에 대해선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증오나 폭력을 선동하는 혐오 발언을 강하게 규제하지만 국내에는 아직 그런 규제가 없다”며 “성소수자 인권 문제를 다루다 보면 이들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보다 혐오와 증오, 차별을 정당한 의견처럼 수용하는 정부 기관을 대할 때가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성소수자 인권을 보호하는 제도 도입이 이렇게 더디기만 하지만 희망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센터의 39개국 조사에 따르면 “사회가 동성애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답한 한국인은 2007년 18%에서 2013년 39%로 늘었다. 장 변호사는 “한국이 조사 대상 국가 중 가장 큰 변화를 보였다니 한국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며 “특히 18~29세의 수용도가 71%라는 조사 결과를 보면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여론의 변화를 예의주시해야 하는 건 공공기관이다. 그는 “공공기관들이 모든 사람의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사회적으로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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