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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문재인 대통령에 보내는 기대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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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문재인 대통령에 보내는 기대와 바람

입력
2017.05.0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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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의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승리했다. 막판 추격 기세를 올린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지지율 회복에 안간힘을 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등을 멀찌감치 따돌린 낙승이다. 그의 승리에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끝까지 독자적 강점을 부각하는 데 매진한 패자들에게도 위로의 박수를 보낸다. 모두 잘 싸웠다. 깨끗이 이기고, 깨끗이 졌다.

아울러 투표율이 2000년대 들어 최고인 77.2%에 이른 데서 보듯, 무너진 국가리더십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선거에 적극 참여한 유권자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주권 의식이 빛난 투표 열기야말로 박근혜ㆍ최순실 국정농락으로 무너진 민주주의의 재건과 정치ㆍ사회 개혁을 기약하게 하는 밑거름이다.

한동안 ‘대통령 당선인’으로 불린 여느 때와 달리 문 후보는 대선 승리와 동시에 대통령으로 불릴 수밖에 없다. 전국을 누빈 유세의 쌓인 피로를 잠시 내려놓을 틈도, 지지자와 얼싸안고 승리의 감동을 나눌 여유도 없다. 오늘 바로 5년 임기가 시작되는 만큼 당장 국민 성원에 답해야 할 책무가 무겁다. 할 일도 많고, 하지 말아야 할 일도 많다.

화합과 협치 없이는 ‘적폐 청산’도 신기루

5ㆍ9 대선은 박근혜 탄핵의 직접적 결과다. 문 대통령의 대세론이 그대로 관철된 것도 초유의 ‘탄핵 대선’이 빚은 특수한 정치지형에 힘입은 바 컸다. 2012년 대선에서 커다란 절벽이었던 ‘보수표 결집’이 불가능했고, 짧은 선거 준비기간은 일찌감치 대세론을 탄 문 대통령에 상대적으로 유리했다.

이런 유리한 변수조차 문 대통령의 4년 반에 걸친 절치부심과 와신상담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대선 TV토론에서 확인됐듯, 문 대통령은 18대 대선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잘 준비된 모습을 갖추었다. 다만 대선과 같은 국가대사는 주관적 준비도 중요하지만, 시운(時運)이 결정적이란 점에서 정치상황에 대한 문 대통령의 빚이 크다. 문 대통령이 가장 먼저 서둘러야 할 일도 그런 빚 갚기에 다름 아니다.

승리한 문 대통령에게 이제 더는 지지자나 반대자가 없다. 집토끼나 산토끼도 없다. 오직 국민이 있을 뿐이다. 그 국민이 갈갈이 찢겨 있다. 이념과 지역, 세대 등 저마다의 갈등에 복잡하게 갇혀있다. 모두 정치가 빚었고, 탄핵정국과 조기대선을 거치며 강화된 현실이다. 활발한 소통으로 이런 현실을 헤치고 국민 화합을 이루는 게 문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다. 그 해결 여부는 문 대통령 스스로에 달렸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문고리 권력’을 비롯한 측근과 최순실과의 폐쇄적 소통에 집착해 다수 국민과의 소통을 차단한 박 전 대통령의 실패가 좋은 반면교사다.

국민 분열과 갈등은 이번 대선에서도 거듭 확인됐고, 국회 의석분포에도 투영돼 있다. 그나마 문 대통령은 제1당을 여당으로 두었지만, 여소야대 구도는 마찬가지다. 역대 대통령은 여대야소 정치구도에서조차 국정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야당을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인정하는 데 인색했고, 야당과의 소통 노력 또한 시늉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강력한 소통과 협치의 의지를 보여야만 한다. 그 1차 시험대는 총리와 장관, 청와대 비서진 인선이다. 문 대통령이 이 시험대를 매끄럽게 통과하길 기대한다.

소통과 화합, 협치의 기틀을 마련하지 않고는 ‘적폐청산’도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고질적 정경유착과 권력기관의 사유화, 불공정 인사 등 잘못된 관행과 제도를 바로잡는 것이 ‘적폐청산’이라면, 국민적 합의와 그에 근거한 국회의 공감을 결여해서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적폐청산 특별위원회’ 설치 구상에 쏠린 사회 일각의 우려처럼, 인적 청산에 집중되거나 반대세력 탄압 등 정치보복으로 흐를 경우 ‘적폐청산’은 그 자체가 새로운 적폐가 된다.

공약 근간은 살리되, 곁가지는 잘라야

이런 화합과 협치 노력을 문 대통령에게만 한정할 것은 아니다. 야당과 국민에게도 상응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대선에서 야당의 진정한 승복이나 정치적 반대자들의 ‘귀순(歸順)’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선거 다음날부터 야당은 무조건 반대로 치닫고, 그 지지자들도 새 정권의 꼬투리를 잡기에 바빴다. 이 또한 청산 대상인 ‘적폐’가 아닐 수 없다. 선거가 끝나면 대통령에게 국민이 하나이듯, 국민 모두가 ‘우리 대통령’ 의식을 가져 마땅하다.

문 대통령의 선거 준비는 어느 후보보다 빨랐다. 많은 전문가들이 선거캠프에 몰려 공약ㆍ정책 개발에 힘을 보탰다. 쏟아낸 약속도 많았고, 유권자의 관심과 지지를 끄는 데도 성공했다. 혹자는 그런 약속이 헛될 것을 우려하지만, 우리는 공약이라고 무조건 지키려고 애쓸 경우의 부작용이 더 걱정스럽다. 문 대통령의 국정 지향점과 직결된 공약은 어떻게든 근간을 살리되, 곁가지는 최대한 잘라내는 것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가는 길이다.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가 아니라 광화문 정부청사로 옮기겠다는 약속이 좋은 예다. 박 전 대통령의 유난한 불통과 ‘서면 보고’의 반작용으로, 최대한 국민 가까이로 다가서겠다는 뜻이야 이해한다. 그러나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그리 손쉬운 일도, 국민이 특별히 반길 일도 아니다. 일과 시간에는 집무실에서 일하며, 비서진이나 언론과 일상적으로 접촉하고, 점심은 물론이고 아침 저녁밥을 ‘혼밥’으로 때우지 않으면 된다. 출퇴근만 확실하고, 폐쇄적 국정운영만 아니면 그만이다. 반면 집무실을 청와대 밖으로 옮겨도 얼마든지 밀실 국정운영은 가능하다.

양극화 해소와 실질적 경제민주화에 힘쓰길

양극화는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의 으뜸 적폐로 꼽혀왔는데도 해소되기는커녕 심화일로다. 소득 하위집단의 오랜 소득 정체의 결과다. 세계 상위소득 데이터베이스(WTID)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소득하위 50%의 소득 집중도(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는 4.5%에 불과했다. 이른바 ‘IMF 위기’ 이후의 노동 유연화 정책으로 비정규직이 팽창한 것 등에 문제의 뿌리가 있다.

문 대통령이 대표적 공약으로 ‘공공부문 중심의 일자리 81만 개 창출’을 내세운 것은 양극화 문제 해소의 실마리를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옳다. 최저임금을 조속히 시간 당 1만원 이상으로 끌어올리되,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부담을 따로 덜어줄 지원제도의 도입을 서둘러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제안해온 ‘소득주도 성장론’에 대한 국민 공감대 확산도 필요하다.

문제는 구체적 방법론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든, 적극적 재정지출로 저소득층의 실질소득을 늘리든, 강력한 소득 재분배 정책으로 저소득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줄이든, 하나같이 막대한 추가 재원을 요구한다. 누진세제를 강화하는 세제 개편이나 조세감면 제도를 대대적으로 손질하되, 민간기업의 활력을 꺾지 않는 현실적 지혜를 찾아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문 대통령이 약속한 재벌 개혁 등 경제민주화도 구체적 현실과의 정합성에서 방법론을 찾아야 실현 가능성이 커진다. 국민의 막연한 반 재벌, 반 대기업 심리를 자극하는 ‘정치 활용’ 단계에서 벗어나 ‘불균형 성장’ 구조를 해체한다는 큰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시끄러운 여론몰이 대신 전문가는 물론이고, 구조개혁 대상인 대기업과의 차분한 대화에 치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자칫 생산기반의 해외 이전 등 역효과만 두드러질 수 있기에 하는 얘기다.

탈(脫) 이념의 외교ㆍ안보 정책 모색하라

문 대통령이 마주한 외교안보 과제도 어느 때보다 무겁다. 핵심인 북핵 문제의 최대 변수는 여전히 북미관계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압박에 한층 더 무게를 싣고 있고, 대북 영향력이 두드러진 중국도 대화를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여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햇볕정책의 계승자인 문 대통령이 이런 국제적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독자적 대북 정책의 실현 공간을 찾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그래서 장단기 목표를 구분하고, 남북관계의 특수성보다 동맹과 국제공조의 틀 안에서 그 자리매김을 새롭게 하려는 자세가 한층 긴요하다. 한미 사드 합의나 한일 위안부 합의 등 구체적 문제도 이념ㆍ원칙을 끊임없이 현실과 국제 관행에 맞춰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촛불민심을 가장 온전히 껴안은 문 대통령은 그럴 자격과 역량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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