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맹인이 왜 밖을 돌아다녀" 큰소리에 화들짝

알림

"맹인이 왜 밖을 돌아다녀" 큰소리에 화들짝

입력
2015.10.24 04:40
0 0

경제성장 못 따라간 의식수준

노약자석 등 인상적이지만

장애인 편안한 외출 꿈도 못 꿔

혼잡스러운 보행문화도 눈살

우리 바깥의 타인 배려해야

연대감 있어야만 베푸는 친절

약자 우선하는 풍토 이어져야

편의시설 점진적 개선 희망적

외국인들은 우리의 배려 문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우리는 익숙해서 느끼지 못하지만 한국에서 오랜 기간 체류한 외국인들에게 배려 부족으로 비치는 일상의 단면이 적지 않았다. “사회적 약자나 타인에 대한 배려가 하드웨어적으로 나무랄 데 없지만 의식 수준까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대체적인 평가였다. 물론 이마저도 완곡한 표현에 익숙한 선진국 사람들의 언어 습관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유럽에서는 장애인 이동권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휠체어에 앉은 채로 차량에 오르거나 장애인이 보조기구를 이용, 직접 운전할 수 있게 한 '복지 차량'이 많이 도입되고 있다. 독일 자동차 개조 기업 파라반의 복지 차량.
유럽에서는 장애인 이동권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휠체어에 앉은 채로 차량에 오르거나 장애인이 보조기구를 이용, 직접 운전할 수 있게 한 '복지 차량'이 많이 도입되고 있다. 독일 자동차 개조 기업 파라반의 복지 차량.
시외버스, 마을버스에는 저상버스가 도입되지 않아 장애인의 탑승이 어려운 한국 실정과 달리 그레이하운드 등 미국의 장거리 노선 버스는 리프트를 활용해 교통약자 이동을 돕고 있다.
시외버스, 마을버스에는 저상버스가 도입되지 않아 장애인의 탑승이 어려운 한국 실정과 달리 그레이하운드 등 미국의 장거리 노선 버스는 리프트를 활용해 교통약자 이동을 돕고 있다.

미국 출신으로 2006년부터 서울시립교향악단 트롬본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제이슨 크리미(34·사진)씨는 한국에서 9년째 살고 있지만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일이 여전히 불편하다. 내리는 사람이 먼저 내린 후 지하철을 타는 기본 예의를 지키지 않는 이들이 있어서다. 자동문이나 회전문이 아닌 출입문을 여닫을 때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도 적응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는 “한국의 고속성장에 ‘빨리빨리’ 문화가 일조한 바가 커 매사 서두르는 게 몸에 밴 까닭에 나오는 행동으로 이해되지만 선진국 반열에 오른 만큼 여유를 갖고 다른 사람을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방송인으로 유명한 독일 출신의 다니엘 린데만(30·사진)씨도 2008년부터 서울에서 생활했지만 보행문화가 아직도 거북하다. 실내 공간뿐 아니라 야외에 있는 인도 역시 공공 시설물이지만 앞사람, 뒷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모습을 종종 보기 때문이다. 정책적으로는 우측 보행을 강조하는데 실제 도로에서는 우측 보행과 좌측 보행이 뒤섞여 있어 혼란을 겪을 때도 있다. 그는 “여러 명이 무리를 지어 길을 막을 듯이 걸어가는 그룹 뒤편에서 걷다 그들이 갑자기 멈춰 당황한 경험이 있다”며 “인도는 나 혼자 이용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약자 배려에서 세심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 린데만씨의 경우 서울에 살면서 휠체어를 타고 자연스럽게 가족, 친구와 도심에서 여가를 즐기는 장애인을 거의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시각 장애를 가진 할아버지와의 추억이나 휠체어를 타고 학교에 다니던 친구와 친하게 지낸 고교시절 기억으로 보면 독일에서는 장애인과 교류가 많았다”며 “장애인의 삶을 나와 다른 삶으로 여기지 않는 열린 사고가 가장 필요하다”고 했다.

이탈리아인 필로미나 미어리(48·사진)씨도 “엘리베이터 탑승 우선순위인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나 유모차가 정원 초과로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고 말했다. 미어리씨는 “이탈리아를 비롯해 거주했던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지하철 노약자배려석을 본 기억이 없다”며 한국의 배려수준이 높은 편이라면서도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지나치게 집중해 있어 양보의 기회를 놓치는 경우로 보인다”고 말했다.

캐나다 동포로 영어 컨설팅 사업을 하는 크리스 김(34)씨는 간간이 경험하는 배려 부족의 원인을 집단주의에서 찾았다. 한국 생활 10년째인 김씨는 “한국인은 ‘나’와 ‘너’가 아닌 ‘우리’를 챙기기 때문에 한 번 연대감을 갖게 되면 큰 친절을 베풀지만 우리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는 타인에 대해 존중 부족의 실수를 저지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재독 동포 2세인 회사원 장지환(38)씨는 “간혹 사회통합 차원에서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독일문화가 부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생활 9년째인 장씨는 “대중교통 노약자 배려석 운영 등을 보면 한국인의 배려 수준이 높다는 인상을 받지만 장애인 배려는 관심을 두게 된 역사가 짧다 보니 아직 부족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5년 전 시각장애가 있는 지인이 큰길에서 차를 피하다 지팡이가 부러지자 자동차 운전자로부터 “왜 맹인이 집에 있지 바깥에 나오느냐”는 소리를 들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독일은 저상버스 보급률이나 장애인의 일반학교 진학률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등 사회통합 차원의 사회적 약자 정책이 잘 돼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물론 한국생활이 오래된 외국인들은 배려 수준이 갈수록 나아지고 있다는 평가를 한다. 2008년 서울을 처음 찾았을 때 목격했던 구급차에 길을 내주는 차량이 전무한 도로 위 풍경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등의 예를 들기도 했다. 크리스 김씨는 “대형마트, 백화점은 물론 새로 지어지는 일반 주택에도 계단 대신 이용할 수 있는 휠체어 통로가 만들어지는 등 장애인 배려 시설은 점차 확충되는 분위기지만 정작 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다”며 “사회적 약자 배려와 관련해서는 시설 개선 이전에 문화적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이 아직 많아 보인다”고 말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ankookilbo.co.kr

이 기사는 갈수록 팍팍한 한국 배려 문화를 다룬 기획 시리즈의 세 번째 기사입니다.

장애인의 힘겨운 외출을 다룬 첫 번째 기사 '장애인 딸, 투사가 된 엄마'를 보시려면 여기(http://goo.gl/LrxyXI)를 누르시고, 규칙 지키기에만 급급해 양보가 줄어드는 현실을 다룬 '임산부 끙끙대도 배려석 보며 딴청만'을 보려면 여기(http://goo.gl/zPIBTD)를 누르세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