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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에게도 거리낌없던 조선 최고 학자의 돌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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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에게도 거리낌없던 조선 최고 학자의 돌직구

입력
2016.01.29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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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의 경연일기

오항녕 지음

너머북스ㆍ656쪽ㆍ2만9,000원

1575년(선조 8년) 9월. 북방의 후금이 심상치 않다는 상소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던 선조는 말실수를 하고 만다. 조정에 큰 소리 치는 사람이 많으니 이들을 데려다 막으라 한 것. ‘돌직구’의 대가 율곡 이이가 이 말을 그대로 넘겼을 리 없다. 율곡은 ‘큰 소리 치는 사람’이란 실력 없는 사람일 텐데 어찌 적을 막을 수 있겠으며, 만일 유신(儒臣ㆍ유학자 신하, 즉 홍문관 관원)들을 큰 소리 치는 사람이라 비꼰 것이라면 제 선왕을 만나 선정을 강론한 맹자도 목소리만 큰 사람이냐고 물으며 비판한다. 나아가 임금의 잘못된 말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충언에 이르자 선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율곡을 왜 조선 최고의 학자이자 정치가로 꼽는가. ‘율곡의 경연일기’는 역사학자 오항녕 전주대 교수가 율곡의 ‘경연일기’를 번역해 해설을 붙인 것으로, 동료 학자들과 함께 작업 중인 ‘율곡전서’ 정본화의 첫 결실이다. 경연일기는 1565년(명종 20) 7월 문정왕후의 죽음에 대한 기록으로부터 시작해 1581년(선조 14) 11월까지 약 17년간 경연을 무대로 한 조선 정치의 현장에서 율곡 이이가 쓴 일기다. 사림의 등장과 동서분당 등 향후 조선 정치의 향방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선조 시대를 생생하게 조망하는 기록이다. 특히 파란의 시대를 거치며 숱하게 명멸해간 100여명에 가까운 인물들의 전기적 초상을 사건과 연관시켜 신랄하면서도 엄격하게 드러내는 대목들은 율곡 스스로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준다.

‘경연일기’의 시종을 관통하는 율곡의 ‘직간’과 선조의 ‘침묵’이란 긴장 관계를 통상적 정치영역의 명령과 복종이란 위계로 설명할 수 있을까? 저자는 ‘경연일기’의 관전 포인트가 첫째는 상하(上下) 관계, 즉 권력 문제이고, 둘째는 그 권력을 통해 사회의 삶을 어떻게 조직, 경영할 것인가 즉 경세론의 측면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율곡이 ‘임금과 신하의 교류와 소통’을 강조한 핵심은 현실 정치권력에서 나타나는 비대칭적 위계를 ‘요순’이란 모델을 통해 보편적 가치를 지닌 대칭성으로 바꾸고, 이를 경세론의 구체성 속에서 실현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율곡과 사림들은 인(仁)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왕에게 요구하며 기대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떠나겠다고 협박(?)을 하고, 선조는 이에 권위로 억누르지 않고 침묵으로나마 지지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가칭 ‘요순담론’이라는 이 기본틀이 오 교수는 이때에 만들어지고 조선 후기 사회를 이끌어간 동력의 하나라고 한다. 그리고 그 공간이 경연이었다.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조정의 풍토는 현대에 이르러 오히려 로망이 되었다. 국무위원들은 열심히 대통령의 말을 받아 적지만 막상 뉴스를 통해 확인하는 대통령의 말에는 받아 적을 만한 내용이 거의 없는 현실. 오 교수는 율곡의 시대와 지금을 대비하며 이 대비야말로 역사학의 과제라고 말한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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