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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김영란법과 복지국가

입력
2016.09.2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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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폰서 검사 사건은 김영란법 실행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불거진 것이었기에 더욱 주목할 만했다. 공직의 청렴함과 사회의 투명성을 추구하는 법과 이 사건은 워낙 뚜렷하게 대조되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사건을 어떻게 수사하여 결론지을까. 이는 핵심 조직들이 우리 사회의 변화를 정말로 추구하는지 보여주는 잣대가 될 수 있다.

‘부정청탁과 금품수수’가 사라져야 하며, 그로 인한 불공평함과 봐주기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 이런 변화에 대한 열망이 존재하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진통은 있었지만 제도에 합의를 해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옳은 것’을 향해 한 발 더 내딛는 순간이다.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에 대한 질문을 오랜만에 다시 꺼내본다. 기대가 느껴진다.

그러나 기대만큼이나 변화에 대한 열망과 기대가 꺾였던 순간들도 기억하게 된다. 멀게는 민주화 대투쟁 이후 군부인사의 재집권, 좀 더 가깝게는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복지국가에 대한 전망이 누리과정 예산 논쟁, 청년수당 논쟁 속에서 맥없이 유야무야된 것을 생각해 본다. 그렇게 놓쳐버린 큰 그림들이 아깝기 그지없다.

또한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켜지지 않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지켜지지 않는 최저임금, 지켜지지 않는 노동시간과 휴일, 지켜지지 않는 육아휴직 권리, 지켜지지 않는 차별금지, 지켜지지 않는 국민연금과 고용보험 가입. 알바생인 학생들과 얘기하다 보면 근로기준법 준수는 드물고 신기한 이야기다. 비관이 습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해 보면서도 편법으로 의무와 처벌을 피해가는 수많은 요령들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지킬 것을 지키는’ 변화가 어려운 것임을 절감한다.

‘부정청탁과 금품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의 핵심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굳이 하지 말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저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니 무얼 해야 하는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쉬워 보인다. 다만 선물과 향응으로 호의와 이권을 사들이는 것, 그러니까 굳이 안 해도 될 일에 나서게 만드는 이유를 어떻게 없앨 것이냐는 쉽지 않은 문제다. 잘 보여야 높이 올라가고, 올라가야 살아남는다는 널리 퍼진 강박을 어떻게 잠재울 것인가.

다시 복지국가 얘기로 돌아가자. 복지국가와 투명하고 공평한 사회는 서로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우선 복지국가는 공평한 사회로 가는 기반이다. 누구에게나 인간다운 삶이 가능할 때 살아남음에 대한 강박은 조금이나마 완화될 수 있다. 일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다른 선택과 실패에 대해서도 소득과 돌봄 등이 주어질 때 불안은 줄고 고립감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과 복지에 관한 사회권 보장이 당당한 을을 만드는 기본 조건이다. 다른 한편 공공의 투명성과 청렴함의 확보는 복지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조건으로 보인다. 노동과 복지에 관한 정치, 행정, 법 집행 이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불공평해 보이는 상황에서, 국가에 대한 신뢰 없이 복지국가를 얘기하는 것이 어불성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복지 확대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진짜 경험은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소극적이고 파편적으로 늘어난 복지는 시대의 가혹함으로부터 많은 이들의 삶을 방어해주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 이것이 복지국가에 관한 이야기를 멈추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더욱이 공평하고 옳은 사회로의 변화를 도모하는 국면에서 복지국가는 함께 추구해야 할 목표이기 때문이다. 이제 좋은 사회를 향한 변화는 김영란법에서 복지국가로 더 넓어져야 한다.

나쁜 관행을 깨뜨리는 것은 권력부터 습관까지 결부된 문제다. 수사대상 검사가 휴대폰 분실로 증거제출을 피할 때 우리는 냉소한다. 조직의 비호 기미에는 기대를 접을 것이다. 그럼에도 강력한 법과 탄탄한 사회보장에 기대어 다수가 권력과 습관에 대항하는 진짜 변화를 꿈꿔본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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