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그래, 그렇게 아이와 커 가는 거야" 부모에게 여유를 선물한 책

알림

"그래, 그렇게 아이와 커 가는 거야" 부모에게 여유를 선물한 책

입력
2014.08.29 13:49
0 0

서천석 지음

창비 발행ㆍ331쪽ㆍ1만4,800원

지난 겨울, 여느 날처럼 자정 무렵에야 귀가해 큰아이에게 굿나잇 인사를 하며 물었다. “작품은 잘 돼 가냐?” 아이가 눈빛을 밝히며 되물었다. “한번 보실래요?” 아이는 수능시험을 제대로 망친 뒤 방안에 틀어박혀 공부할 땐 절대 못하던 밤샘까지 해가며 인터넷 소설을 썼고, 나는 난수표 같은 대입자료를 뒤적이며 아이를 원망하고 한숨만 쉬던 때였다.

새벽녘까지 많은 얘기를 나눴다. 아직은 막연하지만 자신이 꿈꾸는 삶에 대해 재잘재잘 얘기하는 아이의 표정은 한없이 밝았다. 저런 초롱초롱한 눈빛을 본 적이 언제였나. 뻔한 잔소리로 토 달지 않고 아이의 얘기를 들어준 적이 있었나. 엄마로 살아온 만 18년을 찬찬히 돌려보다 왈칵 울음이 터졌다. 자책의 눈물만은 아니었다. 아이가 몰래 키워 온 제 꿈의 한 자락을 내보이기까지 그러했듯이, 멋 모르고 부모가 된 내게도 아이를 온전한 인격체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구나….

그날 이후 내 마음도, 아이와의 관계도 많이 편해졌다. 이제야 조금 의젓한 ‘엄마 어른’이 된 것 같기도 했다. 지난해 무릎을 치며 읽었던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에서 노랗게 밑줄 쳐 둔 이런 글도 예전과는 다른 결과 깊이로 읽혔다. “아이가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결과를 부모가 책임 질 수도 없죠. 결과에 집착하면 육아는 망가집니다. (중략) 나와 아이가 만나는 순간, 그 순간에 벌어지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이와 만나는 순간의 내 마음에 태도에 집중하세요. 그 순간 스스로에게 만족한다면 그것이 바로 좋은 육아입니다.”(24쪽) 부모는 부모가 된 그 순간부터 성장을 시작한다는 저자의 말을 빌려 내게 “그래, 그렇게 아이와 커가는 거야”라고 말할 여유도 생겼다.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씨가 쓴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는 참 따뜻한 책이다. 공감백배의 육아 지침보다 먼저 다가오는 것이 자책에 빠진 부모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다. “지금 그 자리에서 시작하세요. 있는 그대로, 부족한 그 모습대로 괜찮습니다. (중략) 당신이 가진 그대로, 당신이 지금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 주저앉지만 않는다면 아이도 당신도 계속 자랄 테니까요.”(15쪽)

저자는 트위터와 블로그, 방송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육아 멘토’로 이름을 쌓아왔다. 이 책은 큰 공감을 불러 일으킨 트위터 글 등을 다듬어 엮은 것이다. 소아청소년들의 상처 난 마음을 돌보는 의사이자 두 아이 아빠로서의 경험이 응축된 산문시 같은 글들은 가슴과 더불어 굳은 생각주머니를 열게 하는 힘이 있다. 책 날개 저자 소개에 나오는 ‘막연한 원칙이 아닌 현실적인 답을 주는 의사’란 세평이 빈 말이 아니다. 그만큼 유아부터 성인이 된 아이를 둔 부모까지 폭넓게 읽힐 수 있는 책이다.

큰아이 키우며 다 겪었던 일인데, 초등 1년생 막내와의 씨름은 또 다른 어려움과 걱정을 안겨준다. 결국은 공부 걱정으로 흐르는 속된 마음을 이런 글귀를 새기며 다잡는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수학 문제를 실수 없이 풀어내는 것, 영어 단어 하나를 외우는 것은 너무나 작은 의미일 뿐입니다. 초등학교 기간 동안 아이들은 인생을 살아갈 엔진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 엔진은 아이가 앞으로 삶을 헤쳐 나가는 데 있어서 얼마나 자신감을 가질지, 얼마나 열심히 해 보려는 의지를 가질지를 결정합니다.”(322쪽) ‘다시 읽고 싶은 책’보다는 머리맡에 두고 자꾸자꾸 들춰보게 되는 책이다.

이희정 논설위원 jay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