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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도광양회 2.0

입력
2015.01.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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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鄧小平)은 23년 전인 1992년 이맘때에 무겁고도 단호한 마음으로 '남순강화(南巡講話)’의 길에 올라 있었다. 문화대혁명과 장칭(江靑)을 위시한 4인방의 칼날 하에서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은 덩이 마오쩌둥의 후계자 화궈펑(華國鋒)과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후, 78년 마침내 개혁ㆍ개방이라는 자신의 국가 발전전략에 시동을 건지 약 10년이 지난 때였다. 당시는 초창기 개혁ㆍ개방 정책의 거듭된 시행착오와 이로 인해 당내 보수파의 비판이 거세던 시기였다. 게다가 냉전이 끝나가며 구소련의 해체와 동유럽의 붕괴로 공산주의 진영이 무너지고, 내부적으로는 89년 6월 민주화를 요구하는 톈안먼 사태가 터졌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는 톈안먼 시위대에 대한 강경진압에 대한 비난과 함께 중국에 경제 제재를 가한다. 국내외적으로 위기에 처한 덩은 92년 초 중국 남부의 4개 도시를 시찰하며 자신의 생각과 결단을 제시한다. 경제발전을 위해 개혁ㆍ개방 정책 유지와 외교 전략으로는 도광양회(?光?晦)와 유소작위(有所作?) 등이 포함된 ‘28자 방침’이 발표됐다. 이중 ‘도광양회’는 이후 중국 외교전략의 핵심이 됐다.

이후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던 중국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2010년 국내총생산(GDP)에서 일본을 따라잡고 G2의 한 축으로 불리는 계기를 마련한다. 중국은 변화된 자국의 위상에 맞춰 새로운 미중관계를 여는 ‘신형대국관계’를 제시했고, 시진핑 주석의 등장 이후에는 주변외교, 개발도상국 외교, 다자간 외교 등으로 외교역량을 더욱 확대하는 적극적인 모습이 나타났다.

그런데 최근 중국은 도광양회의 전략을 재정비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중국의 왕양(汪洋) 국무원 부총리는 미국 시카고에서 개최된 제25회 중미통상무역위원회 회의에서 세계경제 질서의 규칙을 형성하고 세계를 리드하는 것은 미국이며, 중국은 미국의 지위에 도전할 능력도 없으며 도전할 생각도 없다고 발언했다. 올해 들어서는 중국 외교학원 친야칭(秦亞靑) 원장이 지난 3일 2010년 이후 중국이 강경외교정책으로 돌아섰다는 시각이 있지만 중국은 기존의 외교 전략을 2050년까지 유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10일에는 진찬롱(金燦榮)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이 중국은 계속해서 낮은 자세의 외교를 펼칠 것이라고 발언했으며, 12일에는 북경대 국제관계학원 자칭궈(賈慶國) 원장이 중국은 기존의 국제질서에 도전할 의사가 없으며 미중간의 이익공유와 협력을 강조했다.

중국이 최근 이런 모습을 보이는 주된 이유는 미국이다. 근래 미국의 경제력이 2008년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며 눈에 띄게 회복되고 있는 모습이다. 게다가 셰일가스 혁명을 앞세워 국제시장 원유가격의 형성에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고,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이 주저앉으며 에너지를 통한 지정학적 영향력이 크게 증가했다. 기존의 압도적인 군사력과 더불어 그야말로 미국의 ‘복귀’가 나타나고 있는 모습이다.

중국의 이런 저자세가 미국의 국력회복에 기인해 양국 간의 새로운 우호협력을 목적으로 하는지, 아니면 자국의 완전한 부상의 시기까지 미국을 달래며 시간을 끌려는 것인지, 또는 세력전이의 상황을 낙관하고 물리적 충돌과 주변국의 우려를 최소화하며 패권국으로 올라서려는 전략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문제여서 크게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우리가 관심있게 지켜봐야 할 것은 우선 덩과 시 주석의 도광양회 전략의 차이점이다. 덩이 낙후된 중국을 이끌며 인내와 협력을 중심으로 하는 도광양회라면, 시는 세계 2위의 강대국 중국으로서 패권에는 도전하지 않지만 자국의 핵심이익에 관해서는 양보하지 않겠다는 새로운 버전의 도광양회다. 이렇듯 새롭게 형성되는 미중관계는 향후 주변 지역정세에 많은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한국은 우선 미국과의 동맹을 굳건히 하고, 특히 대북정책에서 미국과 엇박자가 나는 것을 지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중국과는 주변외교 전략에 호응하며 경제와 지역 내 비 전통 안보분야를 중심으로 우호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미중 간의 조화에 국력을 집중해야 한다.

김한권 아산정책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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