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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탄생 100주년] 수행 비서 눈에 비친 ‘정주영과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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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탄생 100주년] 수행 비서 눈에 비친 ‘정주영과 박정희’

입력
2015.11.2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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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현대시멘트 준공식에서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부인 변중석씨가 박정희(가운데) 전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1964년 현대시멘트 준공식에서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부인 변중석씨가 박정희(가운데) 전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걸어 나오는 회장님이 정말 이상했다. 마치 얼이 빠진 사람 같았다. 차에 앉더니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내일 당장 영국 가는 비행기표를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현대건설의 격동기였던 1969~72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비서로 그림자처럼 수행했던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은 정 전 명예회장이 청와대에서 고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고 나온 1970년의 어느 날을 이렇게 기억했다. 이때 정 전 명예회장은 조선소를 짓기 위해 미국과 일본으로 뛰어다녔지만 차관 확보에 실패해 조선소 건립을 포기할 생각이었다. 이 같은 뜻을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정 회장은 크게 혼이 났다.

정 전 회장은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에서 당시 박 전 대통령이 김학렬 부총리에게 “앞으로 정 회장이 어떤 사업을 한다 해도 모두 거절하시오. 상대도 하지 말란 말이오”라며 역정을 냈다고 밝혔는데 실상은 한층 더 심했다. 이 회장은 “알고 보니 박 전 대통령에게 ‘나가 죽어라’ ‘평생 감옥에서 살 생각하라’ 는 말까지 들었다”며 “청와대 부속실에서도 대통령이 그렇게 화를 낸 것은 처음이었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세계 경제사에 한 획을 그은 ‘정주영 신화’는 경제개발을 밀어붙인 박정희 정권 때 만개했다. 당시 이 전 회장의 눈에 비친 박 전 대통령은 현대 성공 신화의 동반자이자 정 전 회장에게 경외의 대상이었다.

이 회장은 “1972년에 현대건설은 매일 일이 터져 매일 부도 위기를 겪었다”며 “청와대에서 은행에 요청해 부도 위기를 넘기면 정 전 회장은 단골이던 무교갈비에 가서 한숨을 돌렸다”고 회고했다. 그는 “정 전 회장은 좋아하는 숯불갈비나 갈비탕을 먹은 뒤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 맞은편에 있던 국내 최초의 볼링장에서 몇 게임하고 밤 12시가 다 돼서 집에 들어갔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조선소 착공 직후 1972년 8월 3일 결정된 사채 동결도 현대건설을 도운 조치로 기억했다. 그는 “명동 사채는 현대건설이 다 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힘들었던 시기에 사채 동결로 자금 부담을 덜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1972년 여름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강원도 경포대의 현대호텔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4박 5일간 술을 마셨다. 호텔 현대 제공
1972년 여름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강원도 경포대의 현대호텔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4박 5일간 술을 마셨다. 호텔 현대 제공

정 전 회장은 원래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지만 박 전 대통령 앞에서만은 달랐다. 현대건설이 1971년 강릉 경포대에 지은 강릉비치호텔(현 씨마크호텔) 관련 일화가 있다. 이 회장은 “유신을 선포한 그 해 8월15일에 박 전 대통령이 호텔에 하루 쉬러 온다고 해서 난리가 났다”며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이 예정을 넘겨 4박 5일 머무는 바람에 매일 밤 정 전 회장이 술을 마셨다”고 털어 놓았다.

말술이었던 박 전 대통령이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는 바람에 정 전 회장은 매번 일찍 취해 업혀 나왔다. 이 회장은 “강릉시내 미군 물품 공급 시장까지 뒤져서 술이란 술은 모두 모았다”고 회고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정 전 회장을 14년간 보필한 박정웅 메이텍 인터내셔널 회장도 저서 ‘이봐, 해봤어?’에서 “박 전 대통령 얘기를 할 때면 항상 음성을 가다듬고 자세를 바로 했다”며 박 전 대통령을 어려워한 정 전 회장의 모습을 묘사했다.

김창훈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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