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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심·실세형서 비서형까지 1인자 스타일따라 '위상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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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심·실세형서 비서형까지 1인자 스타일따라 '위상차'

입력
2015.01.3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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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권 비서실장 특징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

박정희 정부 靑 중심 통치

비서실장 무소불위 파워

평균 재입 63개월 장수

국정운영 방식 따라 역할 변화

YS, 가신정치로 비선 의존

DJ, 부족한 점 보완적 존재로

MB, 이론가형 참모 선호

이승만 대통령 이래 지금까지 모두 38명의 비서실장이 임명됐다. 대통령 통치스타일에 따라 그 역할은 달랐다. 대통령이 비서실을 통해 내각을 장악하거나 국회와 소통을 원할 때는 정치인이 기용됐다. 비서실장 역할이 비서에 방점이 찍힌 경우 관료가 등용됐다. 그러나 누구를 비서실장에 쓰느냐에 따라 국정운영이 달라진 측면도 없지 않다. 비서실장이 가장 실세로 통했던 때는 박정희 정부에서다. 비서실장 재임기간이 평균 63.7개월로 가장 길었다. 전두환 정부에서는 평균 12.7개월로 7명의 관리형 비서실장이 거쳐갔다. 김영삼 정부는 가신정치를 하면서, 김대중 정부는 내각을 중시하면서 상대적으로 비서실장의 영향력이 줄었다.

이승만·윤보선, 비서실의 사유화

이승만 대통령은 평소 친분 있는 10명 가량으로 작은 비서실을 구성했고, 이들은 개인 비서역할에 그쳤다. 대통령이 100달러 이상 지출경비는 직접 결제할 만큼 모든 일을 손수 챙긴 데 따른 것이다. 막후 실세 프란체스카 여사와 장남을 양자로 보낼 만큼 충성을 바친 이기붕 초대 비서실장 등 인의 장막에 둘러싸이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윤보선 대통령은 더욱 축소된 비서실을 운영했다.

박정희, 비서 정치의 전성기

이후락
이후락

비서실 조직이 갖춰진 것은 박정희 정부 때다. 경제수석이나 민정수석 같은 직책도 당시 만들어졌고, 비서실장의 힘이 가장 셌던 때도 이때다. 청와대 중심의 강력한 집권 체제가 그 바탕이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할 정도로 실세였던 이후락은 39세에 비서실장에 기용돼 5년 10개월 동안 대통령을 보필했다. 김정렴 비서실장은 집권(18년6개월) 절반에 가까운 9년 3개월을 보좌하며 경제를 챙긴 최장수 비서실장이다. 김계원 비서실장은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밀려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실세 비서실장 경계한 전두환

이범석
이범석

전두환 정부 7년 동안 김경원 이범석 함병춘 강경식 이규호 박영수 김윤환의 7명의 비서실장이 거쳐갔다. 2인자를 두지 않으려고 했던 대통령은 비서실장을 거치지 않고 직접 수석비서관에 지시하거나 단독보고를 받았다. 정치인이나 군 출신을 배제하고 관료나 학자, 외교관을 기용해 청와대 파워가 커지는 것을 경계했다. 정치인 출신은 김윤환 비서실장이 유일했다. 경호실장이 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 장세동 경호실장은 최고실력자로 떠올랐다.

노태우, 특보 전성시대

노태우 대통령은 관료 출신인 홍성철, 교수 출신 노재봉, 법무장관 출신인 정해창 3명을 비서실장으로 뒀다. 그러나 정책보좌관, 정치담당 특보, 외교안보보좌관 등 특보단이 비서실장을 능가하는 권한을 행사했다. 노 비서실장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눈길을 끌지 못한 이유다. 6공 황태자로 불린 박철언 역시 특별보좌관과 정책보좌관을 지냈다.

외곽 비선에 의존한 YS

박관용
박관용

김영삼 정부에서는 박관용 한승수 김광일 김용태 비서실장 체제로 이어졌다. 대통령이 정치개혁에 힘을 쏟으면서 비서실장 위상은 높아졌다. 하지만 대통령이 가신정치를 하면서 외곽의 비선조직에 의존하고, 담당비서관과 독대를 통해 국정을 운영해 비서실장 역할에 한계가 있었다. 장관급 인사에도 전혀 관여하지 못했다. 한승수 비서실장의 경우 정치는 실세였던 이원종 정무수석에게 맡기고, 대통령 보좌에 충실했다.

DJ, 호남 대통령과 영남 비서실장

첫 야당 출신인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역을 비서실장에게서 찾았다. 김중권 초대 실장은 당시 여당과 경북 출신이었으나 대통령 신임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뒤이은 한광옥 비서실장도 대통령의 힘을 실어주며 해결사 역할을 했다. 임기 말에는 박지원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복심으로까지 불리며 최고 실세로 등장했다.

노무현, 비서실장에 권력 나눠

이병완
이병완

노무현 정부에서는 문희상 문재인 김우식 이병완이 차례로 비서실장을 지냈다.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기보다 보좌와 참모의 성격이 강했다. 대통령은 비서실장 1명을 중심으로 한 피라미드 체계이던 청와대를 장관급 정책실장과 안보실장을 둬 비서실장의 역할을 분담시켰다. 반드시 문서로 공식통로로 보고토록 해 상호견제와 협력이 가능토록 했다. 대통령의 평생동지였던 문재인 비서실장은 보완적 역할로 역대 최고란 평가를 받았다.

MB, 보수 학자 참모 선호

이명박 정부는 류우익 정정길 임태희 하금열 비서실장 체제로 운영됐다. 대통령비서실이 권위주의적이라는 이유로 대통령실로 바뀌었다.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대통령은 학자나 언론인 등 대체로 온건하고 보수적인 성향의 이론가형 참모를 선호했다. 서울대 교수 출신의 류우익 비서실장은 쇠고기 파동에 따라 4개월 만에 물러났다. 대통령과 친구 사이인 정정길 비서실장은 갈등조정에는 성공했으나 국회와의 소통 역할은 정무수석에게 넘겨줬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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