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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비정규 입법의 졸속 처리를 경계하며

입력
2015.10.22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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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ㆍ15 노사정 대타협은 기간제ㆍ파견 근로자의 고용안정 및 규제 합리화 방안을 후속 논의 과제로 남겨둔 채 마무리되었다. 합의문에 따르면, 노사정은 기간제 근로의 사용기간 및 갱신 횟수, 파견근로 대상 업무, 파견과 도급 구분 기준의 명확화 방안 등에 대해 관련 당사자를 참여시켜 공동 실태 조사, 전문가의 의견 수렴 등을 진행하여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거쳐 합의된 사항만을 입법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후속 논의 절차를 별도로 명시한 이유는 9ㆍ15 노사정 대타협 주체 중 비정규 근로자들이 빠져 있을 뿐 아니라 정부의 비정규 법안이 오히려 그들의 보호 수준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당은 노사정 대타협 이후 서둘러 관련 법안을 제출하고, 그 안에 기간제와 파견근로 등 추가 논의 과제까지 포함시켰다. 여당이 9ㆍ15 대타협의 주체가 아닌 이상 이를 합의 위반이라고 비난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여당의 경솔한 조치가 노동시장 개혁 입법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 7일 노사정위원회가 개최한 ‘9ㆍ15 사회적 대타협의 평가와 과제’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이 여당의 일방적 입법화 전략이 노동시장 개혁을 어렵게 만들 수 있으므로 입법 과정에서 노사정 합의 정신이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고 요청한 것은 이 때문이다.

만약 정부ㆍ여당이 자신들이 이미 마련한 법안들을 입법화하는 것만으로 9ㆍ15 노사정 대타협을 충분히 이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오해다. 그 이유는 오늘날의 노동 현실이 노사정 대타협의 모든 내용을 정당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 노동운동에서 비정규 근로자는 주변화되어 있고, 지금 정부는 시장에 대한 합리적 제어와 노사관계에서 갈등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능력과 의지가 부족하다. 9ㆍ15 노사정 대타협의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비정규 입법 과정에 관련 당사자와 전문가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나아가 노사정 대타협의 입법 과정에서 국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국회가 노사정 대타협의 정신에 동의한다는 것과 입법부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것은 다른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서둘러 제출된 비정규 입법안에서 부작용이 예상되는 조항을 찾고 문제 해결을 위한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국회 고유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과 3개 노동법 학회가 공동 주최한 ‘9ㆍ15 노사정 대타협과 법적 쟁점’ 토론회는 그 노력의 일환이었다. 토론회에서는 이른바 뿌리산업 6개 공정에 파견근로를 허용하는 여당 법률안이 사실상 제조업 전반에 파견을 확대하는 것이며 비정규직 남용을 억제한다는 노사정 합의에 어긋난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그리고 기간제 근로의 사용 기간을 4년으로 확대할 경우 지금보다 더 많은 근로자를 기간제 근로자로 고착시킬 우려가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즉 여당이 제출한 비정규 법안이 실제로 입법화될 경우 현재 법률과 판례에 의해 미약하게나마 작동하는 비정규 근로자에 대한 보호 장치마저 무력해지고 사회적 양극화가 더 심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전문가들이 노사정 대타협의 후속 과제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그 의견 수렴에 소극적인 듯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초 이 토론회는 고용노동부가 발제를 맡고 법학자들이 토론을 맡는 형식으로 계획되었으나 고용노동부의 불참으로 인해 학자들의 발제만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정부가 비정규 입법을 담당하는 국회 상임위원회와 학자들의 초청에 응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정기국회 때까지 합의에 이르러 비정규 입법을 마치겠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 그 까닭이 궁금할 따름이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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