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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홍주 기자

등록 : 2017.07.09 20:00

[편집국에서]스트롱맨을 압도하는 ‘촛불의 힘’

등록 : 2017.07.09 20:00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후(현지시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독일 함부르크 메세에서 응웬 쑤언 푹 베트남 총리와 양자회담에 앞서 참모진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 1월 이후 국제뉴스에는 ‘스트롱맨(Strongman)’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다.

물론 전에도 웃통을 벗고 사냥총을 등에 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묘사하면서 무척이나 마초다운 이 단어를 붙인 기사가 눈에 띄었지만 요즘처럼은 아니었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지난 1월 ‘스트롱맨’은 전 달보다 3배 이상 인터넷 공간에서 더 많이 검색됐을 정도다.

미리암 웹스터 사전의 스트롱맨 정의는 ‘군사수단이나 의지를 동원해 조직을 이끌고(lead) 조정하는(control) 사람’이다.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정의에도 불구하고 많은 정치인에 스트롱맨이라는 말이 따라붙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먼저 보자면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이기적이다. 미국인 입장에선 애국심의 발현이고 미국 우선주의의 표방일 수 있지만 외국인으로서 동의하기 어렵다. 십분 물러서 미국인의 눈으로 그를 본다면 70대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악수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 악수하지 않고, 받을 돈이 있으면 거침없이 청구서를 내민다는 점에서 일견 ‘스트롱’하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아 올린 북한 김정은 정권을 향해 ‘그렇게 할 일이 없느냐’고 비웃어주는 배포도 역시 그런 성정의 하나일 것이다.

지난 4월 플로리다 리조트 마라라고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당시 ‘두 스트롱맨의 만남’이라는 제하의 언론 보도로 소개되었을 만큼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운 스트롱맨 정치인이다. 우스갯소리로 전해지는 이야기에 시 주석은 저장(浙江)성 서기시절 “100㎏짜리 쌀자루를 어깨에 짊어진 채 산길을 5㎞이상 달렸다”고 한다.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었다는 말과 다름없을 정도로 허구적이지만 실제 시 주석은 ‘물리적인 힘’이 비범하다는 이미지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밖에 군비증강과 전쟁할 수 있는 국가를 지향하며 개헌을 밀어붙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강한 남성의 이미지로 똘똘 뭉친 리더이다. 브렉시트 협상에 앞서 정국 장악력 확보를 위해 총선을 밀어붙였던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도 ‘철의 여인’인 마가렛 대처 전 총리의 현신이란 평에 불편해하지 않는다. 5월 대선에 이어 6월 총선마저 압승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유럽 언론들 사이에서 최근 이른바 ‘자유주의(liberal) 스트롱맨’이라 불리고 있다. 인권과 문화의 다양성을 중시하는 그이지만 정국 장악을 위해 962명의 상ㆍ하원 의원들을 베르사유 궁전에 불러모아 대통령의 권위를 보여줬다는 이유에서다.

다극화된 국제사회에서 국익과 안보를 지키기 위해 점차 스트롱맨 정치인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언론과 여론은 그래서 대다수 정치인에 ‘스트롱하다’는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는지 모른다. 북한의 도발을 막으려면 이들처럼 문재인 대통령도 스트롱맨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따른다. 그래야 스트롱맨으로 가득한 국제무대에서 우리 지도자도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국제사회는 오히려 힘을 드러내지 않는 문 대통령의 리더십에 스트롱맨들보다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마크롱, 푸틴 대통령에 앞서 문 대통령을 G20에서 가장 성공한 리더 중 하나로 지목했다. 반대로 힘의 외교를 대표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가치에 반하며 스스로 외톨이가 돼 최악의 정상외교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대화를 강조하며 일견 스트롱하지 않은 문 대통령에 좋은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다름 아닌 ‘촛불의 힘’ 때문일 것이다. 광장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증명한 촛불로부터 비롯된 정권을 어떤 스트롱맨도 가볍게 대할 수는 없다. 프랑스 혁명을 큰 자랑으로 여기는 마크롱 대통령 앞에서 문 대통령은 ‘촛불 혁명’으로 말문을 열었다. 촛불의 힘이 어떤 외교적 수사보다 강할 수 있음을 확인한 대목이다.

양홍주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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