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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왕 시리즈 맥 잇고 북스피어 창립 계기돼

입력
2015.06.12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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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너안내

토요일자 ‘책과 세상’이 3개의 신설 코너를 선보입니다. 설립 10년 이내 젊은 출판사들이 쓰는 ‘우리 출판사 첫 책’은 책과 책 만들기의 이면을 보여줍니다. 페이스북 모임‘과학책 읽는 보통사람들’을 운영하는 이형열씨는 ‘이형열의 과학책 읽기’를 통해 교양과학서를 소개합니다. ‘그림책, 세상을 그리다’는 그림책으로 우리 사회의 풍경을 읽어냅니다. 이상희(시인, 그림책 작가), 최정선(어린이책 편집ㆍ기획자), 김장성(그림책 작가), 소윤경(화가, 그림책 작가)씨가 매주 돌아가며 한국 사회의 다양한 단면을 포착할 예정입니다.

한때 광흥창역에 있던 범우사는 오래된 학교를 개조해서 출판사 건물로 사용했다.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운, 낡은 구조물이다. 외벽을 장식한 등나무 때문에 밤에는 늘 벌레가 들끓었다. 그 건물 옥탑 북스피어 출판사 사무실에서 나는 ‘아발론 연대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 책의 처음을 얘기하려면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아발론 연대기’는 당초 아웃사이더 출판사에서 ‘아더 왕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아웃사이더는 사회과학 성향의 잡지와 단행본을 펴냈고 내 임무는 취재와 편집이었다. 내가 입사했을 때부터 이곳의 사정은 좋지 않았다. 타개책으로, 그 동안 내오던 책들과 성격이 어긋나더라도 ‘팔리는 책’이 필요하다는 편집진의 결정이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 ‘아더 왕 이야기’다. 편집위원이던 김정란 선생이 기획과 번역을 맡았다.

이 책은 아더 왕의 탄생부터 마지막 전투에서 그가 죽기까지, 아더 왕국에서 벌어졌던 원탁의 기사들의 모험을 연대기 형식으로 써 내려간 판타지 소설이다. 비슷한 시기에 각광을 받던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처럼 켈트신화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책이 출간되었을 때 독자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출판사의 누적 적자는 임계점에 다다라 있었고 ‘아더 왕 이야기’만으로 방향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대표가 잠정 폐업을 선언하며 총 8권으로 예정된 ‘아더 왕 이야기’는 4권에서 막을 내린다.

‘아깝다, 어떻게든 마무리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진 책임편집자와 번역자는 뜻있는 투자자의 도움을 받아 새롭게 책을 펴내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것이 북스피어가 탄생한 배경이다. 그러니 첫 책은 당연히 ‘아발론 연대기’다.

넉넉지 않은 자본으로 시작한 출간 작업은 예상보다 지난했다. 워드프로세서에 익숙하지 않았던 김정란 선생은 본문을 포함하여 500여개에 달하는 각주까지 전부 이면지에 연필로 썼다. 선생은 “번역에 푹 빠져 정신 없이 펜을 놀리다 보면 어느새 오른팔이 빠져 있더라”며 씁쓸하게 웃곤 했다. 이걸 타이핑하는 데만 꼬박 석 달이 필요했다. ‘아발론 연대기’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한겨울 늦은 밤까지 곱은 손을 호호 불어가며 자판을 두드리던 기억이 떠오른다. 해도 해도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작업에 마침표를 찍은 것은 2005년 12월 19일. 그 해 봄부터 여름을 거쳐 일 년 가까이 이 책 하나만 붙잡고 있었던 셈이다. 떠올리니 아득하다.

‘아발론 연대기’를 만들면서 신경 썼던 대목 가운데 하나는 ‘아더 왕 이야기’를 구매했던 독자들이었다. 전혀 다른 출판사에서 전혀 다른 장정으로 거듭났지만 구판의 책임편집자로서 미안한 감정을 떨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구판을 샀던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업그레이드 보상이었다. 계산기를 두드리면 손해였지만 바람직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발론 연대기’를 내고 10년이 지난 요즘도, 나는 간혹 “장정이 근사해서 사두긴 했는데 여태껏 못 읽었지 뭐야”라는 얘기를 독자들로부터 듣곤 한다. 뭐 그래도 상관없지 않을까.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책장에 꽂아만 놔도 가격에 맞먹는 즐거움을 주는 책이니까 말이다.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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