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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블랙리스트 근절, 문화기관 인사ㆍ예산 독립성 확보가 근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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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블랙리스트 근절, 문화기관 인사ㆍ예산 독립성 확보가 근본책

입력
2018.05.08 18:2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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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민관 합동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가 10개월에 걸친 조사 결과를 8일 최종 발표했다. 위원회는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9년 동안 작성된 9종의 관련 문건을 검토한 결과 피해 문화예술인이 8,931명, 단체가 342곳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문화권력 균형화’라는 미명아래 유명 문화예술인을 표적으로 삼았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문화융성 기반 정비’라며 관련기관을 총동원해 문화예술인을 감시ㆍ검열ㆍ배제ㆍ차별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권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청와대와 국정원이 주축이 되고 문체부와 그 산하기관이 손발이 되어 실행한 블랙리스트는 위원회가 밝힌 대로 “민주주의 원리를 파괴하고 예술 표현의 자유와 문화예술인의 권리를 침해”한 범죄 행위다. 지난 정부에서 이를 지시하고 실행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은 최근 2심 재판에서 각각 징역 4년형과 2년형을 선고받았다. 정점인 박근혜 전 대통령도 지난달 징역 24년 선고를 받을 당시 죄목에 “청와대 참모진과 공모해 블랙리스트를 기획ㆍ실행한 직권남용”이 포함됐다. 나아가 위원회가 책임 규명을 위해 권고한대로 비록 지시에 따랐다고는 해도 위법을 저지른 공무원 등에게도 응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문화계 좌파 척결”이라는 맹목적 이념으로 문화 창작의 자유를 억압한 것은 단죄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위원회는 헌법 개정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고, 문화기본법을 제ㆍ개정해 관련 범죄에 대한 처벌 근거를 만들도록 권고했다. 대통령 직속의 ‘문화예술 표현의 자유 및 권리 보장 위원회’ 설치 의견도 내놨다. 법적 근거를 만들어 정치권력의 오ㆍ남용을 막고 만일의 경우 엄벌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취지에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과거 블랙리스트 탄압이 가능했던 것은 말단 실행 기관들이 정치권력에 좌지우지되는 구조였던 것이 근본 원인이다. 창작 열기를 돋우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자는 문화 기관까지 예산 등에 발목 잡혀 정치권력에 옴짝달싹 할 수 없는 형태로 수직 계열화된 구조는 타파해야 한다. 이를 위해 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등이 독립적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예산을 편성하며 인사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식이 나을지, 블랙리스트 제도개선위 제안대로 국가예술위원회를 신설해 아예 예술행정을 독립시키는 것이 나을지는 토론해 볼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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