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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돈키호테의 교훈

입력
2015.04.2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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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이 낳은 세계적인 문호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세상을 등진 날이 4월 23일이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영국이 낳은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떠난 날이기도 해 유네스코는 두 작가를 기려 ‘세계 책의 날’로 지정했다. 올해는 세르반테스의 역작 돈키호테 완간 400년이 되는 해이다. 또한 국내에 돈키호테가 처음으로 소개된 지 100년이 된다.

육당 최남선은 1906년 일본 와세다대에 수학하기 위해 가지만 현지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조기 귀국하는 길에 다수의 외국 문학작품을 가져온다. 그 속에 ‘돈키호테’도 들어 있었다. 그는 일본어판으로 된 돈키호테를 읽고서 1915년 자신이 창간한 월간지 ‘청춘’에 ‘둔기호전기’(頓基浩傳奇)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다.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세르반테스는 서반아의 세익스피어란 이름까지 얻은 스페인 제1의 문학가이니 시와 소설에 재명(才名)을 전하니라. 壯時(장시)에 토이기의 전쟁에 출전하였다가는 중상을 입어 좌완을 잃고 또 노예로 팔려가 5년간이나 고역의 참미(慘味)를 맛보니라…(중략)발행 당시부터 썩 널리 세간에 전통되고 시방은 세계의 일대기서로 ‘일리어드’ ‘하믈렛’과 아울러 3대 보전에 열하게 되었으며 원서의 판행이 150여종이오 15개 국어로 번역되어 세계문단에 웅비하니라.”

최남선은 돈키호테의 모험 가운데 ‘풍차와의 모험’ ‘양떼와 싸우는 모험’ ‘사자와의 결투’ ‘몬테시노스 동굴의 모험’ ‘범포(육당은 산초 판사를 이렇게 불렀음)가 바라타리아 섬의 총독이 되어 통치하는 이야기’ 등을 포함해 모두 10개의 모험을 간략하게 소개하였다. 그러나 작품의 배경 설명 없이 접한 독자들은 주인공 돈키호테를 단순히 미치광이 기사로 폄하해 버린 것 같다.

그러나 세르반테스는 책의 검열과 종교재판소의 감시를 피하기 위하여 주인공 돈키호테를 정신 나간 기사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 모험으로 풍차를 괴물 악한이라고 여기면서 공격하는 우스꽝스런 장면을 연출한다. 풍차는 당시 부패한 귀족사회나 사회악을 상징한다. 이렇게 꾀를 쓴 작가는 돈키호테의 가상적 광기라는 문학적 수단으로 당시 사회의 부정과 타락, 모순이나 편견 등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귀족과 사제 등을 풍자 조소하였다. 분명 세르반테스 문학의 위대한 승리이다.

돈키호테는 1편과 2편으로 나뉘어 있다. 1605년 1편이 출간되자 무려 3만부가 인쇄되었다.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스페인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작가는 돈키호테 2편 서문에서 중국의 황제까지도 돈키호테를 읽고서 사신을 보내와 자신을 학교 총장으로 와달라고 초청했지만 거절했다고 허풍을 떤다. 이렇게 성공을 거두자 1614년 가짜 돈키호테 속편이 나올 정도였다. 위작의 출현에 불편한 세르반테스는 1615년 자신이 쓴 진정한 돈키호테 2편을 출간한 후 이듬해 마드리드에서 세상을 떠난다.

4세기 동안 생존하며 인류 최고의 소설로 읽히고 있는 이 작품 속에 황제, 공작, 기사, 신부로부터 이발사, 매춘부, 도적, 뚜쟁이, 점성가 등 사회 밑바닥 사람까지 총 659명의 인물이 나온다. 이런 점만 보더라도 돈키호테는 분명 현대성을 갖춘 유럽 최초의 소설이다. 섬의 총독이 된 산초 판사에게 통치자로서 지켜야 할 뼈있는 충고를 돈키호테는 이렇게 한다. “산초야, 네가 다스리는 백성들의 마음을 얻으려면 첫째 누구에게나 예의 바르게 행동할 것이며, 둘째 식량이 풍부하게 하도록 노력해라. 왜냐하면 굶주림과 물가가 오르는 것 이상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괴롭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돈키호테가 우리에게 주는 삶의 교훈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그라시아스(감사)!

박철 한국외국어대 전 총장ㆍ스페인 왕립한림원 종신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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