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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살아야 한다” 무심한 그림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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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살아야 한다” 무심한 그림의 외침

입력
2015.10.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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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으로 달려

사시다 가즈 글ㆍ이토 히데오 그림ㆍ김소연 옮김

천개의 바람 발행ㆍ50쪽ㆍ1만3,000원

2011년 3월 11일, 원전 폭발 이후 후쿠시마는 과거의 도시로 봉인되어 버렸다. 한 세기가 흐르면 사람들이 다시 찾아와 유적지를 둘러보듯 이 날에 멈춰버린 시간을 상상해 볼까?

두려운 것은 지금도 오염물질들은 신화 속 괴물처럼 바다와 대기로 고약한 숨을 뿜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높은 곳으로 달려’는 같은 시각,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벌어졌던 실제 사건을 다룬 그림책이다. 수업 중이던 마을의 초등학생들은 지진이 발생하자 훈련 받은 대로 책상 밑으로 몸을 숨긴다. 하지만 곧이어 옆 중학교에서 “도망쳐! 쓰나미가 온다!” 는 고함 소리에 모두들 학교를 빠져나가 산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등 뒤로는 학교건물이 종잇장처럼 갈라지고 공중에서 사이렌이 울려 퍼진다. 쓰나미라는 괴물은 커다란 울음소리를 내며 마을의 집들과 자동차들을 닥치는 대로 삼켜버린다. 아이들은 난생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 천신만고 끝에 산 위에 도착한 사람들은 물에 잠겨 폐허가 된 마을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이토 히데오는 무심한 듯 투박하게 산을 향해 달리는 아이들을 그리면서도 아이들 표정에 어린 공포, 절박함, 슬픔 등을 오롯이 담아냈다. 천개의바람 제공
이토 히데오는 무심한 듯 투박하게 산을 향해 달리는 아이들을 그리면서도 아이들 표정에 어린 공포, 절박함, 슬픔 등을 오롯이 담아냈다. 천개의바람 제공

산꼭대기를 향해서 수많은 인파들이 달려가는 장면은 펼침 제본으로 만들어졌다. 급박한 탈출 상황을 현장감 있게 파노라마로 펼쳐 보여 준다. 이토 히데오의 그림들은 마치 초등학생이 물감과 붓으로 어설프게 그린 듯 보인다. 사실 화가가 그림을 못 그려서가 아니라 유려하게 잘 그리는 방식을 애써 감추려는 것이다. 생생하고 순진무구한 화풍으로 인물의 감정을 잘 표현하기 위함이다.

이 그림책은 목숨을 지키는 세 가지 원칙을 말한다. 상상에 그치지 말 것. 어떤 때에도 온 힘을 다할 것. 첫 번째로 대피하는 사람이 될 것.

결국 스스로의 목숨을 지킬 수 있는 힘과 의지, 그리고 서로를 돕는 마음을 연습하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재앙으로 모든 것을 잃어도, 살아만 있으면 앞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소윤경ㆍ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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