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박준석 기자

등록 : 2017.09.01 03:00

[단독] 김상조 “4대 그룹 개혁, 12월이 데드라인”

등록 : 2017.09.01 03:00

공정거래위원장 본보 인터뷰

“현대차의 빅리스크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

# 이재용 부회장 재판

모르쇠 일관은 전략적 실패

이재용,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 돼

뇌물공여는 최소한 인정했어야

# 삼성의 앞날

삼성전자는 큰 문제 없지만

미래전략실 성급한 해체로

다른 계열사엔 컨트롤타워 부재

# 현대차 지배구조 개선

지배구조도 사업개편도 감감

지금같이 시간만 낭비하다간

삼성 같은 리스크 직면할 것

# 네이버 이해진 총수 지정 여부

4.3%로 지분 지배력 없다고 판단

경영상 의사 결정력에서 판가름

개척자 영속성 위해선 고민 필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29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공정거래조정원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삼성 현대차 SK LG 등 재벌 그룹들을 향해 “오는 12월까지 긍정적 변화의 모습이나 개혁 의지를 보여주지 않을 경우 ‘구조적 처방’에 나설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기업 정책 ‘사령탑’인 김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공정거래조정원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4대 그룹의 자발적 변화 시기와 관련, “각 그룹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12월 정기국회 법안 심사 때까지가 1차 데드라인”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또 ‘재벌 일감 몰아주기 조사’와 관련, “총 45개 그룹에 대한 기초적인 서면 실태 조사 결과 법 위반 혐의가 있는 잠재적 조사 대상 그룹이 ‘두 자릿수’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 대해선 “변호인단 말만 듣고 소송 전략을 완전히 잘못 짰다“며 ”결과적으로 유죄 판결을 막지도 못했고 이 부회장을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어 삼성과 이 부회장의 미래에도 큰 부담을 지웠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 부회장의 ‘공백’이 삼성에 미칠 영향에 대해선 “삼성전자가 아닌 다른 계열사들이 문제”라며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자사주 소각을 너무 빨리 발표한 것은 눈 앞의 소송에 급급해 비즈니스 강화가 아닌 지배주주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의사 결정을 잘못 내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현대차 그룹을 향해 “지금 아무런 결정도 하지 않은 채 시간만 낭비하다가는 삼성과 같은 꼴이 날 것”이라며 “너무 오래 기다릴 수 없다는 메시지를 이미 몇 차례 반복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네이버에 대해서도 “이해진 전 의장이 네이버의 경영에 관해 영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고 ‘총수’ 여부를 최종 판단할 것”이라며 “이 전 의장은 지금까지 자신이 (개척자로서) 달성한 부분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폭넓게 청취하고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져야 하는 지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음은 김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홍인기 기자

-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뇌물공여 등 5개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삼성그룹의 경영 전반에 미칠 영향에 대한 관심이 높다.

“삼성전자는 큰 문제 없을 것이다. 미국 전장기업 ‘하만’ 인수와 같은 대규모 인수ㆍ합병(M&A)이나 지주회사 전환 등 사업ㆍ지배구조 측면에서 전략적 의사결정이 1년 가량 늦춰지는 ‘코스트’(비용)는 있겠지만, 이 때문에 삼성전자가 크게 흔들리진 않을 것이다. 삼성전자의 경영시스템은 이미 글로벌 수준에 도달했다. 오히려 문제는 삼성그룹 내 다른 계열사들이다. 다른 계열사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관리할 ‘컨트롤타워’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총수일가 ‘부재’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미래전략실을 너무 성급하게 해체했기 때문이다. 그룹인데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시민단체 활동 시절 삼성 미래전략실 해체를 주장하지 않았나?

“아니다. 권한만 행사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미래전략실의 ‘구조’를 지적했을 뿐이다. 미래전략실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은 어리석다고 오래 전부터 얘기했다. 삼성이 눈 앞의 소송 문제만 보고 미래전략실 해체, 자사주 소각 등을 너무 성급하게 처리해 버렸다. 이 부회장에 대한 확정 판결이나 혹은 1심 판결이 나온 후에 결정을 내렸어야 했다. 그래야 시장의 불확실성을 낮출 수 있었다. 저는 삼성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삼성이 무너지면 한국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지금의 삼성은 매우 잘못된 결정을 연이어 내리고 있다.”

-소송 전략도 잘못됐다는 이야기인가?

“기업의 기본은 비즈니스다. 기업은 비즈니스의 동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지배주주의 법적 위험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면 비즈니스는 망가지게 된다. 막판에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이 ‘내가 다 했다, 이 부회장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식의 소송 전략을 펼쳤다. (최순실 일가에) 돈을 준 건 사실이나, 이 부회장은 이 부분에 대한 보고를 받지도 않았고 결정할 위치에도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같은 논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 부회장의 미래에만 엄청난 코스트가 됐다.”

-삼성은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했나?

“이 부회장 나이가 50이다. 본인이 최종적인 의사 결정을 내려야 했다. 큰 조직이든 작은 조직이든 리더의 역할은 의사결정을 하고, 그 결정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이번 재판은 크게 ▦뇌물공여 ▦국회 위증죄 ▦재산국외도피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이 부회장은) 뇌물공여를 최소한 인정하고, 재산국외도피 부분에 대해서는 ‘실무적인 일이어서 나는 모른다’는 쪽으로 소송 전략을 세웠어야 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재산국외도피죄는 형량이 매우 세지만, 뇌물공여는 그렇지 않다. 이어 이 부회장이 재판부에 ‘앞으로는 다른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며 감경 사유를 만드는 식으로 접근해야 했다. 그런데 삼성은 모든 혐의를 부정해 버렸다. 이 때문에 뇌물 공여죄가 인정되는 순간, 재산국외도피죄가 자동으로 연결됐다. 삼성은 5,000만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알고 있는 경영권 승계 작업도 모두 부정해버렸다.”

-삼성은 ‘금산분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삼성그룹이 삼성생명 문제에 대한 해법을 고민하고 내놓아야 한다. 현재 금융위원회가 ‘금융그룹통합감독시스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환경 변화가 목전으로 다가왔는데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다. 과거처럼 더 이상 ‘버티기’ 모드로 시간을 끌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삼성생명을 필두로 한 비(非)은행 금산분리 이슈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되고, 여기에 국민적인 신뢰가 더해지면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정치적 여건이 조성되기 위해서는 삼성이 먼저 나서야 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인터뷰. 홍인기 기자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현대차의 순환출자 구조가 ‘큰 지배구조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다수 기자들이 현대차의 지배구조 리스크로 순환출자 구조를 떠올린다. 하지만 제가 의미한 현대차의 ‘빅(big) 리스크’는 (지배구조 개선이나 사업 방향과 관련해) 아무 결정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회장을 맨 위에 놓고 모든 가신 그룹들이 회장만 받드는 구도가 형성되며 사업구조나 지배구조 변화를 위한 어떤 결정도 하지 않고 시간만 보내고 있다. 삼성이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총수가 병원에 실려가면서, 참모들을 중심으로 급작스레 일(경영권 승계 등)을 진행하다 결국 이 부회장이 감옥에 가게 됐다. 정의선 부회장이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고, 최고경영자(CEO)로서 가치를 만들어가야 한다. 현대차에 보내는 메시지는 딱 하나다. ‘시간 낭비하면 삼성과 같은 리스크에 직면할 것이니 삼성과 같은 상황을 자초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메시지가 자꾸 순환출자 해소로 잘못 이해되고 있다.”

-현대차 지배구조 개선의 올바른 방향은?

“시민단체 활동을 하고 있었다면 이 부분에 대해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얘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장이 되고 난 후부터 주요 기업의 현안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레버리지를 잃었다.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사실 현대차는 사업이 한창 잘 나갈 때인 2011~2012년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액션’을 취했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은 비즈니스가 어려운 상황이 됐고 지배구조 개선은 더욱 힘들게 됐다. 지금 현대차가 직면하고 있는 지배구조와 비즈니스 리스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현대차가 알아서 판단하고 해결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다만 외부인으로서 그리고 공정거래위원장으로서 또 오랜 시간 현대차를 지켜본 사람으로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조언은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일감 몰아주기 조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45개 그룹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기본적인 서면 실태조사는 완료했다. 일단 (서면 실태조사 과정에서 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추정되는) 잠재적 조사 대상으로 꼽히는 그룹이 ‘두 자릿수’다. 현실적으로 이들 그룹을 다 조사할 수는 없는 만큼 가급적 ‘한 자릿수’ 이내로 압축할 계획이다. 현재 공정위 내에서 일감 몰아주기를 조사하는 부서인 ‘제조업감시과’ 직원이 8명이다. 게다가 공정위는 국세청이나 검찰과는 달리 강제조사권이 없기 때문에 조사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한 달에 1곳 이상 조사하기 어려운 구조다. 외부에서 재벌개혁,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공정위가 너무 뜸을 들이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데, 내부 사정 좀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취임 이후 줄곧 재벌의 ‘자발적 변화’를 주문하는 한편 “마냥 기다리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데드라인은 언제까지인가?

“제가 생각하는 ‘1차 데드라인’은 12월이다. 그 때까지 상위 그룹에서 긍정적인 변화의 모습이나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국민들 또한 ‘재벌들이 변화하고 있구나’라고 체감하지 못한다면 그 이후부터는 법 개정과 같은 ‘구조적 처방’에 나설 수 밖에 없다.”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전 의장(현 글로벌투자책임자 GIO)을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하는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기본적으로 (총수 지정 시 판단 근거가 되는) ‘지배요건’은 지분 지배력과 임원 선임 등 경영상 의사결정에 대한 영향력이다. 일단 이 전 의장은 네이버에 대한 지분 지배력(4.31% 보유)은 없다고 판단된다. 경영에 관해 영향력이 정말 없느냐 하는 부분까지 보고 최종 판단을 할 것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인터뷰. 홍인기 기자

-지난달 14일 공정위를 직접 방문한 이 전 의장과 10분 가량 환담을 나눴는데.

“10분 가량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전 의장에 대해 우리나라 신(新) 산업을 일으킨 ‘개척자’라는 존경심을 갖게 됐다. 다만 개척자로서 이 전 의장이 우리 사회에서 보다 ‘영속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조금 더 고민이 깊어져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친인척을 경영에 개입시키지 않고 지분을 최소한도로 줄이는 등 그 동안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아 온 재벌 총수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만으로 미래까지 담보할 순 없다. 지금까지 이 전 의장이 보여준 모습은 우리가 개혁해야 할 ‘과거의 구태’로부터 벗어난 것일 뿐이다. 우리사회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기업의 모습을 아직 보여주진 못하고 있다.”

-네이버가 국내 검색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이 전 의장이 스스로 사회에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 이것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경쟁당국이 법으로 집행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된 단계까지 온 것이다. 이 전 의장이 지금까지 자신이 달성한 부분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폭넓게 청취하고, 사회에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너무 늦어지면 법적 ‘태클’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규모가 큰 기업의 리더가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은 시장 개척이나 신기술 개발이 아니다. 이는 전문경영인에게 위임할 수 있다. 진짜 리더의 역할은 사회 구성원들이 어떤 요구를 하고 있는가를 파악하고, 사회와 맞춰가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실패한 게 바로 이 지점이다.”

대담=박일근 경제부장

정리=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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