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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청와대, ‘대법원장 사찰’ 문건 있는데도 잡아떼면 그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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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청와대, ‘대법원장 사찰’ 문건 있는데도 잡아떼면 그만인가

입력
2016.12.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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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이 폭로한 양승태 대법원장에 대한 사찰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는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사찰을 한 적이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박근혜정부가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부 간부들을 사찰한 정황을 보여 주는 문건이 버젓이 있는데도 무조건 잡아떼고 보는 행태가 한심하다.

조 전 사장이 15일 국회 국정조사 특위에 제출한 문건에는 양 대법원장이 일과 중 등산한 사실이 외부에 유출돼 곤혹을 겪고 있다는 내용과 2014년 당시 최성준 춘천지법원장(현 방송통신위원장)이 관용차를 사적으로 사용하고 대법관 추천을 앞두고 과잉 의욕을 보이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문건은 복사하면 바탕에 ‘워터마크’가 나타나고 파기 시한이 기재돼 있어 작성기관이 국가정보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실이라면 국내 정치 불개입을 선언한 국정원이 여전히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을 명시한 헌법을 정면 부정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대법원이 “중대한 반헌법적 사태로 경위가 분명히 규명돼야 한다”고 반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청와대는 극구 부인했지만 최근 공개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을 보면 청와대의 사법부 통제 의도가 한층 분명해진다. 김 전 수석의 비망록에는 2014년 9월 6일‘법원 지나치게 강대, 공룡화…견제수단 생길 때마다 길을 들이도록’이라고 적혀 있다. 2014년 대법관 추천을 앞두고는 ‘임기만료인 양창수 대법관 후임으로 호남 출신을 배제하고, 검찰 몫 획득을 위해 양승태 대법원장 등과 교류하라’는 내용의 메모도 있다. 청와대의 사법부 견제와 회유, 협조요청은 일상적이었고, 법관 사찰은 개인의 약점을 잡아 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미뤄 짐작할 만하다.

적어도 국가 최고권력기관이 연루된 사건이라면 부인을 하더라도 납득할 만한 근거와 논리를 대는 게 상식이다. 문건의 출처와 작성자가 누군지, 그리고 내용이 어느 정도 사실에 부합하는지를 소상히 설명해야 이해를 구할 수 있다. 이런 사실 확인 절차나 노력도 없이 “사실무근”이라는 한마디로 넘기려는 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못한 행태다. 그렇게 어물쩍 넘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청와대가 부인함에 따라 이 사건은 결국 박영수 특검의 수사를 통해 밝혀 낼 수밖에 없게 됐다. 국정원의 조직적 사찰과 청와대의 지시나 관여가 사실이라면 결코 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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