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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휴가를 기다리며

입력
2014.07.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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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진 인제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박은진 인제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벌써부터 덥고 지치는 날이다. 여러 일들로 마음이 뒤숭숭할 때 쨍한 햇빛을 느끼며 나무의 숨결을 느껴본다. 공원을 산책하면서 여러 생각들을 흘려보낸다. 그러고 나서도 기운이 나지 않으면 인터넷에서 검색을 한다. 휴가를 즐기고 남긴 추억의 사진들과 경험들을 보고 읽는다.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블로그를 찾아서 그들이 갔던 길, 느꼈던 분위기, 맛보았던 음식, 만났던 사람들을 보며 내가 즐기고 싶은 휴가를 상상하며 기분이 들뜨는 것을 느낀다. 실제로 휴가 스케줄도 못 내고 갈 수 없다고 하여도, 나중에라도 즐길 수 있다는 희망과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진다. 기회가 되면 바로 떠나서 마음껏 즐기고 돌아올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내가 자주 하는 일 중의 하나는 나만의 휴가를 정해놓고 준비를 하는 것이다. 휴가를 준비하는 동안 마치 그 곳에 있는 것처럼 느끼며 설레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누구나 준비를 하지만 준비하는 동안에 즐기는 기다림, 설레임을 더 느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게 된다.

홍콩으로 여행을 다녀온 친구의 즐거운 경험담을 들으며 홍콩 여행을 검색한다. 트램을 타고 빅토리아 피크에서 바다를 보고, 유람선에서 야경을 즐기며 바닷바람을 느끼는 상상에 빠진다. 애프눈티를 여유롭게 마시며 일상에서 벗어난 즐거움을 만끽하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난다. 제주도의 주상절리가 보이는 올레길을 걸어본 사람의 흥분된 마음을 들으면 그 바닷가를 마음으로 거닌다. 짭조름한 바다 내음에 아름다운 절경과 저마다의 사연으로 걷고 있는 사람들과 동질감을 느끼는 장면을 떠올려본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생각하는 것은 지금 현실을 오히려 즐겁게 보내게 해준다. 회피하고 잊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시간, 꿈꾸는 시간으로 더욱 이 시간이 즐거워진다. 사실 즐거워지려고 더 노력하는 것이다. 항상 이때가 가장 힘들다. 벌써 일년의 반이 지나가고 무언가 허둥대는 것 같은 마음이 드는데 휴가지의 사진을 보고 음식을 기대하는 것은 또 다른 마음의 휴가를 즐기게 해준다.

당장 하지 않더라도 무언가를 계획하고 꿈꾸는 것, 그리고 준비를 해보는 것은 마음에 활력을 줄 수 있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 하면 어떤 친구는 그러면 더 기분이 우울해지지 않냐고 한다. 나는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는데 누구는 저렇게 좋은 곳을 다니고 여유롭게 지내고 즐기고 있으면 내 상황과 비교되어 오히려 속상하고 힘들지 않느냐고 한다. 그래서 오히려 남들이 즐기고 노는 글이나 사진은 피하게 된다고 한다. 그것도 맞는 말이고 그럴 수 있다. 나도 가끔은 그런 마음이 들어 검색을 중단하곤 했으니까.

사람마다 상황에 대한 반응은 다르다. 다르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비교가 되어 속상하거나 화날 때도 있지만 내가 할 그 상황을 상상하면 속상함은 오히려 반감될 때도 있다. 사람들은 마음 상태에 따라 같은 상황을 보고도 다른 생각, 다른 느낌을 받는다. 영국의 한 연구팀이 심한 우울증에 걸린 사람과 평상시 마음 상태의 사람에게 행복해 보이는 사진을 보여주고 뇌기능의 활성 정도를 측정했다. 심한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즐거운 사진을 보고도 오히려 슬플 때 반응하는 뇌 부위가 활성화되었다. 뇌는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같은 표정의 얼굴 사진을 보고 서로 다른 감정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다정한 미소를 보고도 비웃는 얼굴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물이 반이 담긴 컵을 보고 어떻게 보느냐라는 유명한 연구가 있다. 긍정적인 사람은 반이나 남았다고 본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인위적으로 바꾸려는 연습이 필요할 때가 있다. 무작정 대책 없이 긍정적이 되라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모습 중에 그래도 즐거운 모습을 찾으려는 연습이 필요하다. 연습을 하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다른 사람이 남긴 추억을 같이 공유하고 그들에게 감사하며 한편으로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속상함을 느끼지만 의식적으로 앞으로 즐길 경험에 집중하면서 오늘도 휴가를 기다린다.

박은진 인제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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