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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우파 거두의 딸' 반동분자로 숙청된 아버지와 동료들 삶 그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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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우파 거두의 딸' 반동분자로 숙청된 아버지와 동료들 삶 그려내

입력
2015.09.11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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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중국 현대사· 장이허 지음. 박주은 옮김. 글항아리 발행ㆍ524쪽ㆍ2만5,000원
나의 중국 현대사· 장이허 지음. 박주은 옮김. 글항아리 발행ㆍ524쪽ㆍ2만5,000원

이견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의 풍경은 스산하다. 이런 시국에서 구차한 꼴을 피하는 방법은 침묵 내지 자기검열뿐이라 사방이 계속 을씨년스러워지는 탓이다. ‘나의 중국 현대사’는 1950~70년대 반동분자 숙청 소동 속에 거세된 중국 지식인들의 삶을 담담하고 뜻밖에 애잔하게 그려낸 기록이다.

저자인 소설가 장이허는 1957~1979년 벌어진 ‘반우파 투쟁’ 당시 우파 거두로 지목된 언론인 장보쥔 당시 민주농민노동당 대표의 딸로, 이 같은 출신성분 때문에 책을 낼 때마다 판매금지 조치를 당했고, 그 자신도 우파로 몰린 인물이다. 반혁명죄로 20년의 징역을 선고받고 옥중에서 남편과 사별했다. 책은 그가 61세가 된 2002년부터 어린 시절 기억 속에 남아있는 부모님, 동료 지식인, 예술가, 문인 등의 모습과 그들이 겪은 일을 써 내려간 결과물이다.

사달은 시국을 의논한 한 교수회의에서 시작됐다. 민주당파 중 하나인 중국민주동맹(민맹)의 실질적 책임자이자 교통부장,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 광밍일보 사장 등을 역임한 장보쥔이 회의에서 마오쩌둥의 정풍운동에 대해 논의했는데, 이 자리는 별안간 이틀 뒤 ‘우파 분자들의 난폭한 반격’의 온상으로 세상에 공표된 것이다.

지식인 추안핑의 ‘당천하(黨天下)’ 발언, 즉 “전통 왕조가 황제 일가의 지배 아래 가천하(家天下)였다면 인민민주공화국을 표방한 현대 중국에서 공산당이 다른 모든 목소리를 억압하는 절대권력으로 군림할 수도 있다는 것” 등의 주장이 당에 보고되며 규탄대상이 됐다.

1934년 3월 21일 동료들과 함께 자리한 장보쥔(앞줄 왼쪽부터 세 번째)과 아내 리젠성(두 번째)의 모습. 글항아리 제공
1934년 3월 21일 동료들과 함께 자리한 장보쥔(앞줄 왼쪽부터 세 번째)과 아내 리젠성(두 번째)의 모습. 글항아리 제공

앞서 마오쩌둥은 정치적 단결을 도모한다는 취지의 정풍운동을 통해 “장기공존, 상호감독의 원칙 속에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백화제방, 백가쟁명을 실시”하겠다고 나선 터였다. 하지만 막상 공상당에 대한 비판이 쇄도하자 우파 분자 찍어내기로 비판의 목소리들을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장보쥔의 회의를 두고 중국공산당에서는 ‘우파 분자들의 난폭한 반격’이라는 글이, 런민일보에서는 ‘무엇 때문인가?’라는 사설이 나왔다. 그는 순식간에 마오쩌둥을 끌어내리고 공산당을 탄압하려는 우파로 몰렸고, 계속된 공세 속에 1주일여 만에 스스로 ‘나는 중대한 정치적 잘못을 범했다’고 인정해야만 했다.

장보쥔 부부는 이듬해 직무와 월급의 강등, 9가지 직함의 상실, 주변인의 차가운 눈초리, 삶의 붕괴 등을 감내해내야 했다. 저자는 이 시기 자신이 바라본 아버지와 그를 곤궁에 빠뜨린 ‘고발자’ 스량, 아버지가 광밍일보 편집장을 맡아줄 것을 부탁하는 바람에 투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추안핑 등을 포함해 모두 여덟 사람의 자취를 담담하게 복원, 재구성하며 아버지와 동료들을 그리고 자신을 역사의 법정에서 복권해낸다.

출간과 동시에 중국에서 판매금지된 원저의 제목은 ‘지난 일은 연기처럼 사라지지 않는다’이다. 역자가 원래 중국판을 읽고 번역했다가, 저자의 요청으로 홍콩판의 내용을 추가한 만큼, 중국 체제에 대한 비판과 지식인들의 실망감, 군중주의와 이념에 대한 사색도 대거 포함됐다.

“불쌍한 중국인들! 이건 비관이 아니라 실망이라고. 공산당 내부에서 스스로를 개혁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 겉으로는 현대화, 실상은 봉건 전제체제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 있지 않지. 상층부는 현대, 하층부는 고대. 그러니 백성만 죽어나지.”(365쪽)

시대의 진실, 이면에 대한 담담하고 유려한 이 기록이 반가우면서도, 색깔공세, 낙인 찍기, 집단매도 등 저자가 그린 수십 년 전 중국의 풍경이 어쩐지 낯설지 않아 연신 쓴맛을 다시게 된다. 지금 이곳의 풍경도 적잖이 스산하므로.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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