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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금융 군단의 공습, 은행 죽느냐 사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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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금융 군단의 공습, 은행 죽느냐 사느냐

입력
2016.01.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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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새 판이 열린다] 은행의 경쟁자가 된 IT

올해 금융권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강력한 경쟁자를 마주할 전망이다. 정부가 지난해말 23년 만에 은행업 면허를 내준 인터넷은행을 위시한 각종 핀테크 기업들이다. 이들의 무기는 자금력이 아닌, 첨단 IT 기술과 방대한 고객정보다. 오랫동안 ‘찾아오는’ 고객을 당연시했던 금융사들은 이제 고객의 손바닥 안에서 영업을 시작하는 IT 군단과 싸워야 한다. 덩치를 잣대로 ‘리딩뱅크’를 운운하던 시대도, 예금과 대출금리 차이로 ‘땅 짚고 헤엄치기’식 영업에 안주하던 시대도 지났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판에서 낯선 경쟁자들과 생사를 다퉈야 하는 금융빅뱅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신개념 인터넷은행의 급부상

#. 작년 1월 출범한 중국 최초의 인터넷은행 ‘위뱅크’(WeBank)가 보유한 고객 기록은 무려 40조개. 중국 최대 인터넷기업 텐센트 등을 통해 수집되는 고객의 온라인활동, 지불행위, 구매패턴, 신용정보 등이 망라돼 있다. 텐센트의 안면인식기술은 구글을 앞선 세계 최고 수준이다. 텐센트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체 신용등급을 산출 중인 위뱅크는 향후 이런 빅데이터를 활용해 본격적인 본인인증과 신용평가에 나설 전망이다.

2010년 이후 급부상한 세계 주요 인터넷은행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출현한 초기 인터넷은행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다. 에그뱅크(영국), 찰스슈왑뱅크(미국), 소니뱅크(일본) 등 1세대 인터넷은행들이 주로 거대 금융사의 자회사 형태로 단순히 은행 점포를 방문하지 않아도 되는 ‘다이렉트 뱅킹’ 수준에 머물렀다면, 최근 등장하는 2세대 인터넷은행들은 검색, SNS, 전자상거래 등 IT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다. 특히 고객과의 접촉수단이 예전 PC, 유선인터넷(1세대)에서 스마트폰, 무선인터넷(2세대)으로 바뀌면서 ‘IT금융’의 확장성은 무한대로 커졌다. 수많은 고객의 빅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수집되고 가공돼 역시 실시간 금융서비스로 제공된다. IT기업들의 제휴 범위에 따라 예전엔 금융사에서 상상조차 어려웠던 제품, 서비스가 이자ㆍ수익의 형태로 제공될 수 있다. 2009년부터 독일에서 영업중인 피도르 은행은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받는 정도에 따라 금리가 결정되고, 현금 외에 비트코인, 게임머니도 취급하고 있다.

하반기 출범 예정인 카카오뱅크, K뱅크 등 국내 인터넷은행들이 예고한 ▦자체 신용등급을 활용한 중금리 대출 ▦로봇(인공지능)이 투자자 자산관리를 해주는 로보어드바이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개인 자금을 모으는 크라우드펀딩 ▦예금을 한 대가로 온라인 이용권 등을 지급하는 디지털이자 등 역시 이런 빅데이터와 모바일 플랫폼 기반이 있기에 가능한 것들이다.

공룡들의 반격

#.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최근 3년 연속 주주총회를 월스트리트 대신 실리콘밸리에서 열고 있다. 이 회사 직원 3만4,000명 중 IT개발 및 데이터 분석 인력은 페이스북 전체 직원(9,200명)과 맞먹는 9,000여명. 글로벌 금융위기 후 소매금융 진출을 선언하면서 인수한 은행은 인터넷은행(GE Capital Bank)이었다. 달러화로 돈을 버는 금융사지만 작년엔 온라인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핵심기술인 블록체인에 투자하기까지 했다. 작년 4월 블랭크페인 회장은 “우리는 IT기업”이라고 선언했다.

금융IT 군단의 패기에 시중은행을 비롯한 국내 금융사들의 위기감은 어느 때보다 높다. 정부의 면허로 확보한 울타리 안에 안주한 결과, 몸집은 공룡으로 불어났지만 식상한 서비스에 고객들이 점점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핀테크기업들은 은행의 본질까지 잠식할 기세다. P2P대출, 크라우드펀딩 등은 단기예금을 장기대출로 운용해 먹고 살던 은행의 ‘자금중개’ 기능을 위협하고 있다. 모바일ㆍ비대면 지급결제서비스는 은행이 독점해 온 계좌이체, 국제송금 등 ‘환업무’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은행들도 생존을 위한 맞대응에 나서고 있다. 신한은행이 지난달 출범시킨 모바일 전문은행 ‘써니’와 비대면 점포 ‘디지털 키오스크’, NH농협은행의 ‘디지털뱅크’, IBK기업은행의 ‘i-원뱅크’, 우리은행의 ‘위비뱅크’ 등이 대표적이다. 인터넷은행 출범에 대비한 맞불 수단인 동시에 더 이상 IT를 외면해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위기감이 낳은 산출물이다.

최후의 승자는?

누가 마지막에 웃게 될지는 미지수다. IT군단의 금융업 내 지위를 가를 은산분리 완화(산업자본의 은행소유 지분 한도 확대) 규정이 과연 국회를 통과할지, 기존 은행 고객들을 빠르게 흡수할 만큼 차별화된 서비스를 내놓을지 아직은 불투명하다. 더구나 이들이 최대 타깃으로 삼는 중금리 대출은 자칫 부실화될 경우,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쟁구도를 유도하는 금융당국은 정작 누가 이기느냐에는 관심이 없다. 당국이 기대하는 건 정체된 국내 금융산업에 ‘메기’(인터넷은행 등 핀테크기업)를 풀어 꿈쩍 않던 ‘공룡’(시중은행 등 기존 금융사)들을 춤추게 하는 것이다. 도규상 금융위 금융서비스국장은 “게을러서든, 생각을 못했든 기존 금융사들이 제공하지 않던 서비스를 새 경쟁자들이 도입해 고객들이 반응한다면 결국 이로 인한 경쟁이 촉발되고 우리 금융산업의 경쟁력은 올라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 이상 과거의 틀에 안주해있는 금융사들은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김용식기자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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