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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에… 책과 사람이 만나는 뜨거운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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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에… 책과 사람이 만나는 뜨거운 풍경들

입력
2015.09.1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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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물성의 아름다움과 매력 예찬

책 미치광이 치료법엔 웃음 나와

영화·커피 등 문화적 풍광도 담아

6만권 소장 장서광 히틀러 이야기도

독서인간· 차이자위안 지음ㆍ김영문 옮김 알마 발행ㆍ360쪽ㆍ1만9,800원
독서인간· 차이자위안 지음ㆍ김영문 옮김 알마 발행ㆍ360쪽ㆍ1만9,800원

중국 작가 겸 평론가 차이자위안은 “책은 영혼이 있는 사물”이라고 말한다. 모양, 색깔, 냄새, 체온, 친구, 애인, 집, 여정, 사랑, 감정, 운명, 그리고 꿈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책과 독서에 관한 21가지 이야기를 풀어놓은 ‘독서 인간’에서 그는 책에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오지랖 넓게 모았다. 책의 내용이 아니라 책 자체가 그의 관심사다. 책은 “저자의 정신세계가 사물로 드러난 것인 동시에 독자가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이므로 “사람과 책의 관계는 차디찬 물질적 관계가 아니라 열기로 가득한 정신적 관계”라며, 그 뜨거운 만남의 풍경을 펼쳐 보인다.

수많은 인용과 예시로 가득찬 이 책은 책의 물성이 지닌 아름다움과 매력을 예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책 표지, 면지, 책날개, 띠지, 북디자인, 판형, 삽화, 장서인, 책갈피와 심지어 책을 갉아먹는 길이 8~12㎜ 책벌레에도 일일이 애정을 바쳐 다양한 일화와 어록을 들려준다. 중국과 서양의 독서광, 작가, 출판인, 디자이너, 수집가 등 저자가 불러내는 인물들을 따라가면 책의 문화사가 보인다. 냄새만 맡아도 어느 출판사 책인지 알 수 있다는 책벌레 작가나 사람 가죽으로 책 표지를 만든 미치광이처럼 별난 이야기도 꽤 많다. 요즘은 구경도 하기 힘든 작은 곤충, 책벌레를 두고 중국 시인 류사허가 한 말이 인상적이다 “책 사이에서 부침하고, 문자 사이에서 태어나 죽는 책벌레의 삶이 바로 우리 독서인의 모습의 투영이 아닌가.”

책을 입고 쓰고 신은 책벌레. 알마 제공
책을 입고 쓰고 신은 책벌레. 알마 제공

‘책의 거처’로 서가, 서재, 서점, 도서관을 이야기하는 2부에 이어 책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로 넘어가는 제 3부의 주인공은 서치(책바보), 서적상, 독서인, 장서가, 책도둑이다. 많은 책을 어떻게 보관할 것이냐는 고민에 대해 “가장 좋은 서가는 텅 빈 서가다. 그래야 새 책을 꽂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은 것이나, 책에 미쳐서 장서가 집안에 시집을 갔지만 장서각에 들어가도록 허락 받지 못하자 병이 나서 죽은 청나라 여인의 일화는 차라리 안쓰럽다. 책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 미치광이가 된 사람을 치료하는 방법을 말하는 대목은 유머러스하다. 저자가 제시하는 처방 중에는 책을 싫어하는 늑대 같은 반려자를 이용하는 법, 미친 듯이 책을 사서 지갑을 비게 하고 생계를 어렵게 하라는 게 포함돼 있다. 장서광에는 독재자 히틀러도 있다. 장서가 6만권 이상이었다고 한다.

동서고금 금서의 문화사를 간추린 장면 중 1930년대 중국 국민당의 금서 정책에 진보적지식인들이 대응한 수법은 웃지 못할 소극이다. 마르크스의 ‘마’자면 보여도 금서로 묶이던 때라 ‘공산당 선언’은 ‘미인의 은혜’로, ‘볼셰비키’는 ‘소녀 춘정을 느끼다’라는 희한한 제목으로 둔갑했다.

서가에서 꿈을 꾸는 책벌레를 묘사한 헨리크 파이르호에르의 그림. 알마 제공
서가에서 꿈을 꾸는 책벌레를 묘사한 헨리크 파이르호에르의 그림. 알마 제공

마지막 4부는 책과 다른 세계가 만나 빚어내는 문화적 풍경을 이야기한다. 영화, 커피, 여인, 치료, 광고와 책의 인연을 소개한다. 책과 서점, 도서관이 배경이나 소재로 등장하는 영화, 카페나 커피숍에서 책을 쓴 유명 작가들, 책으로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독서치료의 처방과 효과, 책을 팔기 위해 온갖 궁리를 짜낸 광고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진다.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은 서문에 잘 나와 있다. “이것은 한 진실한 독서인이 깊은 사랑으로 세운 무지개다리다. 여러분이 이 다리를 건너 녹음방초가 우거진 곳으로 들어가면 끝도 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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