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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논설고문

등록 : 2018.04.12 17:35

[이유식칼럼] 이 '거룩한' 국회를 어이할꼬

등록 : 2018.04.12 17:35

'고도의 정치적 행위' 운운한 상고 의견서

정치파업 일삼는 정치권···정국현안 올스톱

여야 리더십 결핍 심각, 기득권 '공범 잔치'

4월 임시국회가 '개점휴업'을 이어가고 가운데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어린이들이 국회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개헌과 입법 등 쟁점 현안을 둘러싼 여야의 정치파업으로 텅빈 의석을 보며 미래의 유권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뭔가 잘못 본 줄 알았다. 국회가 1ㆍ2심 법원의 국회 특수활동비 공개 판결에 불복해 최근 대법원에 상고하며 제출했다는 의견서 말이다.

"국회의 특활비 내역을 공개할 경우 고도의 정치적 행위가 노출돼 궁극적으로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 행정부 감시업무를 담당하는 수행자ㆍ방법ㆍ시기 등에 관한 정보가 노출되면 국회의 행정부 감시 역할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특활비 수령인에 대한 정보는 개인정보여서 공개해야 할 필요성이 크지 않고 국민의 알 권리보다 자기결정권이 우선돼야 한다."

실무 작성자가 누구든, 최고책임자의 재가를 거쳤을 '거룩한' 문장 하나마다 웃음이 나온다. '고도의 정치적 행위 노출'에 '행정부 감시역할 위축'이고 '알 권리보다 자기결정권 우선'이라니···. 특권과 갑질을 일삼고 자아도취에 빠져 영감님 행세만 해온 국회의 자화상이 겹쳐진다. 회기의 절반을 그냥 노는 국회의원 급여를 최저시급으로 책정하라는 청원에 30여만명이 서명한 게 불과 한달 전이다. 이젠 이 청원에 반대한 농담성 주장이 더 와닿는다. 자기 밥그릇과 당파적 이익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국회의원에게 최저임금을 받으라고 한다면 무슨 수를 쓰든 최저임금을 마구 올릴 것이니 그 기준을 적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참으로 낯짝 두꺼운 의견서를 낸 것을 보면, 농담이 농담같지 않다.

여야가 쟁점 정치ㆍ민생법안과 일자리 추경예산안, 개헌문제 등 다룰 현안이 많다면서 4월 국회를 열더니 서로 자기 관심사만 고집하며 의사일정을 합의 못해 어제까지 11일째 놀고 있다. 여당이 국회를 포함한 권력기관 비위 수사를 전담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립법 처리를 요구하면 야당은 공영방송 독립성 보장을 위한 방송법 개정안 처리를 먼저 보장하라고 주장한다. 일부 조항이 위헌판결을 받은 국민투표법 개정을 수년째 미뤄 "존재이유를 망각한 직무유기"라는 비판이 높아도 야당은 '개헌 물타기'라며 뻗대고 여당은 청와대만 바라보며 속만 태울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은 국회로 넘어온 후 '버린 자식' 취급받으며 본회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폐기될 신세다. 대통령의 개헌안 국회연설도, 지방선거-개헌투표 동시실시도 물건너 갔다. 2개월 연속 취업자수 증가가 10만명을 겨우 넘는 최악의 고용대란이 현실로 닥쳤는데도 일자리 추경안은 길을 잃었다. 미세먼지와 재활용 쓰레기, 최저임금 관련 논의도, 법안도 모두 먼지만 뒤집어쓴 채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런 와중에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자질 논란이 불에 기름 부은 듯 태풍으로 비화되며 여권과 야권이 책임전가 공방을 거듭하니 4월 국회는 무노동 유임금의 결정판이 될 전망이다. ‘민주당 정부’를 표방하며 협치를 강조해온 문재인 정부에서 툭하면 국회가 멈춰서는 것은 아이러니다. 적폐청산이 시대적 과제인 만큼 정치보복 프레임으로 맞서는 반동세력과는 결코 함께 할 수 없다는 뜻이겠다. 명분없이 주고받는 야합 정치의 구태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있을 것이다. 그 바탕엔 집권 1년이 되도록 70% 안팎을 넘나드는 지지율, 그리고 눈앞에 다가온 지방선거의 유ㆍ불리에 대한 전략적 고려도 있을 것이다. 농담처럼 항간에 떠도는 얘기도 있다. 진보정권 20년 집권의 필요조건은 물과 기름처럼 엇나가는 여야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그래서 홍준표의 막말 리더십이 보수야당을 이끌게 하는 것이고 충분조건은 공영방송을 품는 것인데 안팎조건이 다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한국당이 민주당 장기집권에 가장 우호적인 '공범'이라는 말도 나온다.

한때 철도노동자들이 '철도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는 파업 표어를 내건 적이 있다. 여야는 국회 파업 역시 '국회를 멈춰 정치를 바꾸자'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자 권력 혹은 갑질 감시 수단이며 국민이 위임한 자기결정권의 표현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국회파업은 미세먼지나 분리수거 쓰레기보다 못한, 말 그대로 '더러운' 적폐일 뿐이다. 국회를 멈추는 일이 정치생명을 멈추는 일임을 왜 모르는가.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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