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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나빠 먼 고교 다녀… 부끄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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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나빠 먼 고교 다녀… 부끄러워요”

입력
2017.01.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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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명문으로 불리는 고교들

중학교 성적 우수한 학생 선점

일반고 교육력 회복하기 어렵고

학생은 명문고 입학 실패 열패감

2012년 절대평가제 도입했지만

고입 내신 요구에 줄세우기 여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경기 남양주의 인구 7만명 규모의 한 읍에는 중학교 3개, 고등학교 2개가 있다. 올해 이들 중학교에서 약 800명이 졸업하지만, 이 중 성적이 좋은 400여명만 집 근처의 2개 고교에 진학할 수 있다. 고교 비평준화 지역이어서 일반고 한 곳은 중학교 내신 성적으로 학생을 뽑고, 자율형공립고인 다른 한 곳 역시 내신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기 때문이다. 중학교 성적이 낮은 나머지 400여명은 어쩔 수 없이 버스로 30분~1시간 거리에 있는 다른 지역의 고교에 진학해야 한다. 이 지역의 한 고교 교사는 “성적이 나빠 먼 고교에 다니는 학생과 그 학부모는 깊은 열패감을 갖는 경우가 많고, 동네에서 얼굴 들고 다니기 부끄럽다고 말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성적 줄 세우기’ 고교 입시는 비평준화 지역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소위 ‘입시명문고’라 불리는 고교들이 내신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다른 고교보다 먼저 선발하면서 일어나는 전국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중학교 3학년의 고교 입시는 4월 영재학교 입시를 시작으로 전기학교인 특수목적고(특목고), 자율형사립고(자사고)가 신입생을 먼저 선발하고, 후기학교 중 전국단위자율학교, 과학중점학교가 학생을 뽑는다. 일반고와 자율형공립고는 모든 전형이 끝난 후 학생을 뽑거나(비평준화 지역), 추첨으로 배정(평준화 지역)받는다. 자사고 특목고 등은 고교 교육의 다양화라는 명목으로 도입됐지만, 성적을 중심으로 고교 체계를 급속히 서열화시켜 왔다.

성적 위주 고입의 부작용은 적지 않다. 중학생의 성적 경쟁이 치열해 질 수밖에 없어 통계청의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2015년)에 따르면 중학교의 사교육비 지출(27만5,000원)이 고교(23만6,000원)보다 더 많다. 정부는 중학교의 성적 경쟁을 줄이기 위해 2012년부터 절대평가 방식인 성취평가제를 도입했지만, 일선 중학교에서는 내신을 요구하는 고입을 위해 학생들을 1~100등까지 줄 세우는 석차백분율을 내고 있다. 중학교 한 학기 동안 체험ㆍ토론형 수업을 통해 진로를 탐색하는 자유학기제 확산의 걸림돌이기도 하다. 주로 1학년 2학기 때 시행하는 자유학기가 끝나면 고입 준비를 위해 다시 주입식 수업으로 돌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고교 간 형평성도 문제다. 자사고 등은 학생들의 성적, 면접, 자기소개서 등을 활용해 원하는 학생을 선발하지만, 평준화 지역의 일반고는 추첨으로 학생을 배정 받는다. 김승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위원장은 “입학생의 성적으로 고교가 서열화돼 있는 구조에서는 선발효과가 교육효과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일반고의 교육력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고교별로 비슷한 배경의 학생들이 모이게 돼 학생들의 조화로운 인격ㆍ사회성 형성에 좋지 않으며, 일반고 진학 학생들은 명문고 진학에 실패했다는 ‘낙인’이 찍힌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고교 선발방식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교육시민단체인 좋은교사운동 김수길 정책위원은 “예체능ㆍ과학 영재 등을 위한 일부 특수한 고교를 제외하고 고교는 진학 희망자 중에서 추첨을 통해 선발해야 더 많은 학생에게 고른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역시 최근 발표한 19대 대선 교육 공약 중 하나로 ‘고교 선지원-후추첨’전면 도입을 제안했다. 모든 고교의 선발시기를 일원화하고, 영재학교 외 모든 고교는 성적을 반영하지 않는 희망자 중심의 ‘선지원-후추첨’ 방식으로 신입생을 뽑자는 것이다. 김승현 정책위원장은 “선발의 시기와 방법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서열화된 고교 체제를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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