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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환 칼럼] 분노한 시민에서 성찰적 유권자로

입력
2017.05.0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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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쏟아진 분노가 이끌어낸 대선

우리 모두 냉철한 지성적 대처가 필요

심사숙고한 후 내일 투표소로 향해야

지난 반 년 우리 국민은 분노한 시민으로 행동했다. 국민이 세운 최고 권력이 한갓 사인에 불과한 한 여인과 공모하여 오랫동안 국정을 농단해온 사실이 폭로되면서 생업에 전념하던 ‘사적 개인’은 분노한 ‘공적 시민’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전국의 광장을 점령하고 ‘이게 나라냐!’며 분노하면서 직접 주권을 행사했다. 정상적인 대의정치를 잠시 정지시키고 국민이 직접 주권을 행사하는 예외적인 비상정치(=헌법정치)에 돌입했다.

분노한 시민의 권력 앞에서 우왕좌왕하던 검찰과 국회는 그 동안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주인(국민)/대리인 관계를 깨달은 양 황급히 시민의 뜻을 좇기 시작했다. 검찰이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수사를 진행했고, 국회가 압도적인 다수표로 대통령탄핵을 가결시켰으며, 특검이 과감하고 신속한 수사를 전개했고, 마침내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을 파면시켰다. 이 과정에서 국정농단과 권력형 비리에 연루됐던 권력자들도 줄줄이 구속·기소되었다. 이내 대선 정국이 이어졌고 마침내 5년 간 한국사회를 이끌어갈 새 대통령 선출을 하루 앞두게 되었다.

분노한 시민이 주도한 헌법정치는 지난 70년 간의 한국정치사를 통 틀어 발생한 변화에 못지않은 커다란 변화를 야기했다. 제왕 같던 대통령과 거대 기업의 총수를 영어(囹圄)의 몸으로 전락시켰고, 평소에 범접할 수 없었던 고압적인 권력기관들을 고분고분한 국민의 기관으로 탈바꿈시켰으며, 위압적이기 그지 없던 정치인들을 시민들의 눈치를 살피는 아첨꾼들로 변모시켰다. 이와 함께 사회 전반에 퍼진 갑을 문화가 급속히 위축되고 평등의 문화와 공정의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분노한 시민들의 헌법정치는 정치 영역은 물론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혁신적인 변화의 씨앗을 뿌렸다.

이제 당면 과제는 시민들의 분노를 창조적 에너지로 결집시켜 정의로운 민주공화국 건설을 견인해낼 유능한 리더십을 세우는 일이다. 이 과업에는 분노의 파괴적인 힘보다 지성의 건설적인 지혜가 요구된다. 불의에 대한 분노는 개혁의 물꼬를 터주지만 정의로운 사회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모두가 염원하는 공정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성의 안내가 필요하다. 내일 대통령 선거는 우리 모두의 냉철한 지성적 대처가 필요한 첫 번째 도전이자 가장 중요한 도전이다. 지난 대선에서 무능하고 독선적인 리더십이 창출되고 또 그로 인해 감당하기 어려운 외교·안보·경제적 딜레마가 국민들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현실을 두고 볼 때 현명한 투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분노는 숙고를 촉발하지만 숙고 자체에는 장애가 된다. 또한 편견과 선입견, 근거 없는 정보와 가짜뉴스, 악의적인 인신공격과 흑색선전, 편협한 집단이익과 지역주의, 판에 박힌 이념적 사고, 맹목적인 미움과 증오, 부모 자식 친구들의 회유와 청탁 등도 현명한 판단을 가로막을 수 있다. 성찰은 이 모든 장애를 극복하며 최선의 판단에 도달하려는 지성의 치열한 노력이다.

가장 훌륭한 리더를 뽑지 못하면 우리는 또 다시 분노하는 시민이 되어 광장을 찾아야 할지 모른다. 국민의 공복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아주 가끔은 시민들이 분노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잦은 분노는 경험을 통해 배우지 못하는 어리석음만을 드러낼 뿐이다. 머지않아 또 다시 분노하는 시민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후보의 인격과 성품, 민주주의와 법치에 대한 의지, 비전과 공약의 타당성, 소통능력과 포용력, 신중함 및 결단력, 통솔력 등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

분노한 시민이 되는 것보다 현명한 유권자가 되는 것은 더 어렵다. 그럼에도 성찰하는 시민들이 없으면 정의로운 민주공화국에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이 역사의 경험법칙이자 정치세계의 진리다. 이것이 남아 있는 하루나마 우리가 최선을 다해 어떤 후보를 뽑을지를 심사숙고한 후 투표소로 향해야 할 이유다. 나의 선택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 되기를, 아니 최악의 선택은 아니기를 기원하면서 말이다.

김비환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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