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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돌아가는 위안부 모습 꼭 남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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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돌아가는 위안부 모습 꼭 남기고 싶었다"

입력
2016.02.23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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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개봉을 앞둔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 신재훈 인턴기자(세종대 광전자공학과 4)
24일 개봉을 앞둔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 신재훈 인턴기자(세종대 광전자공학과 4)

영화 ‘귀향’(24일 개봉)은 조정래 감독이 10년 이상 품은 자식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내용을 담은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기까지 순탄치 않은 시간을 보냈다. 자신의 집을 팔아 제작비를 마련했다가 그마저 떨어져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한 네티즌의 아이디어로 포털사이트에서 2,000만원의 제작비를 모으기도 했다. ‘귀향’ 홈페이지에 영화 시나리오 등 모든 콘텐츠를 공개하고 1만원짜리 티켓을 팔기도 했다. 영화를 만들지도 않았는데 미리 티켓부터 판 셈이다. 결국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전 세계에서 12억원의 돈을 모았고, 지난해 말에는 제작비를 마련해 준 분들을 위해 미국을 비롯해 전국 각지를 돌며 시사회도 열었다.

조 감독은 “내가 남자라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만들 자격이 없다는 말도 들었다”면서 “영화를 본 관객들이 여성 감독이 만든 듯 섬세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감격했다”고 말했다.

그 역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상처와 아픔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었다. 10여년 전 할머니들이 머물고 있는 ‘나눔의 집’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할머니들이 입은 피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귀향’은 저 혼자 만든 영화가 아닙니다. 70여만명의 마음이 모였고 배우, 스태프들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영화를 촬영할 때마다 배우와 스태프들이 울지 않았던 적이 없어요. 할머니들의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가 느껴져서 일 겁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일본에서 ‘귀향’ 시사회가 열렸다.

“상당히 많이 긴장되고 떨린 순간이었다. 일본 관객들이 많이 왔다. 걱정을 많이 했다. 혹시 일본 관객들이 보다가 문제가 생길까 봐서다. 하지만 괜한 우려였다. 영화를 보신 일본 분들이 영화가 좋다고 하시면서 일본 국민들도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말해 줬다. 감격스러웠다.”

-투자금 모으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 관계자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이야기 자체가 조심스러운 데다가 보는 관객들도 아파서 못 볼 것이라는 지적을 많이 했다. 또한 시대물에 전쟁 장면도 있기 때문에 제작비가 만만치 않게 봤다. 적어도 웬만한 상업영화 한 편을 만드는 40억~50억원의 제작비가 들 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영화화되더라도 흥행은 장담을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시나리오 좋다는 말은 자주 들었다. 거기서 희망을 놓지 않았다.”

-10여년 전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들을 만났다는데.

“처음에 갔을 때는 ‘나눔의 집’은 할머니들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단지 영화감독으로서 동료들과 봉사활동을 하러 갔던 게 전부였다. 그러던 중 강일출 할머니의 ‘태워지는 처녀들’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 그림이 꿈에도 나왔다. 타고 있던 소녀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꿈을 꾼 것이다. 그림이 되감기 되듯 불도 피도 다 사라졌고, 소녀들이 마치 부활을 하듯 하늘을 날아올라 이동을 하더라. 장관이었다. 지금도 생생하다.”

-영화를 만들 결심은 언제 했나.

“꿈 속에서도 그 소녀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당시에는 꼭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보다는 연극이나 소설, 드라마 등으로 무조건 이 내용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조건 시나리오를 써내려 갔다.”

-집필 과정은 어땠나.

“시나리오는 세 번 정도 바뀌었다. 영화 속 주인공 한 명을 꼽으라면 무녀가 된 은경(최리)이다. 처음에는 의사였다가 간호사가 되기도 했고, 평범한 회사원으로도 바뀌었다. 하지만 자신보다 아픈 사람을 치유한다는 설정 하에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 무녀가 된 것이다. 영화화가 안 될 것 같아 연극 대본으로 바꾸기도 했다.”

-쉽지 않은 작업인 듯하다.

“강일출 할머니 그림을 시작으로 ‘나눔의 집’ 할머니들의 증언집을 보면서 제대로 공부했다. 그러면서 내가 얼마나 무지한 사람인지 깨닫고 너무 힘들었다. 증언집도 10페이지 이상 읽기가 힘들었다.”

-제작비가 없어 크라우드 펀드로 자금을 모았는데.

“‘귀향’은 여러 사람들에 의해 한 푼 두 푼 모아서 여기까지 온 작품이다. 처음에는 내 집을 팔아서 제작을 시작했다. 돈이 떨어지고 나서는 영화 제작도 중단됐다. 한 네티즌의 제안으로 포털사이트에서 돈을 모았다. 100원으로 시작해 나중에는 2,000만원이 넘게 모였다. 또 영화 홈페이지에 영화의 줄거리 등을 다 공개해서 만원의 티켓을 팔기도 했다. 사전에 티켓을 판매한 것이다.”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안다.

“지난해 4월부터 6월까지 두 달간 촬영했다. 배우나 스태프들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영화다. 극중 소녀들로 출연한 배우들은 대부분이 재일동포들이다. 그들은 목숨을 내놓고 영화에 출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한 우익 블로거가 배우들 신상을 다 털어서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악플이 어마어마하게 달렸다. 아직 10대인 주인공 강하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아내도 영화에 참여했다고 들었다.

“영화 속에서 정민(강하나)이가 어머니에게 받은 괴불노리개는 한복디자이너인 아내 이혜인씨가 만든 것이다. 영옥(손숙)의 가게에 있던 여러 개의 괴불노리개 역시 아내가 만들었다. 아내가 한복디자이너라 극중 영옥의 직업을 한복 만드는 사람으로 했다. 아내는 나의 후원자이자 공동 창작자다. 영화 촬영 내내 현장에 나와 스태프처럼 일도 했다. 영양실조에 걸려서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어 미안한 마음이 크다.”

영화 ‘귀향’의 한 장면.
영화 ‘귀향’의 한 장면.

-신인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였는데.

“영화를 보고 (배우들에게서)못 빠져 나온 관객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배우들은 선입견이라는 게 존재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새로운 얼굴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극중에서 기무라로 나오는 정무성씨는 원래 사업하는 분이다. 배우의 꿈을 접은 분을 우연히 알게 돼 기무라 역할을 제안했다. 역할을 너무 잘해줘서 영화 시사회가 끝난 다음에는 욕하시는 분들도 있더라. 그만큼 연기를 잘 했다는 증거다.”

-남자가 다가가기 힘든 주제였을 텐데.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차피 너는 남자이기 때문에 만들어봤자 한계가 있다’, ‘남자라서 영화를 만들 자격이 없다’ 등의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그 말에 ‘맞다’고 답했다. 남자로서 죄의식이 있고 평생 벗어날 수 없을 듯하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

“영화를 찍는 내내 배우와 스태프들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20대 젊은 배우와 스태프들도 영화를 찍으면서 울더라. 젊은 친구들에게도 ‘귀향’은 남다르게 다가오는 주제였나 보다. 한 번도 울지 않고 촬영을 넘어간 적이 없을 정도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어떤 분들은 ‘귀향’이 여성 감독이 만든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 말에 무척 고마웠다. 할머니들의 상처가 선정적으로 보이지 않게 내면을 드러내고 싶었다. 세심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내가 여자였으면’ 했던 적이 바로 이때였다.”

-다음 작품은 무엇인가.

“영화 ‘서편제’의 임권택 감독을 매우 존경한다. ‘서편제’가 내 인생을 바꿔놨다. ‘서편제’를 보고 나서 판소리, 북 등을 배우면서 국악인이 됐다. 다음 영화는 판소리를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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