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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청년에게 물었다- ①남북한 연애의 온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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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청년에게 물었다- ①남북한 연애의 온도차

입력
2014.12.24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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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67년, 남북의 문화 차이를 극복하는 첫 걸음은 서로를 알아가는 일이다. 그래서 남한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 청년 5명을 만나 북한에서의 생활을 물어보고, 그들이 느끼는 문화적 차이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앞으로 두 회에 걸쳐 ‘연애’와 ‘취업’을 주제로 남북한 온도차를 살펴 본다. -편집자주-

● '탈북청년에게 물었다' 시리즈 더 보기 ▶ ②남북한 취업의 온도차

탈북 여대생 김지수(28, 가명)씨는 새 삶을 쫓아 남한 땅을 밟은 지 수년이 지났지만 연애에 성공한 적이 없다.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로 각종 선입견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지수씨는 "이성들이 대개 나를 전투적이고 사납고 여성스럽지 못하게 본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돼 연애를 시도하는 것 조차 겁이 난다. 지수씨는 "본래 나는 성격이 소심한 편이어서 자꾸 위축된다"며 "말투가 직설적인 게 문제인 것 같은데 잘 고쳐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100°C의 만남부터 0°C의 이별까지, 청춘의 연애는 쉬운 법이 없다. 남녀간의 차이도 극복하기 어려운데 탈북 청년들은 가치관과 문화의 차이도 넘어야 한다. 대체 북한의 연애는 어떻게 다른걸까. 그들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자.

● 데이트 코스

기태(23, 가명): “북한은 '데이트 코스'라는 개념이 없어요. 제가 살던 곳은 도시가 아니라서 연인들이 만날 땐 주로 강변을 걷거나 3, 5일마다 열리는 장을 구경했죠.

준영(23, 가명): “아직도 연애를 보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데이트를 맘껏 못해요. 대신 남녀 친구 여럿이 집에 모이면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고 놀아요.”

지수(28, 가명): “맞아요. 결혼을 염두에 두고 만나는 연인이 아니라면 대부분 숨어서 데이트를 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대도시는 좀 더 개방적이에요. 저는 청진에 살았는데, 그곳에서 이성친구와 데이트를 할 땐 명소를 찾아다녔어요. 주로 대중 온천탕이나 휴양소 같은 명소를 갔죠.”

● 스킨십

기태: “스킨십이요? 하하. 북한에선 이성친구와 손을 잡고 다니는 일도 드물어요. 결혼한 부부라면 모를까. 사람들이 많은 공공장소에서 키스하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죠. ”

상구(27, 가명): “저는 2007년에 탈북을 했는데, 연애문화가 개방적으로 변하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이전보다 자유로운 부분이 있었죠. 길에서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를 하는 건 꽤 볼 수 있었어요. 물론 주변 어른들은 ‘젊은 것들이 발칙하다’고 혀를 찼지만.”

준영: “남한에 온 후 개방적인 성문화에 놀랐습니다. 남한에서는 사귄 지 한 달도 안 돼 키스를 해도 흉이 아니지만, 북한에서는 사귄지 적어도 3개월은 지나야 가벼운 뽀뽀를 하는 정도였어요. 북한 친구들은 대개 3개월 정도는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라고 여기는 것 같아요.”

● 기념일 문화

준영: “북한은 남한처럼 기념일이 많지 않아요. 크리스마스, 화이트 데이, 발렌타인 데이는 자본주의 문화라고 금지하죠. 제일 큰 기념일은 서로의 생일이나 100일 정도? 선물은 정성이 담긴 편지가 제일 일반적이고 신발이나 옷, 꽃도 주고 받죠.”

민철(29, 가명): “한동안 이성친구에게 당원증 케이스를 주는 게 유행이었어요. 당원증은 그 사람이 앞으로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죠. 제가 중학교 3학년 때는 소년동맹에서 발행하는 증서를 선물하는 게 인기가 있었죠. 소년동맹증은 남한친구들이 서로 학생증 주고 받는 것과 비슷한 문화에요.”

기태: “시계나 거울도 선물로 인기가 좋아요. 북한에서도 선물마다 담긴 뜻이 있는데, 거울에는 '네 마음을 알고 싶다'는 의미가 있어요. 기념일은 아니지만 '태양절' 같은 김일성 생일 날에 모여 놀아요. 남녀 여럿이 공원에 둥그렇게 둘러 앉아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죠. 저는 청진에 살았는데 주로 저희 동네 애들은 '2.64 바닷가'나 '청년 공원'에 모여 놀았어요.”

● 혼전동거

상구: “북한도 예전처럼 꽉 막힌 곳은 아니에요. 연애도 많이 자유로워졌죠. 하지만 주변에서 혼전 동거를 한 연인의 얘기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어요.”

준영: “남한에서도 혼전동거에 대한 찬반이 많지만 북한에선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동네에 소문이 퍼지면 보수적인 어른들이 '결혼도 안 한 것들이 한 집에 산다'며 질 안좋은 아이로 여길 거에요.”

기태: “만약 혼전 동거를 한다면, 남자 보다 여자가 힘들 것 같아요. 여자에게 훨씬 보수적인 잣대를 두죠. 남한도 그렇지만 북한은 여자에게 혼전 순결을 강요하는 문화가 강하거든요. 한 번 '끼'있는 여자로 취급을 받으면 나중에 결혼을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 남북의 온도차, 어떻게 극복하나

탈북 청년들이 느끼는 남북한 문화 차이는 확연하다. 그렇다면 탈북 청년들은 남한의 연애 문화에 어떻게 적응하고 있을까? 비교적 남한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김다운(23, 가명)씨는 “남한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게 간단하지만 특별한 비법”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북한에서 온 친구들 중에는 남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그들끼리만 어울리는 친구들이 의외로 많다”면서 “나는 적극적으로 남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연애'나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경험한 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무지개청소년센터의 김미라 팀장은 “다양한 단체에서 탈북민의 남한생활을 돕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업이 ‘탈북민’만 대상으로 하고 있어 남한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는 많지 않다”면서 “남북한 청년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현기자 hyun1620@hk.co.kr

강병조 인턴기자 (한성대 영문학과4)

이영은 인턴기자 (성신여대 법학과4)

※ '탈북 청년에 물었다- ②남북한 취업의 온도차'는 12월 26일 게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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