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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와 판사로… 법정서 만난 하버드 로스쿨 동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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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와 판사로… 법정서 만난 하버드 로스쿨 동창

입력
2015.07.15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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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사·변호사로 승승장구하다

실연 후 정신분열증… 노숙자 전락

불법침입 혐의로 기소된 법정서

하버드 동창 판사와 얄궃은 만남

노숙자 알프레드 포스텔. 제로헤지(www.zerohedge.com) 제공
노숙자 알프레드 포스텔. 제로헤지(www.zerohedge.com) 제공
포스텔이 과거 하버드대 로스쿨 졸업장을 받고 있다. 제로헤지(www.zerohedge.com) 제공
포스텔이 과거 하버드대 로스쿨 졸업장을 받고 있다. 제로헤지(www.zerohedge.com) 제공

4월 초 어느 토요일 오후, 미국 워싱턴 고등법원 재판정에 불법침입 혐의로 기소된 노숙자 알프레드 포스텔이 판사 앞에 섰다. 하얗게 샌 머리, 헝클어진 턱수염, 늘어진 턱살, 바지 위로 삐져나온 뱃살까지 허름한 행색이었다.

법원 서기가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와 진술이 다르면 불리할 수 있습니다”라고 고지하자 포스텔로부터 “내가 변호사입니다”라는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토머스 몬틀리 판사는 처음에 앞에 있는 포스텔의 기이한 주장을 무시했다. 포스텔은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었다. 몬틀리 판사는 계속해서 포스텔의 도주 가능성을 심사하는 데만 집중했다. 포스텔은 이런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1979년 하버드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취임 선서까지 했습니다.” 순간 몬틀리 판사의 귀가 번쩍 뜨였다. 그도 1979년에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했기 때문이다. 포스텔을 응시하던 몬틀리 판사가 입을 열었다. “포스텔, 나는 당신이 기억납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3일 하버드대 로스쿨 졸업 동기인 두 사람이 법정에서 판사와 노숙자 신분으로 다시 만난 기구한 사연을 소개했다.

포스텔은 1948년 태어나 넉넉하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자랐지만 공부에 대한 열의가 뛰어났다. 스트레이어 칼리지에서 회계학을 전공하고 회계사 시험을 통과해 회계 법인에서 일했다. 당시 5만달러가 넘는 고액 연봉을 받았다. 포스텔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메릴랜드대에서 경제학 학위를 딴 뒤 하버드대 로스쿨에 입학했다. 로스쿨 동기인 마빈 배그웰은 “포스텔이 나비넥타이를 맨 단정한 모습으로 수업을 듣던 게 기억난다”며 “똑똑하고 문제의 핵심을 꿰뚫는 질문을 하던 학생이었다”고 떠올렸다. 존 G. 로버츠 대법원장도 포스텔과 하버드 동기다.

포스텔은 하버드를 졸업한 후 ‘쇼 피트맨 포츠 앤 트로브리지’라는 로펌에 취직했다. 로펌의 유일한 흑인 변호사였던 그는 회계사 경력을 활용해 세금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보트로 항해하는 게 취미일 정도로 화려한 생활을 했던 그는 몇 년 뒤 알 수 없는 이유로 회사를 떠났고, 이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지인들은 정신질환이 그를 망친 것 같다고 추측했다. 그의 노모는 “사귀던 여자와 나쁘게 헤어진 후 이상해졌다”고 WP에 전했다.

포스텔은 이제 흰색 비닐봉지에 자신의 소지품을 넣고 워싱턴 17번가 교차로에 자주 출몰하는 노숙자가 됐다. 교회에서 가끔씩 잠을 청하기도 한다. 포스텔은 WP와의 인터뷰에서 “당신이 회사에 들어가면 명성을 얻지만 그 직업을 잃으면 모든 게 끝난다”며 “내 삶은 이제 쓸모 없게 돼 버렸다”고 말했다. 몬틀리 판사는 이번 사연에 대한 WP와의 인터뷰를 거절했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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