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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과거사 외면, 한국 정부는 공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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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과거사 외면, 한국 정부는 공범이었다

입력
2016.08.19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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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협상 타결 후 박근헤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협상 타결 후 박근헤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불편한 회고: 외교사료로 보는 한일관계 70년

이동준 지음

삼인 발행ㆍ292쪽ㆍ1만4,000원

‘한일수교의 재인식’ 연재기사

외교문서ㆍ출처 보충해 엮어

해방後 한일관계 실증적 조망

어정쩡한 한일조약 타협부터

위안부 합의 졸속 논란까지

정부, 과거사 문제 日에 동조

“공허한 미래 논하는 日 탓보다

과정 부정해 온 과거 직시하라”

한국 정부의 안이함에 일침

지난해 12월 28일 한국과 일본은 위안부 문제를 ‘극적’으로 합의했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라는 말과 함께. 이것으로 종지부를 찍었으니 “더 이상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었다. 이에 따라 지난달 28일 ‘화해ㆍ치유 재단’, 이른바 위안부 재단이 공식 출범했다. 일본 정부가 출연하기로 한 10억엔(107억원)의 출연 시기와 사용처에 대해서도 큰 틀에서 합의가 됐다고 한다.

그러나 한일 외교장관이 ‘영원한 역사’를 만들어낸 그날 “피해자를 생각하지 않은 졸속 야합”이라는 울분이 터져 나왔고 “화해ㆍ치유 재단 강행을 중단하라”는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단어만 바뀌었을 뿐 분노는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합의를 통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이 회복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하면서 “일본 측의 조치가 신속히, 그리고 합의한 바에 따라서 성실하게 이행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채근만 하고 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 대일관계의 최대 현안 과제 중 하나는 불행했던 과거사의 올바른 청산이었다. 일본은 그때나 지금이나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를 보자”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그들은 1910년 한일 병합조약의 불법성을 단 한번도 인정하지 않았다. 1990년대 이후의 공식 사과도 한반도 강점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일병합은 정당했지만 통치 과정에서 이러저러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 유감이라는 수준의 언급이었다.

1965년 12월 18일 청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조약 비준서에 서명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1965년 12월 18일 청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조약 비준서에 서명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한일조약 국회 비준에 앞서 박정희 정부와 민주공화당은 전국을 순회하며 한일회담 대국민설명회를 열었다. 여기서는 일본에서 들어올 유무상 자금이 "우리의 '청구권'에 의한 정당한 권리 행사"로 포장됐고 산업화와 경제 성장이라는 장밋빛 희망이 강조됐다. 국가기록원 제공
한일조약 국회 비준에 앞서 박정희 정부와 민주공화당은 전국을 순회하며 한일회담 대국민설명회를 열었다. 여기서는 일본에서 들어올 유무상 자금이 "우리의 '청구권'에 의한 정당한 권리 행사"로 포장됐고 산업화와 경제 성장이라는 장밋빛 희망이 강조됐다. 국가기록원 제공

한국 정부 역시 과거사를 묻어두고 싶어하는 일본에 사실상 동조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1965년 체결된 한일기본조약 제2조의 문구 해석이다.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 한국 정부는 “이미 무효”라는 말이 포함됐으니 ‘병합조약과 식민지배가 원천적으로 무효화됐다는 것을 일본이 인정한 것 아니냐’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제 무효’라는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하고 그렇게 일본 국민에게 설명했다. 어정쩡하기 이를 데 없는 정치적인 타협이었다. 이처럼 한국 정부가 과거사를 봉인하려 하면 할수록 역설적으로 그만큼의 반작용이 발생해왔다. 그래서 한일 과거사는 끊임없이 현재진행형이었다.

신간 ‘불편한 회고’는 양국의 외교 사료 등 공문서에 입각해 해방 후 한일관계를 조망한다. 저자인 이동준 일본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가 해방 70년을 맞은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한국일보에 ‘광복 70년ㆍ한일수교 50년의 재인식’이라는 제목으로 27회에 걸쳐 연재한 기사를 다시 엮었다. 신문기사에서는 밝히지 못했던 출처도 상세하게 제시했다. 최근 1,200쪽에 달하는 일본판 한일회담 백서 ‘일한 국교정상화 교섭의 기록’(삼인)을 편역한 저자는 이번 신간에도 여기 실린 외교문서를 적극 활용했다. 한일 관계를 둘러싼 논란은 구체적인 경위 파악을 위한 1차 자료 없이 감정적으로 격화할 때가 많다. 실증적이고 객관적인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책은 반성이나 가해 의식 없는 일본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저자 스스로도 “해방 후 한일관계는 이 책에 나왔듯이 어두운 모습만으로 점철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해방 후 한일관계 70년을 아름답게 그리기에는 그 이면에 자리한 ‘부(負) 역사’가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며 이에 대한 평가를 독자들에 맡기면서 ‘반성 없는’ 일본을 사실상 묵인해온 한국의 안이함에 초점을 맞춰 힘있게 전개해 간다.

“한일관계가 이렇게 ‘비정상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데는 애초부터 식민지배에 가해의식을 갖지 않았고 이후에도 이를 철저하게 외면해온 일본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동시에 이런 일본을 묵인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한국도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리고 한국이 여전히 “‘우리 안의 식민성’에 갇혀 있다”며 과거사 문제에서 사실상 일본과 “공범 관계”라고 꼬집었다.

저자는 “일본이 자발적으로 병합조약과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거의 제로”라고 단언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허한 미래만을 논하는 일본을 탓하기보다 우리 스스로 “과정을 부정해온 궁색한 과거사를 직시”하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지적한다. 1965년 이후 어정쩡하게 지나쳐온 양국의 여러 문제들을 제대로 도마에 올려 놓고 외교 문제화하자는 것이다. 한일 과거사를 봉하기 위해 권력자들이 박아놓은 대못들이 녹슬어 더더욱 표나는 지금, 그 문제를 근본으로 돌아가서 되짚어보게 하는 책이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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