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전혼잎 기자

등록 : 2017.07.05 04:40
수정 : 2017.07.05 18:49

번듯한 대기업 정규직인데 시급 6790원 "남들은 몰라요"

등록 : 2017.07.05 04:40
수정 : 2017.07.05 18:49

업무 많고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

가맹점 경영난 뒤엔 대기업 갑질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 감소 우려

다른 정책으로 보완해야 될 문제”

'최저임금 비정규직철폐 만원공동행동'(만원행동) 회원들이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1번가 앞에서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심현철기자 shim@koreatimes.co.kr

수도권에 거주하는 윤자영(57ㆍ가명)씨는 A대형마트의 정규직 계산원으로 하루 8시간을 꼬박 계산대 앞에서 일하고 월 120만원 남짓을 실수령액으로 받는다.

시급은 현 최저임금(6,470원)보다 320원 더 많은 6,790원. 윤씨는 “남들은 번듯한 회사에 정규직으로 일하니 살만 하겠다고 얘기하는데, 버는 돈만 놓고 보자면 식당에서 설거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윤씨가 일하는 A대형마트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계열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공방이 거세지면서 최저임금은 영세업체만의 문제인 것처럼 치부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임금 지급 여력이 충분한 대기업에서도 최저임금은 판을 치고 있다. 가맹 영세업체들의 최저임금 문제도 대기업 프렌차이즈들의 ‘갑질’에서 기인한 경우가 많아, 최저임금 문제는 상당부분 대기업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국제노동기구 최저임금/2017-07-04(한국일보)

4일 통계청에 따르면 최저임금의 90~110%를 받는 근로자는 지난해 184만3,000명으로 전체 근로자 10명 중 1명 꼴이었다. 이들 중 대기업 소속 비율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민주노총은 최저임금에 영향을 받는 근로자 중 300인 이상 대기업ㆍ공기업 고용인원(간접고용 포함)이 60%에 육박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가맹점 고용인원은 제외한 수치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이들(최저임금 ±10%)을 ‘최저임금 수혜자’로 규정하고 있지만, 대기업조차 최저임금을 ‘최고임금’으로 여기는 상황에서 ‘수혜자’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다.

실제 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의 전체 직원 6만9,600여명 중 무기계약직은 4만4,000여명(63%)인데, 모두 윤씨처럼 최저임금보다 겨우 몇백원 더 받는 수준이다. 이들 3사의 지난해 매출을 합하면 30조원에 달하며, 영업이익은 1조원을 넘는다. 그런데도 직원 10명 중 6명은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고, 성과로 인한 임금 인상도 거의 없다.

이들 업체 소속 비정규직ㆍ하청직 등은 더 열악한 처지다. 현장에서는 이들이 무기계약직의 두 배 규모라는 얘기가 나온다. 서울의 B대형마트 입점업체 소속으로 8년 동안 일한 김모(53)씨는 한 달에 110만원을 벌지만, 정규직 직원들보다 출ㆍ퇴근 시간 전후로 1시간 정도 더 근무한다. 관리자들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일찍 나와 매대 청소나 창고 정리 등을 도맡기 때문이다. 김씨는 “마트나 업체에서 제공해주지 않는 탓에 유니폼이나 모자, 명찰 등도 돈을 주고 사야 해서 실제로 버는 돈은 더 적다”고 토로했다.

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 3사도 대기업이지만 아르바이트생에게 최저임금만 주는 것을 당연시한다. CGV의 경우 최저시급을 받는 미소지기는 약 4,400여명이다. 서울시내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일하는 송영은(23ㆍ가명)씨는 “구직 사이트에서 시급이 다른 곳보다 높아 선택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주휴수당이 포함된 시급(7,770원)이었다”면서 “대기업이니까 시급은 알아서 높이 챙겨주는 줄 알았는데 주휴수당 개념을 알고 나니 생색에 불과하단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송씨는 “청소아주머니가 사정상 급작스럽게 그만두자 최저시급만 주면서 화장실 청소까지 시키더라”고 전했다. 다른 영화관에서 일하는 김미경(24·가명)씨도 “주휴수당을 포함해서 7,770원은 법에 따라 당연히 줘야 하는 건데, 이렇게 대우 좋게 해주는 아르바이트가 어디 있냐는 인식을 관리자들이 갖고 있다”며 “새벽에도 업무 관련 공지가 카카오톡에 뜨고 확인을 안 하면 나중에 매니저가 추궁을 하는 등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말했다.

직영 패스트푸드점이나 브랜드 커피전문점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서울 청담동에 있는 브랜드 커피전문점에서 일하는 김연수(22ㆍ가명)씨는 “본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직영점인데도 최저임금을 맞춰준다”고 전했다. 업무량은 만만치 않다. 주문 받은 음료를 만들면서 손님들을 응대하고, 계산은 물론 청소까지 해야 한다. 대기업 직원 신분이고 열심히 일하면서도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 이들은 항상 생활고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김씨는 “학비와 생계비를 벌기 위해 커피전문점을 비롯해 2, 3개의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월세와 식비, 교통비, 통신비로만 월 100만원이 넘게 들어간다”고 하소연했다.

오상봉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대기업은 본래 인건비 비중이 높지 않아 최저임금을 인상해도 충격을 덜 받고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영화관 아르바이트 직무는 사실 상시적으로 필요한 인력이니 상시 고용해야 하지만 대기업에서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가맹점들도 결국 대기업 본사와의 문제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프랜차이즈마다 차이는 있지만, 편의점의 경우 한달 본사에 내야 하는 프랜차이즈 수수료가 매출의 25~35% 가량에 달하고, 빵집은 빵 1개를 팔 때마다 매출의 60~70%를 본사가 가져간다. 치킨집 역시 본사에서 물류대금으로 매출의 60% 가량을 가져간다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지난해 소상공인연합회가 사업체 3,0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소상공인 비즈니스 활성화 등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경영 및 영업활동에 주된 애로사항은 경쟁업체의 불공정 거래ㆍ대기업 가격 할인(32.2%)이었다. 자금 상황(30.9%), 높은 임대료(26.9%)가 뒤를 이었다. 영세업체의 경영난에는 대기업 및 건물주와 이들의 ‘갑을 관계’가 자리잡고 있다는 얘기다. 오상봉 연구위원은 “프랜차이즈 본부의 경우, 불공정거래 관행 끊이지 않으니 1차 분배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고, 아르바이트 노동자에게 정당한 노동소득 분배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 전문가들은 결국 최저임금을 영세업체와 저임금 근로자간의 문제로만 바라봐서는 안 되며, 보다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저임금 의존구조가 대기업까지 관행화돼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과도하게 저임금에 의존해왔던 관행을 끊도록 하고 새로운 노동비용 증가요인에 대해 사회적으로 어떻게 분담해야 할지를 추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재계 주장처럼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이 감소할 우려가 있다면 그것은 다른 정책으로 보완해야 하는 문제”라면서 “5인 미만 사업체에 한해 지방세 감면 혜택이나 임대료나 카드 수수료 인하, 최저임금 인상분에 대한 원청 분담 의무화 등 다양한 뒷받침 정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이 3일 오후 최저임금위원회 7차 전원회의가 열리는 서울 중구 회현동 직업능력심사평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저임금 155원 인상을 제안한 사용자위원들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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