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표향 기자

등록 : 2017.12.09 04:40
수정 : 2017.12.10 08:50

[나를 키운 8할은] 장항준 감독 “인생의 이정표가 된 반쪽짜리 영화 티켓”

등록 : 2017.12.09 04:40
수정 : 2017.12.10 08:50

영화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드라마 작가로 종횡무진하는 충무로 이야기꾼 장항준 감독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영화 ‘썸머 스토리’를 보고 영화 창작자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했다.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제공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자!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만약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기회가 오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기회를 만들면 된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아 왔고, 살고 있다. 하기 싫은 일은 억만금을 준다 해도 안 한다.

학창 시절엔 공부를 안 했다. 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공부를 못했다. 그게 부끄럽지는 않았다.공부 못하는 게 이상한 일인가? 공부를 꼭 잘해야만 하나? 어른들이 어느 대학을 갈 거냐고 물으면 뻔뻔하게 대답했다. “하버드대학이요.”

공부를 안 하니까 시간이 남아돌았다. 심심한데 소설이나 한 편 써 봐야겠다 싶었다. 왜 하필 소설이었냐고 물으면 이렇게밖에 대답할 수가 없다. “그냥 쓰고 싶었다”고. 일찍이 어린 장금이도 수랏간을 뒤흔든 희대의 명언을 남기지 않았나. “음식에서 홍시 맛이 났는데 왜 홍시라 생각했냐고 물으면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이라고.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갱스터 소설을 썼다. 영화 ‘영웅본색’과 ‘대부’를 모티브 삼은 이야기였다. 같은 반 친구들에게 보여 줬다. 아주 난리가 났다. 옆 반 친구들까지 복사해서 돌려볼 정도로 인기였다. 단숨에 학교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친구들이 내 소설을 읽고 좋아해 주는 모습을 보니 나도 신이 났다.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일이구나. 창작의 기쁨을 처음 느꼈다.

그 즈음 ‘문학 소년’ 친구들에게 시 동인지를 만들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면서 시를 접하게 됐고 문학을 알게 됐다. 소설을 읽다가 한국 근현대사에 관심이 생겼고, 나중엔 인문사회과학에까지 눈길이 뻗어나갔다. 마르크스와 레닌도 읽었다. 박정희 대통령에서 전두환 대통령으로 이어진 독재 시대였다. 세상은 왜 이 모양인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궁금증이 샘솟았다. 창작자로서의 자세를 그때 배운 것 같다. 그 시절 읽은 책은 창작의 원천이 됐다. 그 밑천으로 지금도 먹고 산다.

책을 좋아했지만 소설가가 될 생각은 못했다. 갱스터 소설 따위를 어찌 감히 숭고한 문학에 들이대겠나. 다만,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은 되고 싶었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돼야겠다고 결심했다. 영화를 책만큼 좋아하기도 했다. 영화도 이야기라는 점에선 소설과 다르지 않았다. 그 갱스터 소설도 영화를 상상하면서 썼다. 소설 중간에 ‘영웅본색’의 한 장면처럼 삽화를 그려 넣기도 했다.

장항준 감독이 ‘기억의 밤’ 촬영 현장에서 모니터 화면을 보며 웃음 짓고 있다.

대학 원서 접수 날짜가 다가오자 고민이 깊어졌다.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을 딴따라라 부르며 업신여기던 시절이었다. 부모님 앞에서 연극영화과에 가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연극영화과가 개설된 대학도 몇 군데 없어서 합격할 자신도 없었다. 대학에 붙는다고 해서 영화 창작자가 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도전에 실패하면 배워놓은 기술도 없이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 걱정됐다. 나날이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영화를 보러 가자며 불렀다. 종로경찰서 형사인 친구 아버지가 관할 구역 극장에서 받은 공짜 초대권을 주셨다. 지금도 그날이 생생하다. 허리우드극장과 영화 ‘썸머 스토리’. 당시만 해도 낯선 영국 영화였는데, 도시 엘리트 청년과 시골 처녀의 구슬픈 사랑 이야기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 주인공이 아들을 바라보는 눈빛에 정신마저 아득해졌다. 눈물이 났다.

집에 돌아오던 길, 버스가 교통 정체로 을지로에 멈춰 섰다. 문득 창 밖 거리의 인파가 눈에 들어왔다. 저 수많은 사람들 중에 몇 명이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얼굴 표정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전부 삶에 찌든 얼굴뿐이었다.

‘그래, 내 인생 내 마음대로 살자. 공부도 못하니 애초부터 글러먹은 루저 인생이다. 남들이 가는 안정적인 길을 가도 인생 조질 거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인생 조질 거니까, 기왕이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인생 조지는 게 낫다.’

친구에게 극장 티켓을 달라고 했다. 극장 입장용 반쪽을 내고 남은, 좌석번호가 적혀 있던 관객 소지용 반쪽짜리 티켓. 내 것까지 티켓 두 장을 손에 꼭 쥐었다. 언젠가 먼 훗날 내 인생을 바꾼 티켓이라고 말하리라!

장항준 감독의 연출 복귀작 ‘기억의 밤’은 왜곡된 기억을 파편을 찾아가며 두 남자의 비극을 그려낸 스릴러 영화다.

마음을 굳힌 나는 며칠 뒤 연극영화과에 원서를 냈다. 몇 차례 낙방하고 서울예대 연극과 90학번으로 입학했다. 신나는 대학 시절을 보내고, ‘비상구가 없다’의 객원 연출부로 영화 일을 시작했다. 영화사가 망해서 잠시 방송 작가 일도 했다. 1996년 ‘박봉곤 가출사건’으로 시나리오 작가로 입봉했고, 2002년 ‘라이터를 켜라’로 감독 데뷔했다. 그리고 드라마 ‘싸인’(2011) 대본도 쓰고, 예능프로그램 출연도 하고, 영화 카메오로도 나왔다. 그때마다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자. 혹여 망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망하자.’

최근에 스릴러 영화 ‘기억의 밤’을 내놨다. 웃기는 장항준이 스릴러라니. 그야말로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관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스릴러를 좋아한다. 그리고 영화가 하고 싶다. 그 결과물이 ‘기억의 밤’이다.

그날의 극장 티켓을 여전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영화 줄거리는 가물가물하고, 티켓을 꺼내 보는 일도 요즘엔 거의 없지만, 그 티켓은 내 인생의 이정표 같은 존재다. 그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서, 열심히 영화를 만들고 사랑하겠다.

정리=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장항준 감독의 구술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장항준 감독은 “한때 코미디 장르를 좋아했지만 지금은 스릴러 장르에 관심이 많다”며 “코미디는 관록이 쌓였을 때 다시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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