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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경제논리에 매몰된 15만의 생존권

입력
2016.09.08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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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미세먼지를 인간에게 암을 일으키는 것이 확실한 ‘1군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익히 유해성이 잘 알려진 석면, 벤젠 등과 동급으로 취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무총리실 산하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현재 가동 중인 화력발전소와 증설 예정인 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초미세먼지로 매년 1,144명이 조기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화력발전소 수명이 대략 30년 정도니 3만명 이상이 화력발전소의 미세먼지로 사망과 관련한 피해를 보는 셈이다. 심각한 수준을 넘어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도 가만있을 수 없었는지 석탄화력발전소 저감 대책을 내놨다. 현재 가동 중인 53기의 석탄화력발전소 가운데 노후발전소는 폐쇄하거나 액화천연가스(LNG)를 사용하는 발전소로 교체하고, 신설 예정인 화력발전도 바이오매스 등의 연료로 전환하는 것을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는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너무 뒤늦었지만, 화력발전소에 대한 정부의 시각이 바뀐 것만큼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정부 대책엔 여전히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현재 건설 중인 포천의 석탄화력발전소다.

포천 석탄화력발전소는 정부의 석탄화력발전 저감대책에서 누락되어 있다. 포천에 건립 중인 건 화력발전소가 아니라 집단에너지시설이라는 입장 때문이다. 포천 화력발전소는 당초 석탄이 아니라 LNG를 원료로 열병합발전을 하는 집단에너지시설로 계획됐다. 그러나 포천시가 도시가스 공급사업자와의 협의가 무산되자 경제성을 이유로 연료를 석탄으로 바꿔 허가를 내주며 사달이 나기 시작했다. 거기에다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열에너지 대부분은 인근에 공급하는 게 아니라 다시 전기를 만드는 데 쓰일 예정이다. 사실상의 석탄화력발전소다. 포천시 측은 여전히 열공급을 위한 집단에너지시설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최근 공개된 한국전력거래소 내부문건에도 ‘석탄열병합발전소’라고 명기되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기 생산이 주목적인 석탄화력발전소가 맞다. 정부와 지자체가 포천 석탄화력발전소를 집단에너지시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몰염치한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포천시가 이를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사업자에게 연료 교체를 허용했다면 이는 지자체 실적을 위해 주민들을 기만한 것이다. 중앙정부 역시 이를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대기업에 특혜를 주기 위해 법의 맹점을 스스로 열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쩌면 앞에서는 화력발전을 저감하겠다고 하고, 뒤에서는 우회로를 통해 신규 화력발전 문제를 풀어가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포천시가 내륙 분지지형이라는 점 역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대형발전소들은 대부분 해안가에 밀집해 있다. 막대한 양의 공업용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발전소가 가동되기 시작하면 공업용수 부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인근의 농업용수와 생활용수 부족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게다가 내륙분지 지형에서의 대기오염은 확산성이 낮기 때문에 지역주민이 고스란히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포천 농민들과 주민들은 수년간 화력발전소 반대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그간의 지자체와 중앙정부 행태를 보면 주민들의 주장을 지역이기주의로 보기 어렵다. 그러나 사업자인 GS E&R은 이미 2,000억원의 공사비용이 투입됐기 때문에 공사중지는 없다는 입장이다. 공사가 중지된다면 GS는 투자금 회수를 위해 포천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걸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이젠 포천시가 진퇴양난에 놓였다. 결국 경제논리에 의해 15만 지역 주민의 생존권이 저당을 잡혔다. 상황이 여기에 오기까지 공공기관들은 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오히려 의도했던 것일까.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에너지시민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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