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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고사작전, 진짜 속내는 ‘친박 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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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고사작전, 진짜 속내는 ‘친박 천하’?

입력
2016.03.2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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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배신의 정치 심판" 엄포에

경선 기회 조차 '하명 무시' 판단

친박, 제발로 나가길 바라지만

유승민도 명분 있어야 탈당 결행

여론 역풍·수도권 악재 우려에도

대다수 의원 '朴에 찍힐라' 침묵

"정당 민주주의 후퇴시켜" 지적

2005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비서실장이던 유승민(왼쪽) 의원이 당시 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5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비서실장이던 유승민(왼쪽) 의원이 당시 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2일로 4ㆍ13 총선 후보자 등록(24, 25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도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유승민(대구 동을) 의원의 공천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새누리당이 당의 척추나 다름없는 대구 공천을 이토록 미룬 건 이례적인 일이다. 현재까지 상황에 비춰보면 세 가지는 자명해 보인다. ①‘공천 줄 생각이 없다’, ②‘그러니 제 발로 나가길 바란다’, ③‘그리고 이건 대통령의 뜻이다’.

‘순수친박 150석’ 여당이 낫다는 판단

이 가운데 ①은 여권에선 어느 정도 예견했던 일이다. 지난해 6월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여당의 원내사령탑’이라고까지 유 의원을 콕 집어 말하며,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여권 관계자는 “당 쪽에서 보면 대통령이 심판을 요구한 인물을 공천할 수는 없다는 게 바이블처럼 됐고 그럼에도 경선에 부치거나 단수추천 한다면 대통령의 ‘하명’을 무시한 게 된다”고 말했다.

애초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단 얘기다. 그러면 왜 시간을 끌어 ②라는 시그널을 유 의원한테 자꾸 보내는 걸까. 양쪽의 명분 싸움이라는 게 여권의 해석이다. 친박계가 원하는 게 유 의원의 탈당이긴 하지만, 최대한 아름답지 않게 나가는 게 도움이 된다. 단순히 당 정체성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유 의원을 컷오프할 경우 동정 여론이 일 수도 있고 탈당 결행의 명분도 줄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제 발로 걸어 나가는 모양새를 갖추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나가야 나중에 복당이 더 어려워진다.

유 의원도 떠밀려 탈당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간 자신이 새누리당의 ‘적자’임을 강조해온 그는 “한 번도 당을 떠나서 어디 가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해왔다. 현재 여권의 정치 지형상 스스로 당을 나가게 되면 자칫 퇴로가 막힐 수도 있다. 총선 직후 조기 전당대회가 치러지면, 현재 김무성 대표의 비박계 지도부가 아닌 친박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친박계는 유 의원 고사작전으로 인해 일고 있는 여론의 역풍이나 수도권 참패 우려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다. “아군에게만 총질하는 국회의원 잔뜩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지난 19일 친박 실세 최경환 의원의 말을 보면 그렇다. 여권 관계자는 “유 의원과 그의 측근 의원들을 날린 데 따른 역풍으로 수도권 의석이 다소 줄어든다 해도 괜찮다는 의미”라며 “비박계가 섞인 ‘180석’보다 순수 친박만 모인 ‘150석’을 목표로 산정한 듯하다”고 말했다. 총선에서 180석 이상을 얻어 압승을 한들 그 공은 비박계 대선주자인 김 대표에게 돌아갈 테니 친박계로선 좋을 것 없다는 판단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소통 지적에 민감한 대통령 역린 건드린 죄?

친박계와 ‘이한구 공관위’가 이처럼 무리를 하는 건 ③탓이다. 여러 여권 인사들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친박계 원내지도부 후보인 ‘이주영ㆍ홍문종 의원 조’를 누르고 유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됐을 때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는 곧 자신이 배지를 달아준 의원들이 ‘변심’한 결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친박 핵심 의원은 “2012년 총선 직후 당선자대회 때만 해도 대통령(당시 비대위원장) 앞에서 ‘박비어천가’를 불렀던 의원들이 이후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 걸 보며 나도 배신감이 들었는데 대통령은 어떠했겠냐”고 말했다.

두 사람이 멀어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소통에 미흡한 박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에 대한 유 의원의 쓴 소리였다. 4년 전 총선 직후 한 언론에 “박 대통령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쓴 소리도 만나야 가능한데 통화조차 어렵다”는 유 의원의 말이 실린 적이 있다. 박 대통령과 유 의원을 모두 잘 아는 한 여권 인사는 그 사건을 떠올리면서 “당시 동료 의원 여러 명과 방담을 나누던 유 의원에게 박 대통령이 다가가 사실관계도 묻지 않고 ‘어떻게 그런 인터뷰를 할 수가 있느냐’며 한참을 따져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로 대통령이 유 의원을 찾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평소 박 대통령이 소통 지적에 특히 민감해했다”고 소개했다. 한 친박 핵심 의원은 “당명 개정 반대부터 지난해 국회법 파동까지 수년 간 크고 작은 사건이 쌓여 풀리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고 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내 뜻을 따르지 않는 이들과는 결코 함께 가지 않겠다는 독선과 앙심의 정치가 정당 민주주의를 무너뜨렸다”며 “그런데도 대다수 의원과 당원들은 침묵하고 있는 게 여권의 현 주소”라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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