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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로스쿨을 위한 변론

입력
2014.09.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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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이 운영된 지 만 5년이 지났는데도 이른바 로스쿨 위기론이 계속 거론되고 있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입법안을 제출했고, 언론에서는 과다한 비용 등 로스쿨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그러나 로스쿨 위기론의 내용 중 상당수는 사법시험 제도 운영에 소요되는 비용을 과소평가하거나 제도 도입 초기에 나타날 수 있는 과도기적 상황을 과대평가한 것이다.

일반적 인식과 달리, 로스쿨을 통해 변호사가 되는 것이 사법시험 제도에 비해 비용이 더 든다고 보기 어렵다. 지난 8월 말 한 중앙 일간지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 사법시험에서는 약 6,000만 원이고 로스쿨에선 1억 원이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그런데 그 계산법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 즉 사법시험을 통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할 확률과 로스쿨을 통한 취득 확률을 동일하게 평가한 것이다. 사법시험 합격률은 3%에 불과한데(로스쿨은 입학정원 대비 75%), 3%의 확률을 통과하지 못한 97%의 고시생들이 들인 비용을 빠뜨린 채 계산하고선 로스쿨 비용이 과다하다고 비판하는 건 상식에 맞지 않는다.

로스쿨 제도가 법조인 양성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을 절감시킨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법시험 합격자들이 공무원 신분으로 사법연수원에서 받는 실무 교육은 모두 국가의 부담이다. 2005년 기준으로 2,000명의 사법연수생에게 제공되는 급여만 한 해 300억 원이 넘었다(이 돈은 전체 로스쿨 재학생 6,000명 모두에게 1인당 연 500만원의 장학금을 줄 수 있는 규모이다). 그 밖에 실무 교육을 위해 수사와 재판을 해야 할 법관과 검사 수십 명이 사법연수원에서 일하는 걸 생각하면, 사법시험 체계에 드는 사회적 비용이 로스쿨보다 더 많다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기실, 로스쿨 제도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법조인 양성에 대한 책임을 국가가 아닌 시민사회가 담당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법시험 제도에서 한국의 모든 법조인은 정부 기관인 사법연수원에서 2년 동안 실무교육을 받았다. 사법시험 합격자들은 이러한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유사 관료’화 되어 법조인으로 활동하게 된다. 그 결과 법조인이 시민사회의 다양한 요구와 우리나라의 사회ㆍ경제적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로스쿨은 그에 대한 반성의 산물이다.

로스쿨 제도는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이다. 이를 위해 시민사회의 일원인 대학이 양성 책임을 맡게 되었다. 국가가 아닌 대학이 다양한 사회적ㆍ학문적 배경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여 시민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는 법조인을 양성한다는 것이 로스쿨의 설립 취지이다. 한국의 로스쿨들은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3년 참여연대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로스쿨 입학생을 배출한 대학의 수가 사법시험 체제 때보다 2.6배 증가했고 전액 장학금 수혜자 비율은 재학생 대비 35.4%에 이른다. 로스쿨협의회 자료에 의하면, 2014학년도 전체 입학정원 2,000명 중 132명이 취약계층 특별전형에 의해 선발되었고 이들 중 89.2%는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로스쿨 제도는 졸업생이 모두 개업 변호사로 활동하는 것을 전제로 설계된 것이 아니다. 물론 전통적 의미의 법조계가 가장 대표적인 일자리이긴 하지만, 로스쿨을 통해 배출된 변호사들은 과거보다 더 많은 기업과 공공기관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더 많은 변호사들이 공익활동에 투신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 로스쿨이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제도적 의의를 잘 구현하고 있다는 징표이다.

로스쿨 위기론의 기초인 사법시험 제도에 대한 미련과 환상은 그것이 초래했던 과거의 폐해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로스쿨이 미래 한국이 필요로 하는 법조인 양성이라는 자신의 책임과 역할을 더욱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다듬고 개선하는 작업일 것이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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