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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죽거나 버려지거나, 휴대폰 관객의 베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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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죽거나 버려지거나, 휴대폰 관객의 베팅

입력
2015.03.1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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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뒷좌석이 '전쟁터', 카메라 설치해 인터넷 생중계

범죄조직 연루된 사육시설, 수백만달러 규모 산업 성장

불법 투견도박이 온라인 동영상 중계를 타고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휴대폰과 컴퓨터 등을 통해 누구나 쉽게 투견도박에 접근할 수 있고 경찰의 감시망도 손쉽게 피할 수 있게 되면서 투견 싸움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투견도박 수요가 늘면서 핏불 테리어와 마스티프 등 투견 견종 애완견을 노린 납치까지 빈발하고 있다.

17세기 벨기에 엔트워프에서 활동한 화가 프란스 신더스의 바로크풍 작품 '숲 속 빈터에서의 개싸움'. 서구에서 개싸움은 고대 로마에서부터 성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태퍼드셔 불 테리어와 핏불의 교배종인 개는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한 길거리에서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의 상태로 발견됐다 구조됐다. 이 개는 투견 도박에 이용됐다 버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iol 제공
17세기 벨기에 엔트워프에서 활동한 화가 프란스 신더스의 바로크풍 작품 '숲 속 빈터에서의 개싸움'. 서구에서 개싸움은 고대 로마에서부터 성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태퍼드셔 불 테리어와 핏불의 교배종인 개는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한 길거리에서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의 상태로 발견됐다 구조됐다. 이 개는 투견 도박에 이용됐다 버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iol 제공

투견 도박 온라인 중계로 확산

과거에는 시골 외딴 지역의 농장이나 도시 건물의 지하 등을 투견 장으로 개조해 관중들을 모은 후 투견 도박을 벌였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휴대폰 등 온라인 중계가 가능해지면서 투견 도박장에 관객들이 모이던 일은 옛일이 됐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한 시골에서 열리는 투견 시합 장면이 미국과 유럽 등에 있는 관객들에게 온라인으로 생중계되고 있다고 남아공 최대 온라인 뉴스포털 아이오엘(iol)이 20일 전했다.

iol에 따르면 현재 투견장으로 손쉽게 이용되는 곳은 넓은 공터 한복판이 아닌 트럭용 밴의 좁은 뒷좌석이다. 불법 투견도박을 운영하는 이들은 차량 뒷좌석에 카메라를 설치해 개들 중 한 쪽이 죽을 때까지 싸움을 계속하는 장면을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중계한다. 관객들은 거리나 집에서 휴대폰이나 컴퓨터로 생중계 영상을 보면서 온라인으로 돈을 걸게 된다.

차량용 밴을 투견장으로 이용하는 이유는 투견 도박이 벌어지는 동안 차량을 끊임 없이 이동시킬 수 있어 경찰의 감시를 따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차량의 음악을 크게 틀어놓으면 개들이 서로를 물어뜯는 과정에서도 그 소리가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할 수 있다.

특히 이들은 투견도박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 싸움에 진 개들은 잔혹하게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밴 뒷좌석에서 싸우던 개들 중 한 쪽이 심각한 상처를 입어 회복이 불가능하면 길거리 아무 곳에나 버린 후 차를 타고 서둘러 자리를 뜨거나 아니면 다른 개들의 먹이로 준다는 설명이다.

남아공 전국동물학대방지협회(NSPCA)의 에스테 코츠 대변인은 “투견 도박은 일부 범죄자들의 소행이 아닌 거대 범죄단체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면서 “온라인 중계를 통해 전세계에서 관객들을 끌어 모을 수 있게 되면서 수백만달러 규모의 산업으로 성장했다”고 지적했다.

스태퍼드셔 불 테리어와 핏불의 교배종인 이 개는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다운의 한 길거리에서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의 상태로 발견됐다 구조됐다. 이 개는 투견 도박에 이용됐다 버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iol 제공
스태퍼드셔 불 테리어와 핏불의 교배종인 이 개는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다운의 한 길거리에서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의 상태로 발견됐다 구조됐다. 이 개는 투견 도박에 이용됐다 버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iol 제공

온라인 열풍으로 비밀 투견 사육시설도 성행

온라인 중계 열풍을 타고 투견 도박시장이 급격히 커지면서 세계 곳곳으로 범죄조직과 연루된 전문 투견 사육시설이 확산되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2012년 3월 한국인 8명이 온라인 중계 투견도박을 위한 대규모 사육시설을 운영하다 경찰에 체포됐다.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85㎞ 떨어져 있는 라구나 지역에서 운영되던 비밀 사육장에서는 당시 핏불 300마리가 석유 철제 드럼통에 쇠사슬로 묶여져 있는 채로 발견됐다. 투견 사육장 규모로는 필리핀 사상 최대규모라고 현지 경찰은 전했다.

특히 이들은 사육장 한편에 투견 시합장도 만들어 한국 등 아시아 각국에 관련 영상을 온라인으로 중계해 투견 도박을 벌여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 동물보호단체(ACRA) 관계자는 “경찰이 현장을 찾았을 때 핏불 300마리 대부분이 스테로이드 강화제를 맞은 상태였고 일부는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며 “사육장 한쪽 구석에 있는 구덩이에서는 수많은 투견들의 사체가 버려져 있는 게 발견됐다”고 월스트리저널에 말했다. ACRA는 300마리 중 149마리를 보호시설에 맡겼고 11마리는 가정에 입양됐으나, 나머지 140마리는 질병 등의 이유로 모두 안락사 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영국에서는 가정집에서 투견 비밀 사육장이 운영되다 올 2월 경찰에 적발됐다. 전문 투견 사육사인 존 프라이실(49)은 맨체스터 외곽에 있는 자신의 집을 사육장으로 꾸며 핏불 등을 몰래 훈련시켰던 것으로 조사됐다. 영국 동물학대방지협회(RSPCA) 관계자는 “검거된 프라이실은 조직적 투견도박을 벌이는 거대 범죄조직과 연루돼 있었다”며 “전문 투견 사육사들은 지금도 영국 도처에서 경찰의 눈을 피해 사육장을 운영하고 범죄조직에 투견용 개를 공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투견 도박 증가하자 애완견 납치도 빈발

투견 도박이 성행하며 도박판에 투입될 투견용 개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애완견들에 대한 납치까지 빈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협소한 사육장 운영으로는 도박에 필요한 투견 수를 채울 수 없게 되자 투견용 애완견을 납치해 도박판에서 일회용으로 쓰고 버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 동물학대방지협회(SPCA)는 최근 애완견 실종 사건이 잇따르자 견주들에게 주의를 촉구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이 한밤 중에 거리를 돌아다니며 문이 열려 있는 창고에서 개들을 꺼내 차에 싣는 모습이 수 차례 목격되고 있다고 CBC뉴스는 전했다.

SPCA 관계자는 “지난해에만 투견종 애완견 100마리 정도가 한밤 중에 갑자기 사라진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실종된 개들 중 일부는 다른 짐승에 의해 심하게 물려 불구가 된 모습으로 나중에 길거리에서 발견됐는데 투견 도박에 이용된 후 버려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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