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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쇼 미 더 공감

입력
2014.09.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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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넷의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 미 더 머니 시즌3이 종영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출연자 전반이 가진 패기 있게 할 말 다 내뱉는 태도, 프로듀서들의 솔직하고 적나라한 표정들, 올티의 언어유희를 보며 즐거웠다. 아이언과 바비가 마지막 무대에서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고백하는 것에는 감동했다.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날에 대한 의지를 가사로 담은 것은 그들의 성장도 도왔을 거라 짐작한다.

자기를 서사화하는 과정은 스스로의 아픔과 슬픔에 거리 둘 수 있도록 돕는다. 머릿속에 두루뭉수리 하게 떠돌던, 이유를 몰랐던 아픔들을 언어로 정리하는 것은 아픔과 슬픔을 응집시켜 자신으로부터 분리시킨다. 그렇게 쓰인 자기 얘기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공감과 환호를 받으면 상처에 새살이 돋아난다. 자신에게 공감하는 다른 사람의 삶에도 관심을 가지다 보면 공감능력이 생긴다. 과장된 자기연민과 과도한 피해의식에서 벗어나게 된다. 나는 그게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쇼 미 더 머니 최종회에서 내뱉어진 아이언의 가사 “쓰레기 같던 내 과거를 알기에 절대 반복치 않아”와 바비의 가사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목소리, 이렇게 내 꿈을 이뤄가면서 난 벌어둬 떳떳한 랩 머니(rap money)”는 이를 방증한다.

'쇼 미 더 머니 3' 우승자 바비
'쇼 미 더 머니 3' 우승자 바비

힙합의 근본적 태도는 ‘보여주고 증명하라(Show and Prove)’다. 미국의 저소득층은 비싼 악기를 살 돈도 클래식한 음악 교육을 받을 환경도 갖지 못했다. 비싼 악기가 없어도 음악은 만들어졌다. 기존의 음악들을 뒤섞고 리듬을 다르게 해 ‘비트’를 만들고, 사람들의 감탄을 이끌어낼 ‘펀치 라인’을 쓰고, 라임을 살려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비트 위로 내뱉었다. 다른 인종이라 받는 멸시, 누리지 못한 기회의 평등, 교도소에 간 친구들에 대해 얘기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1980년대, 그렇게 힙합은 태동했다. 말하자면 힙합은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자들, 혹은 애써 감추고 지우려는 이들,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이들이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론이었다. 자기 스스로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내뱉는 것, 화날 때는 화난다고 외치는 것, 그리고 자신의 형제, 자매, 친구도 그렇게 이야기를 내뱉도록 권하고 경청하는 것, 그렇게 서로의 존재의 증인이 되어주는 것이다.

한가위 연휴 시작인 6일 오후 세월호특별법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단식농성장이 있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일간베스트 일부 회원과 자유대학생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식사를 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 식사하는 장소를 마련한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이와 관련해 지난 5일 성명을 내고 "오셔서 마음껏 먹어라. 여러분들을 위해서 식탁도 마련하겠다"면서 "그 식탁에서 음식을 드시면서 여러분들의 행사가 과연 어떤 의미인지 진지하게 성찰해보시기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가위 연휴 시작인 6일 오후 세월호특별법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단식농성장이 있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일간베스트 일부 회원과 자유대학생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식사를 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 식사하는 장소를 마련한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이와 관련해 지난 5일 성명을 내고 "오셔서 마음껏 먹어라. 여러분들을 위해서 식탁도 마련하겠다"면서 "그 식탁에서 음식을 드시면서 여러분들의 행사가 과연 어떤 의미인지 진지하게 성찰해보시기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최근 세월호 유족들에게 찾아가 난동을 부리는 이들, 유족들이 단식하는 앞에서 치킨과 피자를 ‘폭식’하며 유족들을 조롱하는 이들이 있었다. 나는 세월호 유족들의 불행이 남의 일이 아니라고 느꼈다. 며칠 뒤에 다시 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웃으며 인사한 핏줄이 타고 있는 배가 가라앉는 것을 브라운관을 통해 수 시간 동안 지켜본 슬픔, 수 일 동안 당한 희망고문, 사건 직후 가장 중요한 몇 시간 동안 수상쩍은 행보와 무능을 보이며 구조하지 못한 공적 기관에 대한 분노를 조금이나마 헤아려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유족들의 얘기를 계속 들어주고 공감과 위로를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애처로운 마음으로 생명을 걸고 사건에 대한 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에게서 ‘숭고’도 느꼈다. 그런 유족들 앞에서 폭식으로 조롱하는 행동도 일종의 ‘보여주고 증명’하기일 수 있겠다. 공감능력이 결여됐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증명했다. 그러나 부박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형제, 자매, 친구들을 상처 입힐 뿐인 그런 증명은 사회를 더 나쁘게 만든다. 스스로의 성장도 가로 막는다.

☞ 세월호 집회 반대하는 폭식 행사 영상 보기

쇼 미 더 머니를 보고 흥이 나서 라임 맞춰 랩 가사를 끼적이기 시작했다. 부끄럽지만 최근 쓴 라임노트의 일부분을 공유해본다. 공감능력이 결여된 이들에게 바치는 랩이다. “지금 네 태도는 패기나 용기 아냐/ 그냥 덜 컸을 뿐, 어린 아이마냥// 어른 되려면 정리해 네 스스로의 아픔/ 그럼 알게 될 거야 다른 이의 슬픔// 하품, 나오는 얘기겠지만/ 도저히 눈뜨고 두고 볼 수 없지 난//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있으면 해/ 네가 포장한 허울을 좀 봤으면 해// 그런 거울이 없으니 일단 볼펜 들어/ 대신 솔직히, 네 내면의 소리를 들어// 네 머리로 생각해 삶에서 중요한 게 뭔지/ 네가 내뱉은 증오는 다 사라질 먼지….”

최서윤 (격)월간잉여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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