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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입양 적극 독려했다고 어느 순간 아주 독한 시어머니라 불려"

입력
2015.07.2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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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국 홀트아동복지회 명예원장이 23일 일산복지타운에서 어린이들을 돌보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조병국 홀트아동복지회 명예원장이 23일 일산복지타운에서 어린이들을 돌보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조병국 홀트아동복지회 부속의원 명예원장은 별명이 많다. 졸지에 거지에서 시어머니가됐다가 급기야 타이어에 비유됐다. 별명의 사연을 들어보면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짐작이 간다.

▦국제 거지

1960, 70년대 서울시립아동병원 소아과 의사 시절 조 원장은 한국을 찾은 외국인이나 해외 구호단체에 아이들 치료에 필요한 물품들을 원조해 달라고 끊임없이 손을 내밀었다. 필요한 의료기기 책자를 모아 여기저기 보내느라 당시 한달 우편요금만 5만원이 넘게 들었다. 덕분에 국제 거지로 불렸고 정부에서 외국에 손 벌리지 말라는 공문까지 보냈다.

▦불평불만녀

더 많은 아이들을 살리려면 진료 환경을 개선해야 했지만 작은 것 하나 바꾸는 데도 번번이 가로막혔다. 조 원장은 공공기관을 여기저기 다니며 제도적 문제를 지적했다. 해외입양 그만하라는 공직자들에게 “국내 입양이 늘면 해결될 문제이니 당신들이 한 명씩 입양하라”고 설득도 했다. 그들에게 조 원장은 불평불만으로 똘똘 뭉친 여의사였다.

▦독한 시엄마

시립병원에서 일할 때 영아를 버리는 현장을 포착하려고 경찰까지 동원했다. 9개월 동안 경찰을 들볶아 영아 유기를 막아보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애 팔아먹는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가 필요하다는 일념으로 국내외 입양을 독려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아주 독한 시어머니란 별명이 붙었다.

▦스페어 타이어

1993년 조 원장은 정년퇴임 후 자녀들이 있는 캐나다로 떠났다. 하지만 후임을 못 찾은 홀트를 외면하지 못해 되돌아와 15년 동안 일한 뒤 2008년 다시 퇴임했다. 이후 아예 일산복지타운으로 거처를 옮겨 장애아들과 함께 지냈다. 그래서 조 원장은 스스로 “홀트의 ‘스페어 타이어’ 같은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닥터 조

조 원장이 해외로 입양보낸 아이들은 성인이 돼 한국에 와서 친부모에 대한 기록을 찾지 못하면 대신 새 삶을 열어준 조 원장을 찾았다. 어릴 때 외국으로 나간 탓에 우리말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이 홀트를 찾아와 조심스럽게 조 원장을 불렀다. 자신이 찾던 ‘닥터 조’가 맞냐고.

임소형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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