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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 몸값, 줘야 할까 말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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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 몸값, 줘야 할까 말아야 할까

입력
2014.10.07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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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일단의 이슬람 무장세력이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외딴 곳 임시캠프에서 영국인 인질의 처형을 준비하고 있었다. 에드윈 디에르라는 이 인질은 넉 달 전 말리와 니제르 국경 인근에서 열린 연례 민속음악 축제에 참가한 뒤 얼마 안 돼 스위스 국적인 가브리엘라 바르코 그라이너, 남편인 베르너 그라이너, 독일인 마리안느 페촐트 등 3명과 함께 납치됐다.

납치는 함께 됐지만 운명은 판이하게 달랐다. 납치된 후 석 달 만에 페촐트와 그라이너는 풀려났고 두 달 뒤에는 그라이너의 남편(베르너 그라이너)까지 자유의 몸이 됐다. 하지만 디에르는 무참히 살해됐다. 이들의 운명이 엇갈린 이유는 명확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인질에 대한 석방금 유무가 중요한 원인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수니파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최근 영국인 인질 앨런 헤닝을 참수하면서 IS에의한 참수 희생자가 4명으로 늘었다. IS 연계조직 준드 알 칼리파에 의한 참수까지 합하면 모두 5명의 미국 및 유럽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 마다 자국민 인질이 희생된 국가들은 심각한 딜레마에 빠진다. 극단적인 무장단체들이 인질을 내세워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알리거나 선전 도구로 사용할 때 똑같은 위협이 계속될 것을 알면서도 돈을 지불해 고귀한 생명을 구해야 할까. 아니면 무장단체의 유사 위협을 막기 위해 인질에게 비극적 상황이 닥치더라도 감수해야 하는 걸까.

이에 대한 대처 방식은 국가마다 다르다.

미국과 영국은 인질에게 비극적인 상황이 예상돼도 석방을 위한 금전적 비용을 절대 지불하지 않는 국가다. 실제 IS에 피랍된 미국인 프리랜서 기자 제임스 폴리 참수 이후 폴리 부모는 “미국 정부가 인질에 돈을 지불하면 안 된다는 원칙만 고수하면서 석방금 모금을 막는 등의 행위를 하면서 희생을 방치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폴리뿐 아니라 미국인 기자 스티븐 소트로프와 시리아에서 구호 활동을 펼쳤던 영국인 헤닝 등 IS에 소중한 자녀를 인질로 저당잡힌 부모들은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IS 최고 지도자인 알 바그다디와 자국 정부를 향해 구명을 요청했다. IS가 다음 희생자로 예고한 특수부대 출신 미국인 피터 케식의 부모도 그의 어린 시절 사진과 함께 살려달라는 동영상을 띄웠지만 무위로 그칠 공산이 높다.

반면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등은 비공식 협상을 통해 몸값을 내주고 자국민을 석방시켜 왔다. 지난해 10월 프랑스는 무장단체 알카에다에 억류된 자국민 4명을 석방시키면서 2,000만유로(268억원) 이상을 몸값으로 지불했고 독일도 지난 6월 시리아에서 IS에 납치된 27세 남성을 ‘상당한 액수’를 주고 석방시켰다. 월스트리트저널에 의하면 알카에다 연계조직들이 2004년부터 2012년까지 몸값으로 벌어들인 돈만 1억2,000만달러(1,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같은 통계는 2009년 그라이너의 석방에도 적용된다. 당시 스위스 정부는 그라이너 석방을 위해 정부 재정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프랑스 AFP통신은 “스위스 당국은 말리 대통령이 인질 석방과 관련해 협상은 없었고 석방금도 한 푼 받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스위스 의회 재정위 자료에 따르면 인질 석방을 위해 스위스정부는 300만스위스프랑(33억3,260만원)의 기금 사용을 승인했다. 스위스 사례는 인질 석방을 위해 정부가 개입했다는 것을 인정한 유일하면서도 공식적인 사례이다.

인질과 석방금의 함수는 소말리야 해역에서 어선이 수시로 해적에 납치되는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1년 석해균 선장이 탄 삼호주얼리호가 소말리아에서 납치됐을 때 우리 정부는 예전 돈을 주던 관행에서 벗어나 청해부대를 동원해 과감한 소탕 작전으로 해적을 일망타진하고 생존자는 국내 해경으로 송환해 사법처리했다. 이전에는 액수는 비공개지만 수십억 원대 돈을 들여 현지 협상 브로커를 통해 억류된 선원들의 석방을 유도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석방금을 준다고 해도 인질을 억류하고 있는 무장단체가 확고한 정치적 신념으로가득 차 있다면 인질이 풀려난다는 보장을 받기가 어렵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연합전선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IS 입장에선 더욱 그렇다. IS가 폴리 석방 대가로 1억달러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주변 지인들은 500만달러만 줬더라도 IS가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립 발보니 글로벌포스트의 최고경영자는 “돈의 액수에 상관 없이 폴리의 중요성 때문에 IS가 폴리를 살해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건 오판이었다”고 말했다.

돈과 달리 극단적 무장단체의 포로와 인질을 교환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지난달 시리아에 억류돼 있던 터키인 46명과 이라크인 3명이 풀려났는데 나중에 포로 교환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도됐다. 반면 알카에다의 북아프리카 지부인 ‘이슬람마그레브알카에다’(AQIM)이라는 무장단체는 포로 교환이 거부되자 인질을 살해한 경우다. AQIM은 인질 몸값을 600만달러로 내렸지만 영국 정부가 거부하자 영국에서 수감 생활 중인 알카에다에 연계된 급진파 성직자 아부 카타다 석방을 요구했고 영국 정부가 이마저도 거부하자 인질을 살해했다.

그러나 인질 협상 전문가들은 “석방금 지급과 상관 없이 무장단체의 인질 위협 행위가 사라질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돈은 큰 의미가 없다”는 인식이 대체적이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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