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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공 출신 카이스트 박사 “나 같은 학생 돕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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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공 출신 카이스트 박사 “나 같은 학생 돕고 싶어요”

입력
2018.02.22 15:33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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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MIT서 포스트닥 오태현씨

홀어머니 아래서 생활고 겪으며

특성화고 자퇴 후 정비소 취직

“공부 못하면 저 형처럼…” 소리에

뒤늦게 검정고시 거쳐 ‘열공’

고교 자퇴생, 자동차 정비공 출신인 카이스트 졸업생 오태현 박사. 현재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카이스트 제공
고교 자퇴생, 자동차 정비공 출신인 카이스트 졸업생 오태현 박사. 현재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카이스트 제공

“하루는 자동차 정비소에 들른 손님이 저를 가리키며 자녀에게 ‘너도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저렇게 된다’고 말하는 걸 들었어요. 아마 그때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거 같아요.”

22일 카이스트(KAIST) 학위수여식에서 전기 및 전자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오태현(31)씨는 “어린 시절 이끌어줄 사람이 없는 것에 대한 원망이 컸다”며 “부족하지만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의 굴곡진 삶을 다른 사람은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국내 최고 대학을 거쳐 세계 최고 대학으로 꼽히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현재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 중이지만, 오 박사의 인생은 ‘엘리트 코스’와는 거리가 멀다.

오 박사는 공부를 잘 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한글을 못 떼 매일 방과 후 남아서 받아쓰기 공부를 해야 했다. 중학교 때 성적은 반에서 중간 정도였다. 그는 “외환위기 때 실직한 홀어머니가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하시는 걸 보면서 빨리 돈을 벌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집과 거리가 있지만 취업이 보장되는 전산계통 특성화고에 진학했다.

타지생활은 쉽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잠만 자는 등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 했다. 자괴감이 스트레스로 이어지고, 또다시 자괴감이 심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결국 “어떤 선택을 하든 잘 할 거라고 믿는다”는 어머니 말씀에 고교 2학년에 자퇴했다. 그러나 최종학력이 중졸인 자퇴생에게 일자리를 주는 곳은 없었다. 낙오자ㆍ실패자로 보는 ‘사회적 시선’의 벽은 높았다. 결국 자퇴 후 두 달 만에야 정비소에 취직할 수 있었다.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이 선 뒤 2004년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같은 해 수능 성적은 참담했다. 500점 만점에 200점도 못 맞았다. 대학도 떨어졌다. 재수 끝에 광운대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오 박사는 “1학기 성적표를 받았는데 학과에서 차석이었다”며 “한 번 성취감을 맛보자, 공부하는 게 점점 더 재미있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 최우수 성적(평점 4.5만점에 4.43)으로 졸업했다.

같은 해 카이스트 석사과정에 입학한 이후 오 박사는 발군의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석ㆍ박사 과정 7년 동안 교내 연구실적 평가 최우수상, 삼성 휴먼테크 논문대상 금상 등을 수상했다. 2014년 중국 베이징 소재 마이크로소프트(MS) 지사에서 3개월간 인턴을 하면서 쓴 논문이 컴퓨터 비전 분야 최고 학회(CVPR)에 게재되면서 인터십 기간을 1년으로 연장할 수 있었다. 이듬해엔 마이크로소프트가 아시아 지역 우수 박사과정생을 선발하는 장학생(마이크로소프트 아시아 연구소 펠로우십)에 국내에서 유일하게 선발됐다. 2016년에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다. 오 박사의 전공은 카메라 등 매체를 통해 입력한 영상을 컴퓨터가 인지하고 분석하는 인공지능(컴퓨터 비전) 연구다.

오 박사는 “별도 명령이 없어도 탁자 모퉁이에 아슬아슬하게 놓인 물컵을 안전한 자리로 옮겨놓는 정도로 인간의 상식 수준까지 행동할 수 있는 인공지능 엔진을 만들고 싶다”며 “어려운 교육환경에 놓인 학생들에게 손길을 내밀 수 있는 교수가 되는 게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이날 카이스트 교내에서 열린 2018년도 학위수여식에는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이장무 KAIST 이사장 등 5,000여명이 참석했다. 박사 644명을 포함해 2,736명이 석ㆍ박사와 학사 학위를 받았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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