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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 의료급여 8년째 동결… 저소득층 '의료 홀대' 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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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 의료급여 8년째 동결… 저소득층 '의료 홀대' 심해진다

입력
2015.07.0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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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의료급여심의위 개최, 인상 기대 불구 안건조차 못 올라

진료비 적어 무조건 값싼 약 처방… 일부 병원은 급여환자 기피도

"정액제로 묶여 부실 진료 양산, 사실상 급여환자 치료 말라는 것"

정신질환 급여환자들이 의료수가(酬價)가 8년째 정액제로 묶여 있는 통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등 치료권이 심각하게 박탈 당하고 있다.

5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신과 질환 의료급여 환자의 정액수가는 2008년 개정 이후 지금껏 단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 이에 따른 문제점은 그동안 언론에서 여러 번 제기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한 단초로 여겨지는 급여환자의 정액수가 인상 방안은 지난 달 26일 열린 중앙의료급여심의위원회에서 논의될 것으로 기대됐었지만 안건에조차 오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의료급여는 저소득계층과 국가유공자 등에게 지자체가 치료비를 지원해 아주 싼값에 진료를 받도록 한 제도다. 의료급여 수급권자는 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저소득층과 행려환자, 이재민, 의사상자, 18세 미만의 국내 입양아동, 국가유공자, 무형문화재 보유자 및 가족, 새터민, 5ㆍ18민주화운동관련자 및 유족 등이다.

정신과 등 외래 수가 8년째 2,770원

문제는 급여 대상 질환 중에서 유독 정신과 장애와 간질 장애, 혈액투석에 한해 일반적인 수가를 적용 않고 정액제로 묶어 놓아 부실 치료를 양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급여환자의 하루 외래 정액수가는 보건복지부 고시(9조 1항ㆍ4항, 10조 1항)에 의해 2,770원으로 수년 째 꽁꽁 묶여 있다. 약제비와 조제료 상담료 정신치료비를 모두 포함해서다.

정신과 등 급여환자는 입원비도 정액제다. 하루 입원비는 병원 등급(G1~G5)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5만1,000원~3만800원이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내원하는 G3 등급은 3만7,000원이다. 수가는 입원일로부터 180일이 넘어가는 시점부터 조금씩 깎이는 구조다. 장기 입원을 막는 장치다.

정신질환 급여환자당 치료비가 낮게 매겨지다 보니 환자들을 진료하는 병원 입장에서는 효과가 좋은 약을 놔둔 채 값싼 약을 처방하고, 진료시간도 가급적 줄여 되도록 많은 환자를 보는 쪽이 이득이다. 이는 같은 증상에 같은 진단을 받더라도 건강보험인지 급여인지 여부에 따라 받게 되는 치료가 판이하게 달라지는 차별로 이어지고 있다. 한 정신과병원 의사는 “환자당 외래 진료비가 딱 2,770원만 나오기 때문에 많은 병원들은 무조건 값싼 약을 처방하고 있다”고 했다. 이 의사는 “건강보험가입자에게는 A약을 처방했는데, 같은 증상의 급여환자에게는 값싼 B약을 처방할 수밖에 없다”며 “의사로서 상당한 갈등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낮은 정액제 수가는 급여환자 기피 현상을 불렀다. 환자들이 몰리는 큰병원일수록 정도가 심해, 급여환자들은 공공병원이나 작은 병원을 주로 찾는다. 일부 병원은 외래 수가보다는 그래도 좀더 나은 입원 수가를 챙기려 재활치료보다는 장기입원을 권유하는 편법을 쓰는 것으로 전해졌다. 저소득계층 입양아동 국가유공자 의사상자 민주화유공자 등 사회적 돌봄과 배려가 더 절실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결과적으로 냉대와 차별을 가하는 모순이 빚어지고 있는 셈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부실한 치료에 따라 정신질환 급여환자들의 재활과 사회복귀가 점점 더 요원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치료효과가 아무리 좋더라도 고가의 약이나 심리검사 등 치료를 못 받기 때문이다. 정신과 질환은 장기간의 치료를 요한다. 많은 병원들이 급여환자들에게는 값싼 약을 중심으로 치료 하는데 이는 증상을 고치기는커녕 약제 대한 내성만 잔뜩 키울 뿐이다.

의료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액제에 따라 급여환자들이 받는 부실 및 차별적 치료 사례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건보환자와 급여환자 서로 다른 치료 차별

최근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약물들 중에는 효과가 좋고 부작용이 적어 한 알에 1,000~2,000원에 이르는 것들도 나왔다. 예컨대 우울증 환자에게 상담 뒤 하루 두 알이 정량인 2,000원짜리 항우울제를 보름치 처방할 경우 약값만 6만 원이다. 그런데 똑 같은 처방으로 병원이 급여환자에게서 받을 수 있는 치료비는 하루 외래 진료비(2,770원)에다 보름치 약값(2,770원x15일=4만1,550원)을 합해 4만4,320원에 불과하다. 병원들이 값비싼 약이 효과가 좋음을 뻔히 알면서도 처방을 꺼리는 이유다.

정신분열병의 경우엔 사정이 더 심각하다. 평균 약가가 더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병원들은 급여환자들에게는 값싼 약, 오래 전에 나온 약을 주로 처방하고 있다. 조현병 진단을 받는 경우 생활능력이 없어지므로 건강보험에서 의료급여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은데, 2세대 항정신병 약물은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좋음에도 고가라는 이유로 급여 전환 뒤에는 멀쩡히 잘 맞던 약물을 효과가 떨어지는 저가 약물로 바꿔야 하는 아이러니도 빚어지고 있다.

정신과 치료에선 약물치료와 더불어 정신치료(개입치료)가 중요함에도 정액수가에는 이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것도 아쉬움이다.

예컨대 가족의 죽음 뒤 우울증과 망상에 시달리다 내원한 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 대부분은 심층정신치료를 먼저 시도한다. 환자의 현재 스트레스와 과거의 삶, 가족 관계, 정신증상과 심리적 상태, 신체적 상태, 방어기제 등을 파악하기 위한 과정으로,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이어 일반적인 심리검사 의뢰 후 우울증과 망상에 대해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입증된 약물을 처방하고, 필요한 경우 입원을 권유하는 게 보통이다. 이렇게 되면 심층정신치료비와 초진 진찰료, 조제료, 일주일치 약값을 합해 5만 원 조금 넘는 치료비가 나온다. 하지만 같은 상황이라도 환자의 아버지가 5ㆍ18민주화유공자라서 의료급여를 받는 경우에는 치료비가 2만 원이 넘지 않는다.

기억력 저하 증상으로 치매가 의심돼 내원할 경우 건강보험 환자의 경우 갑상선, 비타민 간기능 수준, 신경심리검사 등 표준적인 진료를 받을 수 있지만, 급여환자들은 하루 2,770원의 정액수가로는 이들 검사를 엄두도 못 낸다.

“알면서도 다수가 침묵, 더 문제”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과장은 정신치료와 관련, “사실상 급여환자에게 이런 진료를 하지 말라는 의미”라면서 “더 전문적인 수준의 심층정신치료나 정신분석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했다. 박 과장은 “일부 고가 약물이나 치료가 필요한 경우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통로가 있어야 하는데, 방법이 전혀 없다”며 “같은 증상의 건강보험 환자와 의료급여 환자가 서로 다른 치료를 받는 것은 커다란 문제”라고 했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난치성 조현병 환자의 경우 클로자핀 성분이 효과가 좋아 퇴원의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지만, 부작용인 백혈구저하증 예방을 위한 혈액검사가 인정되지 않아 거의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밝혔다.

이상규 한림대의대 춘천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과 질환은 만성질환이 대부분으로 5년, 10년 약을 복용하기 때문에 부작용 측면도 중요하다”라며 “최근에 나온 비싼 약들은 부작용에서 강점이 있는데 이런 약을 사용하지 못하면 환자의 삶과 치료의 질이 떨어짐은 당연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우울증 환자가 두통을 호소하는 등 정신과 진료 중에 신체적 질환이 의심 될 때에는 MRI, CT 등 검사가 필요한데, 정액제에 묶여 검사비를 못 받는다”고 했다.

박 과장은 개선책을 묻는 질문에 “수가인상이 전부는 아니다”라며 “정신과라는 꼬리표를 달았다고 해서 차별적 제도가 8년간이나 유지되고 있는 것, 그리고 우리사회 다수가 알고 있음에도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 더 문제”라고 했다.

송강섭기자 erics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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