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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보고 싶었다” 49년 만에 재회한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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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보고 싶었다” 49년 만에 재회한 모자

입력
2018.02.2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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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섭군 실종 당시 현상수배 전단. 한기숙씨 제공
최원섭군 실종 당시 현상수배 전단. 한기숙씨 제공

“진짜 원섭이구나!”

한 눈에 아들을 알아본 한기숙(76)씨는 눈물을 흘리며 A(53)씨를 껴안았다. 기억을 더듬으며 친할머니와 이웃집 친구, 비탈진 곳에 자리했던 집을 기억해 낸 A씨도 울음을 터뜨렸다. 한 때 최원섭이었던 그는 어느덧 주름이 깊게 패인 중년의 A씨가 돼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된 한씨 앞에 1만 7,686일 만에 모습을 드러낸 아들이었다.

한씨는 동작구 흑석동에서 남편, 두 명의 아들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1969년 9월 22일까지. 추석명절을 앞두고 원섭(당시 4)군은 한씨 부부와 알고 지낸 이웃집 하숙생 박모(당시 20)씨가 함께 남대문사장에 놀러 나갔다. 그리고 49년 간 돌아오지 않았다.

그 날 이후로 한씨에게는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박양을 유괴범으로 신고하고 아들을 찾으러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언론사에 수 차례 출연해 눈물로 아들을 찾아달라 호소했다. 하지만 세월은 야속하게만 흘러갔다. 아버지 최모(82)씨는 생사 여부조차 알 수 없던 아들을 찾다가 치매에 걸렸다. 그래도 아들을 잊지 않으려고 하루에도 수십 번 아들 이름을 부르곤 했다.

아들은 부모를 원망하며 살았다. 버림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씨에 의해 다른 가정으로 입양된 그는 부모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 자신이 사생아가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A씨로 이름이 바뀌고, 50년 가까이 부모를 찾지 않았던 이유다.

A씨가 지난해 9월 친부모를 찾기 시작했다. 자신의 정체성이 궁금했고, 무엇보다 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컸다. 그는 서울 서초경찰서를 찾아 부모를 찾기 위해 신고를 한 뒤 유전자등록을 했다. 하지만 너무나 오랜 세월이 흐른 탓에 실마리가 잘 잡히지 않았다.

한씨와 A씨가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데는 실종 담당 경찰관인 홍애영 경사 노력이 컸다. 홍 경사는 ‘실종아동 프로파일링시스템’을 통해 장기미제 실종아동 사건을 일일이 검색해 대조했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최군이었다. 최군 출생연도와 실종연도가 A씨와 동일했고, 무엇보다 귀 모양이 유사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한씨와 A씨 DNA를 분석한 결과 99.9999% 일치. 그토록 찾던 어머니였다.

한씨는 “아들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고선 기절할 정도로 좋았다”며 “어젯밤에는 한 잠도 자지 못했다”고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A씨도 “친부모를 찾은 만큼 앞으로도 자주 찾아가 못다한 효도를 하겠다”고 말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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