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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은 유교 철학 형상화한 유일한 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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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은 유교 철학 형상화한 유일한 왕궁"

입력
2015.06.1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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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렬 축과 동심원으로 이뤄진 구조

왕은 백성을 위해 통치한다는 의미

황제 권위 드러낸 자금성과 대조"

예(禮)로 지은 경복궁 / 임석재 지음 /인물과사상사ㆍ888쪽ㆍ5만원
예(禮)로 지은 경복궁 / 임석재 지음 /인물과사상사ㆍ888쪽ㆍ5만원

‘임석재의 서양건축사’(전5권) ‘건축, 우리의 자화상’ ‘건축과 미술이 만나다’(전2권) 등 건축과 인문학을 연결시킨 책을 내온 임석재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가 50번째 책의 주인공으로 조선의 법궁(法宮)인 경복궁을 선택했다. 책이 두껍기로 소문난 그답게 이번에도 궁궐 하나를 설명하는데 200자 원고지로 약 5,000매 분량을 써냈다.

왜 이번엔 경복궁일까. “경복궁을 다룬 책들이 이미 10여권 있고 모두 읽었습니다. 경복궁은 사상으로 지은 건물이니 사상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그런 책은 없더군요. 경복궁의 전체 설계와 그에 담긴 건축 미학을 해명하려 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예(禮)로 지은 경복궁’은 다른 책들처럼 건물에 얽힌 사연이나 세부적인 특징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위에서 경복궁을 내려다보면서 큰 그림을 그린다. 경복궁의 구조가 일렬로 된 축과 사방으로 뻗어나간 동심원 구조로 돼 있음을 분석하고 여기에 담긴 ‘주례(周禮)’의 철학을 설명한다.

임 교수는 “경복궁은 주례의 정치적 이상을 건축으로 구현한 유일한 왕궁”이라 말했다. 주례란 주나라의 예법을 말하는데, 주나라는 유교 철학에서 이상적인 예법을 구현한 나라로 통한다. 조선의 새 도읍을 설계한 정도전은 조선을 어진 왕과 뛰어난 신하가 조화롭게 협력해 백성을 위해 통치하는 유교적 이상 국가로 만들려 했다. 경복궁을 지을 때도 이런 이념을 투영하기 위해 ‘예’를 재료로 삼았다. 중국의 자금성이 주례를 무시하고 황제의 권위와 물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화려한 전각들을 올린 것과 대조된다.

경복궁의 재료가 된 예법은 ‘중화(中和)’라는 가치로 풀이된다. 궁궐 정문인 광화문에서 후문인 신무문까지 일렬로 축을 이룬 건물들과 두 단의 기단 위에 2층을 높이 올린, 누대(樓臺)와 같은 건물 근정전이 중(中)에 해당한다. 왕이 중심에 서서 위엄을 드러내 통치한다는 뜻이다. 반면 근정전을 중심으로 여러 개 동심원으로 배치된 주변 건물들은 화(和)이다. 근정전에서 모인 권위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모양이다. 왕의 권력은 어디까지나 백성을 아우르고 이득을 나누는데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경복궁은 조선 왕들에게 “백성을 위해 유교 철학에 입각해 조화롭게 통치하라”는 도덕적 가르침을 준다. 그런데 실천이 됐을까. “조선 왕들은 선조처럼 인격에 문제가 있거나 세조처럼 권력욕을 드러낸 경우는 있어도, 물욕을 보이거나 사치를 부리지는 않았습니다. 그 증거로 조선의 궁궐은 중국처럼 화려하지 않습니다. 왕들은 전제 왕권을 가졌는데도 성리학의 가르침을 실천해 욕망을 절제했습니다.”

조선이 꿈꾸던 유교 정치는 조선이 서구 근대 문명과 만나 세계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무너졌다. 임 교수의 표현에 따르자면 “자본과 기술의 시대”인 오늘날에도 경복궁이 담은 중화의 철학은 의미가 있을까. “사람들의 미감은 서양식으로 변해버렸고, 도덕적인 감수성도 메말라 버렸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전통 건축에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도덕적인 성정(性情)을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죠. 서울 도심 한복판에 경복궁 같은 공간이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건축사학자 임석재 교수는 "경복궁에 숨은 '중화(中化)'의 미덕이야말로 지금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도덕적인 교훈"이라고 말했다. 이명현 인턴기자(숙명여대 미디어학부 4년)
건축사학자 임석재 교수는 "경복궁에 숨은 '중화(中化)'의 미덕이야말로 지금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도덕적인 교훈"이라고 말했다. 이명현 인턴기자(숙명여대 미디어학부 4년)

임 교수는 한옥과 궁궐에 이어 사찰을 다루는 책을 준비하고 있다. 불교의 산사 건축에 담겨 있는 수양의 정신을 책으로 풀어낼 계획이다. 그는 “마음의 울림을 갈망하는 현대인들에게 동양 건축이 주는 도덕적 마음의 울림을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인현우기자 inhyw@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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