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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돈으로 석·박사… 학업 뒷전 골프 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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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돈으로 석·박사… 학업 뒷전 골프 삼매경

입력
2015.02.27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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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이상 연수 年 300여명, 관료 퇴직하고 대학行 다반사

일반 공무원 안식년 인식, 휴양지 여행·현지 유학생에 갑질

이명박 정부 당시 교육부 출신의 A씨는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하다 2010년 그만둔 뒤 한 달여 만에 서울의 유명 사립대 교수로 임용됐다. 2000년대 초반 미 동부지역 주립대에서 국비 지원을 받아 석ㆍ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대학에 자리가 나자마자 교수로 변신한 것이다. A씨는 임용되자 곧바로 서울시교육청의 억대 연구용역까지 땄다고 한다. 시 교육청 관계자는 “A씨의 연구결과가 워낙 부실해 써먹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정진후 정의당 의원은 “공무원이 나랏돈으로 유학을 가 학위를 받은 뒤 쉽게 교수가 되고, 학맥 같은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대학의 로비스트로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교육부와 대학은 갑을 관계나 다름없기 때문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정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2014년 4급 이상 퇴직공무원 21명 중 10명이 대학의 총장, 교수, 교직원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전직 관료들이 친정인 부처와의 끈을 이용해 각종 연구용역을 따내는 유착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국비유학을 다녀온 일부 엘리트 공무원들이 커리어와 전문성을 개인의 영달을 위해 써먹는 셈이다.

학위나 직무훈련 등 직무능력 제고를 위해 6개월 이상 장기 국외훈련을 하는 공무원은 해마다 300여명. 2년간 석사학위를 딸 수 있도록 지원하거나 외국 연구소나 기관에서 근무하는 경우 1인당 1억여원 가량이 지원되고, 박사 과정도 휴직 후 월급의 50%가 지급된다. 국외훈련ㆍ유학 과정은 물론 사후 관리가 좀더 철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지난해 비영어권 직무훈련에 앞서 동남아로 1년간 어학 연수를 떠난 한 5급 공무원은 그곳의 영어교육 전문 어학원을 다니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행정부공무원노조의 오성택위원장은 “직무역량 강화 차원에서 관련 직무훈련을 갔다 올 수는 있겠지만 업무와 상관도 없는 학위를 따러 가는 경우도 있다”며 “업무 관련성도 부족한데 2년씩 내보내주는 게 바람직한지 의문이고 학위 취득으로 업무를 더 잘 본다는 보장도 없다”고 말했다. 더욱이 국외 교육훈련이 5급 이상 고시 출신 엘리트 관료들에게 쏠리다 보니 하위직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가득하다. 한 중앙부처 7급 공무원은 “공개경쟁을 한다고 하지만 하위직에게는 그림의 떡”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외훈련을 안식년으로 여기는 인식으로 인해 ‘골프 유학’이라는 뒷말은 예나 지금이나 끊이지 않는다. 2007년 미 미주리대학으로 연수를 떠난 공무원들이 공부는 뒷전인 채 골프만 치던 게 언론에 보도된 뒤 정부가 아예 미주리대로 학위과정을 갈 수 없도록 막아놓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도 휴양지에 위치한 학교를 찾아가거나, 한국인들이 많은 곳으로 가 어울리며 골프에 치중하는 공무원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물론 국비유학을 한 공무원들은 과장됐다며 볼멘 소리를 하고, “교수들에게 인정 받을 만큼 열심히 공부하더라”고 말하는 이(하버드대 케네디 스쿨 출신인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도 있다. 2년 전 한 영국 현지 한국인이 어린 유학생을 부하직원 다루듯 하는 갑질과 여행ㆍ골프에 몰두하는 국비유학 공무원들의 꼴불견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자 매도, 과장이라는 공무원과 현실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라는 유학생들의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골프 파동이 있을 당시 미주리대에서 공부했던 중앙부처 고위 공무원은 “1년 골프 회원권이 50만원으로 한 번 칠 때 2,000원꼴”이라며 지나친 몰매였다는 입장이다. 평균 4시간 이상 걸리는 골프경기의 속성상 국비훈련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보는 부정적 시선이 많다.

국비지원에 따른 특혜시비 때문인지 정부도 학위 유학은 줄이려는 추세다. 안상천 인사혁신처 사무관은 “핵심 인재들이 이론적 바탕을 갖추도록 하는 게 필요하기 때문에 학위과정을 없애지는 못하지만 10여년 전부터 가급적 직무훈련으로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공무원은 정책에 필요한 지식만 있으면 되고 외부전문가 자문도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에 학위보다는 직무훈련을 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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