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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는 고된 직업일 뿐… 쿡방이 젊은이들 망친다"

입력
2015.07.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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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 졸업 후 허드렛일부터 배워

식당 개업 뒤에도 고난은 계속

"요리를 예술로 착각 안타까워"

박성열 골드피쉬 딤섬퀴진 대표는 일주일에 딱 하루 쉬는 화요일에도 주방에 나와 메뉴를 연구한다. 그는 "최근 직원들과 함께 개발한 동북식 가지 볶음 반응이 좋다"며 "중국 본토 맛을 살리되 우리 입맛에 맞는 요리를 만드는 것이 인기 비결"이라고 말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박성열 골드피쉬 딤섬퀴진 대표는 일주일에 딱 하루 쉬는 화요일에도 주방에 나와 메뉴를 연구한다. 그는 "최근 직원들과 함께 개발한 동북식 가지 볶음 반응이 좋다"며 "중국 본토 맛을 살리되 우리 입맛에 맞는 요리를 만드는 것이 인기 비결"이라고 말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요리사는 고된 작업을 반복하는 직업인일 뿐 예술가가 아닙니다. 요리를 예술이라고 착각하고 끼를 펼치려는 젊은이들이 안타깝습니다.”

1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유명한 딤섬 전문 중식당 ‘골드피쉬 딤섬퀴진’의 대표 겸 인기 요리사인 박성열(35)씨가 밀가루 묻은 앞치마를 털어내며 안타깝다는 듯 입을 열었다. “요새 TV만 틀면 나오는 쿡방(요리방송)이 요리사를 꿈꾸는 젊은이들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재료 손질부터 설거지 등 화려함의 이면에 숨은 궂은 모습들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그는 주방에서 함께 일할 요리사를 구하기 위해 면접을 실시했다. 그때 만난 20대 지원자의 “방송에 나오는 셰프(요리사)들처럼 유명해지고 싶다”는 지원 동기에 할 말을 잃었다. 지금은 유명 요리사가 됐지만 돌아보면 결코 그 길이 화려하거나 순탄하지 않았다.

박 대표는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부친은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인 박근태 CJ중국 법인장이고, 자신은 중국의 명문대학인 베이징대에서 금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싱가포르의 물류회사 사업 개발팀에서 많은 봉급을 받는 안정된 월급쟁이 생활을 했으나 6개월 만에 그만뒀다.

20년간 품어온 꿈인 요리사가 되기 위해서다.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20년 이상 홍콩ㆍ중국ㆍ싱가포르를 오가며 살던 그는 중학생 때 요리사들이 등장하는 일본 드라마에 빠져 막연히 요리사란 직업에 빠져 들었다.

하지만 대학 입시를 앞두고 맞닥뜨린 부모의 반대는 생각보다 완강했다. 결국 가고 싶던 뉴욕의 명문요리학교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대신 베이징대에 진학했다.

꿈을 실현하는 과정은 혹독했다. 잘 다니던 싱가포르의 직장을 그만둔 뒤 2009년 중국으로 건너가 새벽 4시부터 길거리 만두 가게에서 설거지와 야채를 다듬는 등 온갖 허드렛일을 했다. 그래도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활기 넘치는 주방에서 어깨 넘어로 요리를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건너와서 사촌이 운영하던 햄버거 가게에서 다시 서빙과 주방 아르바이트를 했고, 제주도의 골프장 식당에서는 샌드위치를 만들고 설거지를 하며 기본을 익혔다. 아버지는 1류대학 출신에 멀쩡한 직장을 박차고 나와 고생을 사서 하는 아들을 보며 마음이 불편해 혀를 찼다. 박 대표는 “요리사를 꼭 해야겠냐고 여러 번 만류하시던 아버지도 결국 저의 열정을 보시고 네가 알아서 하라며 손을 드셨다”고 웃었다.

식당을 개업한 뒤에도 고난은 계속됐다. 처음 식당을 차렸던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의 임대료가 월 500만원에서 2년 새 1,500만원으로 3배 올랐다. 결국 버텨내지 못하고 임대료가 비교적 저렴한 서울 홍대 인근으로 이전했지만 주변 건물 공사 등이 이어지는 바람에 손님이 한 명도 없는 날이 속출했다. 박 대표는 “장사가 되지 않아 직원들도 모두 떠났다”며 “그때가 인생 최악의 시기였다”고 꼽았다. 박 대표는 끝내 사업을 접고 지난해 말 지금의 매장을 다시 열었다.

요리만 잘 한다고 식당이 절로 잘되는 것이 아니었다. 구인난도 심각했다.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 손으로 직접 딤섬 피를 만들고 재료를 넣어 만들다 보니 요리사 3명으로도 손이 모자랐다. 얇은 딤섬 피를 만드는 고난이도 업무에 지친 직원들이 떠나가는 바람에 문을 열지 못한 날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요리사를 채용해 딤섬의 기초부터 가르치는 데 1년 이상 걸렸다. 이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친 박 대표는 요즘 월 5,000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인근 유명 백화점들로부터 끊임 없이 입점을 제안 받는 유명 맛집이 됐다. 그는 “요리는 단순 반복 작업을 참고 견디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 일”며 “그런 작업을 꾸준히 경험해야 직접 요리를 개발할 수 있는데, 힘든 일을 하기 싫어하는 젊은 요리사들이 많아 안타깝다”고 강조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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