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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한국일보 뉴스룸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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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한국일보 뉴스룸을 가다

입력
2014.06.0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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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신문 대신 온라인 신문

벽 한쪽에 대형 디스플레이

실시간 이슈 흐름 한눈에

종일 데이터와 뉴스 분석

데스크 회의 수시로 열려

단순 기사는 로봇 프로그램이 ...

포르투갈의 미디어그룹인 레나그룹이 지난 2009년 젊은 세대를 위한 감각적인 일간지 'i'를 선보이면서 구축한 멀티미디어 뉴스룸, 바르셀로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마드리드 등에서 온 건축가들과 뉴스룸 이노베이션 컨설팅 회사 등이 멀티미디어 신문 제작에 적합한 뉴스룸을 디자인했다. www.innovationsinnewspapers.com 캡처
포르투갈의 미디어그룹인 레나그룹이 지난 2009년 젊은 세대를 위한 감각적인 일간지 'i'를 선보이면서 구축한 멀티미디어 뉴스룸, 바르셀로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마드리드 등에서 온 건축가들과 뉴스룸 이노베이션 컨설팅 회사 등이 멀티미디어 신문 제작에 적합한 뉴스룸을 디자인했다. www.innovationsinnewspapers.com 캡처

2030년 6월 9일 새벽 1시.

“끝!” 한국일보 뉴스룸의 김새롬 편집기자가 외치자 김 기자 앞의 투명 디스플레이가 삑, 하고 꺼졌다. 김 기자는 방금 한국일보의 마지막 종이신문 2030년 6월 9일자 아침판을 만들었다. 내일 아침, 한국일보의 종이신문 독자들은 마지막 신문을 받아들 것이다. 밤 사이 배달된 종이신문을 집어 든 김 기자는 만감이 교차했다. 창간 76주년을 맞는 내일, 76년 동안 만든 종이신문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선배들조차 과거엔 이랬다더라며 전설처럼 말해주는 납 활자 조판이 컴퓨터 조판 시스템으로 바뀐 것이 30여 년 전. 납 활자 조판 시절에는 취재 기자들이 붉은 칸 원고지에 연필로 기사를 쓰면 식자공이 납 활자 한 자 한 자를 박아 넣어 판을 만들고 인쇄를 했다. 컴퓨터 조판 시스템으로 바뀐 후 납 활자가 없어졌지만 대신 컴퓨터 조판 담당자가 새로 생겼다. 취재기자가 컴퓨터로 기사를 송고하면 부장이 고쳐서 승인하고 이를 전달 받은 편집기자가 신문에 적당한 제목을 단다. 이렇게 만든 기사와 제목을 갖고 편집기자는 조판 담당자와 함께 신문 레이아웃을 완성했다.

2000년대에 들어 편집기자가 조판 담당자 없이 직접 편집 프로그램을 사용해 조판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편집기자는 이제 카피라이터에 디자이너의 감각까지 갖춰야 했다.

하지만 70여 년의 변화 중 가장 큰 것은 역시 편집국의 통합 뉴스룸 체제 전환과 2015년 개시된 ‘디지털 퍼스트’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종이신문과 디지털 뉴스 중 이전에는 전자에 방점을 두었지만 이때부터는 후자를 더 중시하기 시작했다.

김 기자의 선배들에 따르면 당시 구성원들의 머릿속에 뿌리 박힌 구습을 버리고 새로 태어나기 위해 다양한 슬로건이 동원됐다. “종이신문 제조회사가 아니라 콘텐츠 생산 회사다.”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종이가 아닌 디지털 기기로 뉴스를 소비한다.” 가디언,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등 세계 유수 신문사들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에 대한 사례 분석도 공유했다.

최고경영자(CEO)의 비전 선포 후 편집국장은 통합뉴스룸 총괄 에디터라는 다소 긴 이름으로 바뀌었고 종이신문 제작에 최적화한 편집국도 완전히 새로운 모습의 뉴스룸으로 변신했다. 벽 한쪽이 대형 디스플레이로 가득한 영상 벽(video wall)로 바뀌어 실시간 이슈 흐름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한쪽 구석에 폐쇄된 공간으로 있던 큼직한 편집국장실 벽은 허물어지고 총괄 에디터의 자리는 뉴스룸 한가운데 위치한 책상으로 옮겨졌다.

다음날 아침 나올 종이신문을 염두에 두고 기사를 쓰던 편집국은 디지털 뉴스의 소비 현황을 실시간 공유하면서 기사를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뉴스룸으로 바뀌었다. 오전에는 조용하던 편집국은 하루 종일 실시간 데이터를 참고하며 수시로 열리는 데스크 회의로 소란스러워져 증권사 객장을 연상케 했다.

과거의 납 활자 조판, 컴퓨터 조판 시스템에 이은 새로운 온오프 통합 조판ㆍ편집 시스템은 외주가 아닌 자체 개발을 통해 다른 언론사와 차별화한 디지털 뉴스서비스를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경쟁력으로 자리잡았다. 개발자와 웹디자이너가 뉴스 제작의 핵심 인력이 됐다.

당연히 반발도 있었다. “단독기사를 다음날 아침까지 묵히지 말자” “사건이 발생하면 뉴스소비자가 원하는 해설, 분석기사도 다음날 지면이 아닌 당일 낮에 생산해야 한다” “디지털에 적합한 기사를 생산하기 위해 취재기자가 기획자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등등 변신을 촉구하는 기자들의 요구사항은 “기자가 발로 뛰고 취재를 잘 하는 게 중요하지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하냐”는 반대에 부딪혔다.

하지만 디지털 퍼스트라는 일관된 비전을 전파하는 회사 경영진과 총괄 에디터의 꾸준한 노력, 혁신을 주도하는 열정적인 기자들에 대한 보상과 격려가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이어지면서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꾸준한 노력이 디지털 뉴스 분야의 성과로 이어지면서 과거의 영광을 종이신문이 아닌 디지털에서 먼저 찾을지 모른다는 기대가 뉴스룸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정해진 출입처에 매몰되지 않고 타 부서와의 협력을 통해 통합적이고 융합적인 기사를 만들어내는 기자도 생겼고 물리적 거리와 상관 없이 언제 어디서나 소통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 뉴스룸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 디지털 뉴스 시장은 혼탁 그 자체였지. 그때는 사람들이 뉴스 서비스를 직접 이용하지 않고 특정 포털 사이트를 통해 뉴스를 봤어. 그 안에서 수백 개의 매체들이 수십만 개의 기사를 쏟아내며 경쟁하니 눈길을 끌기 위한 낚시성 기사와 선정적 기사가 도배를 했지. 심지어 멀쩡한 경제신문이 야근도 마다 않고 열심히 일하는 중소기업 여성 사장을 인터뷰한 기사에 ‘스튜어디스 출신 여사장, 밤마다 오피스텔에서…헉’이란 제목을 다는 경우도 봤단다. 내가 실제로 목격했어.”

얼마 전 논설위원 선배에게 들은 얘기에 김 기자는 그야말로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어떻게 수십년 역사를 가진 정통 언론사들이 그런 짓을 하지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요.”

“그때는 그게 정상이었어. 2014년 5월 19일 한국일보닷컴이 처음 ‘클릭, 클린! 반칙 없는 뉴스’라는 슬로건을 갖고 출범했을 때 오히려 사람들이 비정상으로 보았을 정도였지. 그런 식으로 살아 남겠느냐는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어. 하지만 언론사의 핵심 플랫폼이 종이에서 디지털로 전환하면서 더 이상 평판으로 먹고 사는 언론사의 ‘얼굴’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뒤늦게 퍼지기 시작했지.”

한국일보를 필두로 다른 언론사들도 점차 디지털을 종이신문 다음의 부차적인 것이 아닌 가장 중요한 승부처로 여기기 시작했다. 한국 특유의 빠른 적응력 덕분인지 다른 언론사들도 속속 디지털 퍼스트 전략을 채택했고 통합 뉴스룸 체제를 도입했다.

김 기자가 입사한 것은 한국일보가 한국 디지털뉴스에 큰 바람을 일으키고 있던 2020년이었다. 그 후 10년 사이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사람들의 인터넷 사용 방법이 바뀌면서 ‘마우스 클릭’ 대신 ‘눈 깜박임’으로 기사를 보기 시작했고 간단한 사건사고 기사는 로봇 프로그램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한국일보는 한국을 넘어 아시아권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디지털 매체의 대열에 합류했다.

김 기자에게는 편집국이라는 오래된 단어가 생경하고 뉴스룸이라는 말이 훨씬 익숙하다. “편집국과 뉴스룸은 단순히 한자어와 영단어의 차이가 아니다. 종이신문 제작에 최적화한 수직적인 체제와 디지털뉴스에 최적화한 수평적이고 네트워크로 연결된 체제의 차이다”라고 선배는 얘기하지만 사실 과거의 편집국이 어땠는지를 모르니 와 닿는 얘기는 아니다.

김 기자는 마지막 종이신문을 들고 뉴스룸 문을 나섰다. 그 순간에도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뉴스룸에는 야근자가 남아 지구촌 어느 누군가의 스크린에 비칠 뉴스를 만들어 내고 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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