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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닳은 영조와 사도세자 스토리, 이준익표 세공술로 새롭게 슬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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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닳은 영조와 사도세자 스토리, 이준익표 세공술로 새롭게 슬프게

입력
2015.09.0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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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도’는 영조와 세자의 감정이 맞부딪치며 형성된 불화를 정밀히 들여다보며 극적 긴장을 만들어낸다. 쇼박스 제공
영화 ‘사도’는 영조와 세자의 감정이 맞부딪치며 형성된 불화를 정밀히 들여다보며 극적 긴장을 만들어낸다. 쇼박스 제공

조선왕조 비극 중의 비극, 그래서 여러 서사의 단골이었던 사도세자를 다시 불러낸 영화 ‘사도’는 충무로 사극의 새 전환점으로 기억될 만하다. 화려한 궁중생활이나 지나치다 싶은 칼 싸움에 매몰되지 않고, 자극적인 살 냄새도 풍기지 않는다. 상투적인 표현을 걷어내고 권력이 그려낸 감정의 풍경들로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미치광이 아들과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이는 아버지, 영조와 사도세자는 낡고 닳은 소재다. 하지만 마음과 마음이 부딪치고 기대와 실망이 충돌하면서 빚어진 혈육의 서러운 이야기가 심장을 서늘하게 하며 가슴을 치고 또 친다. 새롭고 슬픈 사극이다.

영화는 이야기의 절정에서 시작한다. 아버지 영조(송강호)와의 불화 끝에 세자(유아인)는 뒤주에 갇히고 두 사람은 과거를 돌이켜 본다. 총명했던 늦둥이 세자는 어렸을 때는 영조의 사랑과 기대를 독차지하나 희망은 곧 절망으로 바뀐다. 영조의 억압적인 교육과 권력욕은 자유분방하고 혈기 뜨거운 세자를 엉뚱한 삶으로 인도한다. 무수리의 아들로 태어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영조는 아들에게 자애롭기보다 지나치게 엄격하다. 영조는 “사가(보통의 집안)에서는 아들을 자애로 키우나 왕가에서는 아들을 원수로 생각하며 키운다”라고 말하나 세자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세자에 대한 영조의 지나친 기대치만 화를 부른 게 아니다. 아들에게 권력을 일부 양보하는 모양새를 취하고도 자신의 뜻대로 조정을 쥐고 흔들고 싶은 영조의 권력욕에 세자는 짓눌린다. 영화는 조선후기 궁중을 흔들었던 사건을 125분 동안 세세히 복기하며 감정의 소용돌이를 여러 차례 만들어낸다.

영화는 시대를 초월해 늘 현재적 의미를 갖는 고전의 힘을 보여준다. 역사의 한 대목을 뛰어난 세공술로 불러내 현실의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자수성가한 억압적인 아버지와 반항하는 아들의 갈등은 대기업 오너의 집안에서, 평범한 이웃 집에서, 곳곳에서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왕의 남자’(2005)로 1,230만명을 극장으로 모았던 이준익 감독은 과거와 현재를 공명시키는 세련된 솜씨를 과시한다.

배우들은 열연으로 연출에 화답한다. 송강호는 쇳가루 섞인 듯한 단호한 목소리만으로도 영조의 비정과 음흉을 표현해낸다. 세자와 세손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오를 때를 제외하고 영조가 입을 열 때마다 스크린은 차가운 바람이 분다. 짧은 호흡으로 뜨겁게 청춘을 발산하는 유아인의 연기와 부딪힐 때마다 긴장이 스크린에 서린다. 두 사람의 연기 앙상블만으로도 영화는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16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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