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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日싱글 '아라포' 능력 좋은 中 '성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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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日싱글 '아라포' 능력 좋은 中 '성뉘'

입력
2015.08.0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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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직장생활 병행의 어려움

일해도 육아에 부모 봉양까지, 슈퍼우먼 원하는 현실에 부담

출산율 저하 골머리로

서구와 달리 혼외출산 드물어, 싱가포르는 한때 정부가 중매

‘아라포(around 40)’ ‘성뉘(剩女)’ ….

우리나라의 ‘골드 미스’처럼 일본과 중국에서 30, 40대 미혼 여성을 일컫는 말이다. 전통적으로 가족적 가치가 강한 아시아는 결혼에 대한 의무감, 가치관이 서양보다 확고했지만 급변하고 있다. 한국과 비슷한 경제상황과 여성의 사회 참여도를 보이는 일본, 홍콩, 대만, 싱가포르가 그렇다.

2011년 영국 경제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30대 초반 일본여성 3명 중 1명 꼴로 미혼이었다. 30대 후반 대만 여성이나 40대 초반 방콕 여성도 각각 5분의 1이 결혼하지 않았다. 싱가포르 경우에도 결혼적령기 대졸 여성의 27%가 마찬가지 상황에 놓여 있다.

‘아라포’가 일본 사회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2008년 4월 민영방송 TBS에서 방영된 동명의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다. 40세 전ㆍ후반의 세 친구(커리어우먼 둘과 주부 한 명)가 주인공인 이 드라마는 각기 다른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을 지닌 이들이 일과 결혼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지 조명했다. 아라포 세대 여성은 10대 후반에 남녀고용기회균등법 시행으로 남녀평등 교육을 본격적으로 받았고, 80년대 버블기에 비교적 풍요로운 청춘을 보냈으며, 버블 절정기에 취업한 특징을 갖고 있다. 싸움에서 진 개라는 뜻의 ‘마케이누’라며 결혼 못한 처지로 비하되기도 하지만, 아라포 여성은 결혼에 대해 위기감과 조바심을 느끼기보다 당당한 싱글녀로 남기를 원한다. 다만 사회적 분위기나 부모의 영향으로 결혼과 육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드라마 속 아라포들도 일과 결혼, 출산 문제 등 숱한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다.

중국 교육부가 신조어로도 지정한 ‘성뉘’는 잉여여성이라는 뜻으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일컫는 말이다. 업신여기는 말처럼 들리지만 고학력, 고연봉의 콧대 높은 결혼 적령기 여성들을 뜻한다. 이들이 미혼으로 있는 것은 결혼 상대 남성은 연령, 키, 학력, 연봉 네 가지가 자신보다 높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홍콩에서도 이 같은 문제가 심각하다. 콧대 높은 홍콩 미혼 여성들이 영어 잘하고 교양 있는 ‘하이구이(海歸·해외유학파)’를 결혼 상대로 선호하면서 독신이 늘어나는 현상이다. 남자는 자신보다 좀 못한 여성을 찾고, 여성은 자신보다 더 나은 남자를 찾는 미스 매치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아시아 주요국 여성의 결혼기피 배경에는 결혼생활과 직장생활을 병행하기가 힘들다는 점이 우선 꼽힌다. 조희금 대구대 가정복지학과 교수는 “아시아 국가 대부분이 가부장적 사회이기 때문에 여성이 결혼하면 커리어를 쌓는 데 방해를 받게 된다”며 “여성의 교육수준이 확 올라간 상황에서 결혼 회피 현상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아시아 여성들은 직장을 가졌더라도 남편과 자식을 돌보고, 부모까지 모셔야 하는 책임을 안다 보니 서양 여성보다 결혼을 더 비관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실제 올해 4월 발표된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을 보면 우리나라 여성은 하루 중 남편보다 집안 일을 5배나 더 많이 한다. 지난해 ‘한국과 일본 미혼 인구의 결혼에 대한 태도’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한 조성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도 “한국과 일본의 미혼여성은 35세 전후를 기점으로 결혼 의향이 급격히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일본이나 한국 모두 남성의 집안 일 참여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여성이 슈퍼우먼이 돼야 한다는 부담감이 큰 것이 주요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사회 구조를 위협하는 출산율 저하다. 결혼율은 낮지만 혼외 출산율이 50%를 훌쩍 넘은 유럽 국가들과 달리 유교적 전통이 강한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의 혼외 출산율은 2% 정도다. 아시아 주요국들이 결혼기피 현상에 더 골머리를 앓는 까닭이다. 심각한 출산율 저하에 시달리던 싱가포르의 경우 30년 전 리콴유 총리가 대졸 남녀의 결혼 장려 목적으로 국가 주도의 결혼정보회사인 ‘사회개발단위(SDU)’를 설립하기도 했다. SDU가 성공을 거두자 고졸 남녀를 위한 ‘사회개발서비스(SDS)’도 만들기도 했지만 사적 영역에 지나치게 간여한다는 비판에 직면하자 2009년 민간에 이양했다. 우리나라도 2009년 12월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보건복지협회에서 결혼지원사이트를 열고 중매에 나섰으나 부모의 지위와 재산여부, 학력 등에 따라 결혼 대상자를 등급화하면서 결혼 상품화 비판이 제기되자 이듬해 폐지했다.

성혼 정책이 다각적으로 검토돼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여성의 희생을 요구하는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싱글의 삶을 선택하는 아시아 여성들은 점점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채지은기자 cj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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