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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 없는 강제키스는 무죄?… 현실 외면한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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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 없는 강제키스는 무죄?… 현실 외면한 법원

입력
2015.08.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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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계 "피해자에 책임 전가" 비판

모르는 사람에게 강제로 키스를 당했더라도 피해자가 저항할 수 없을 정도의 폭언이나 폭행이 없었다면 강제추행죄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최근 강제추행죄의 성립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한 법원 판결이 잇따라 논란이 예상된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부(부장 한영환)는 술집에서 피해 여성의 어깨를 잡고 강제로 입을 맞춘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던 김모(26)씨에게 원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20일 밝혔다.

김씨는 지난해 4월 서울 창천동의 한 술집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는 A씨를 기다렸다가 강제로 어깨를 잡고 두 차례 입을 맞췄다. 두 사람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A씨는 사건 뒤 곧장 경찰에 신고했고, 검찰은 김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그 해 9월 “피고인이 반성하지 않고 죄질도 가볍지 않다”며 벌금 500만원에 40시간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를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는 얼굴을 돌리거나 입술을 굳게 다무는 방법으로 추행을 막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지 않았다”며 “특히 두 번의 키스가 약간의 시차를 두고 연속해서 일어나는 상황에서 두 번째 키스에 대해서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또 A씨가 범행 직후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죄송합니다. 저 갈게요”라고 말한 데 대해서는 “(김씨가) 어깨 부위를 잡는 것 외에 폭언이나 폭행은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그러한 행동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여성계에서는 법원이 성폭력 피해자에게 적극적인 저항을 요구하는 등 현실을 외면한 판결을 내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부지법은 18일에도 2004년부터 처제를 수 차례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조모(49)씨에게 일부 추행은 피해자가 충분히 방어가 가능한 상황임에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은 점을 들어 무죄로 판단했다.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는 “성폭력의 강제성을 판단할 때 저항 여부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관계자도 “피해사실을 일관되게 진술한 피해자 입장보다 가해자의 의견을 더 중시한 판결”이라며 “성폭력과 관련한 법원의 판단이 가해자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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