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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중도로 가는 美 공화당, 리퍼미콘 바람

입력
2014.07.2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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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 공화당에 리퍼미콘(Reformicon) 바람이 불고 있다. 개혁(reform)과 보수주의(conservatism)를 합친 말로 번역하면 개혁보수쯤 된다. 리퍼미콘은 낡은 공화당의 독트린인 세금 감면, 작은 정부, 월가 옹호에서 벗어나 중간층과 저소득층을 지지자로 포섭하자는 것이다. 에릭 캔터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가 최근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동자나 싱글맘에 동정심을 나타낸 게 그런 사례다. 리퍼미콘의 출발은 전통 보수주의 브랜드가 외면 받고 있다는 반성이다. 미국 유권자들은 젊고 도덕적으로 다양하며, 덜 종교적이고, 여성의 힘이 커졌다. 이들을 공화당지지자로 유인하려는 고민 가운데 하나가 리퍼미콘이다.

공화당의 변신 노력은 2016년 대선을 바라보고 있다. 역대 미국 대선은 늘 중간층 끌어 앉기 싸움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패한 밋 롬니 공화당 후보의 전략은 반면 교사다. 그가 대부분이 피고용주인 미국인에게 호소하지 않고 소수인 기업가에게 다가섰기 때문이다. 리퍼미콘은 아직 4년 전 중간선거 때 보수유권자운동 티파티와 같은 바람몰이를 하고 있진 못하다. 그러나 전통 공화당 후원세력이자 보수이념의 배경인 보수재단이나 거부들이 리퍼미콘을 지원하고 있다. 또 보수 싱크탱크와 공화당 주류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미 정치권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리퍼미콘의 개혁, 변화의 정도는 사용하는 말부터 다른 데서 짐작할 수 있다. 작은 정부를 얘기하지 않고 시민사회를 내세우며, 정부를 향해 과격한 비판도 가하지 않는다. 그래서 리퍼미콘은 고집스럽게 버락 오바마 정부를 탄핵하려는 티파티의 비판운동으로도 비친다. 리퍼미콘은 2000년 조지 W 부시 후보시절 공화당이 잡았던 십자가도 내려놓으려 한다. 서민, 중간층에서 새로운 지지세력을 구축하겠다는 것은 기독교 우파와는 거리를 두겠다는 뜻이다. 기독교 우파에 도전해 성공한 정치인이 없는 마당에 이는 공화당의 금기에 대한 도전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책사인 칼 로브조차 이런 보수개혁 운동을 지지하며, 공화당에게 개혁의 깃발을 쥐라고 한다.

한국식 정치구도로 보면 리퍼미콘은 보수 이념보다는 민생을 강조하며 중도를 향해 좌클릭 하는 것이다. 미국 정치에서는 보수 공화당이 왼쪽으로, 진보 민주당이 오른쪽으로 간 사례가 적지 않다.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이른바 트라이앵귤레이션(삼각화)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공화당 정책을 적극 흡수한 중도 정책을 유권자에게 제시하고 따라오도록 한 전략이다. 공화당이 자신들의 정책을 빼앗겼다고 했을 만큼 중도층 껴앉기의 전형으로 자리잡았다. 결국은 신보수주의자들인 네오콘에 장악되고 말았지만 부시 대통령도 2000년 대선에서 온정적 보수주의를 내세워 승리했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추구한다는 이 캐치프레이즈는 무당파와 자유주의자까지 지지자로 만들었다. 민주당은 유권자를 바보로 만들었다고 무시했지만, 세계에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유행하는 한 계기로 작용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리퍼미콘이 비판을 받는 것은 새 부대에 담긴 헌 술일 수 있기 때문이다. 네오콘이 회개도 하지 않고 개혁보수에 가담하는 게 대표적 헌 술이다. 전과 다를 바 없는 후원세력을 보면 립스틱을 칠한 월가의 돼지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실감난다. 리퍼미콘이 공화당을 구할지도 아직은 미지수다. 하지만 네오콘이나, 월가마저 리퍼미콘에 가세하는 것은 미국 정치가 중도로 회귀하고 있는 역설적 증거이다. 지지층 이탈을 막는 갈라치기 전술에 매달리는 오바마 대통령의 인기가 하염없이 떨어지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지금 미국에서 급진세력은 민주당이 아니라 6년째 야당인 보수 공화당이다.

이태규 워싱턴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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